‘52년 바느질 기록’ 세상에 내놓은 팔순 침선장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3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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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선노트’ 다시 펴낸 구혜자씨

침선장 구혜자 씨가 52년간 침선 기술에 대해 쓴 노트(왼쪽 사진). 구 씨가 서울 강남구 국가무형문화재 전수교육관에서 한복을 짓고 있다. 올해 여든이 된 그는 매일 이곳으로 출근해 한복을 짓고 제자들을 가르친다. 한국문화재재단 제공
침선장 구혜자 씨가 52년간 침선 기술에 대해 쓴 노트(왼쪽 사진). 구 씨가 서울 강남구 국가무형문화재 전수교육관에서 한복을 짓고 있다. 올해 여든이 된 그는 매일 이곳으로 출근해 한복을 짓고 제자들을 가르친다. 한국문화재재단 제공
“교재 새롭게 다시 만듭시다.”

여든을 목전에 둔 지난해 봄, 현재 국내 유일의 국가무형문화재 침선장(針線匠·바느질로 의복을 짓는 장인) 보유자인 구혜자 씨(80)는 한국문화재재단 출판팀을 찾아가 이렇게 말했다. 그는 2001년 시어머니이자 초대 침선장인 고 정정완 선생에게 배운 손 기술을 모은 ‘구혜자의 침선노트’(문보재)를 출간했다. 기본 한복부터 백일 옷, 혼례복까지 치수 하나하나 꼼꼼히 기록한 비법 노트다. 하지만 자신의 것이라기보다는 시어머니가 남긴 유산에 가까웠다. 그는 “내가 제자들을 가르치고 난 뒤에야 시어머니에게 배웠던 기술이 완전히 내 것이 됐다. 이제는 내 것을 남기고 싶었다”고 말했다.

지난해 봄 시작한 글쓰기는 겨울이 돼서야 끝났다. 그는 생과 사 모든 순간에 필요한 한복 짓는 법을 총망라한 ‘구혜자의 침선노트’ 개정증보판 1∼4권(문보재)를 최근 펴냈다. 새 교재에는 21년 전 담지 않았던 수의(壽衣) 제작법도 담았다. 서울 강남구 국가무형문화재 전수교육관에서 1일 만난 그는 두꺼운 돋보기안경을 쓴 채 필기노트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52년 전 시어머니에게 처음 침선기술을 배울 때부터 그는 손에서 노트를 놓지 않았다. 구 씨는 “시어머니는 평소 한복을 입고 지내던 옛 어른이라 기록하지 않아도 머릿속에 그려지지만 나는 아니다. 어머니의 작품을 분석해 옷깃의 치수까지 계량화했다”고 말했다. 그렇게 52년간 기록한 노트는 홀로 간직하지 않고 모두에게 공개했다. “내가 알고 있는 걸 전부 전수해야 모두의 것으로 남는다”는 신념 때문이다.

2007년 시어머니의 뒤를 이어 침선장이 된 그는 30년 넘게 한국전통공예건축학교에서 제자들을 가르치고 있다. 그의 가르침은 유별나기로 정평이 났다. 경쟁이 치열한 장인의 세계에서는 제자가 다른 장인에게 배우는 걸 용납하지 않는 법. 하지만 구 씨는 다르다. 그는 “제자들에게 ‘나보다 자수와 매듭을 더 잘 만드는 장인에게 배우고 오라’고 권유한다”고 말했다.

“최고의 것을 배워서 자신의 것으로 만들라고 가르쳐요. 그게 내 철학입니다.”

아직 전해줄 비법이 남아 있는 그에게 지난해 병마가 찾아왔다. 암이었다. 두렵기보다는 제자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컸다고 한다. 직장인 제자들을 위해 마련했던 야간수업을 취소했기 때문이다. “몸부터 챙기라”는 주변의 권유에도 그는 가르침을 멈추지 않았다. 고민 끝에 자신이 온전히 쉴 수 있는 주말을 직장인 제자들에게 내어주기로 했다.

“제자들을 놓아버리면 배움이 끊어지잖아요. 제가 살아있는 한 한복의 맥을 이어야죠.”

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구혜자씨#침선장#침선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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