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을 약자로 만들면 남성이 더 힘들어져”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3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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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학자 이나영 교수

“또 이나영이야?”

지난해 강남역 살인사건으로 촉발된 남혐여혐(남성혐오, 여성혐오) 논쟁 이후 여성 문제를 다룬 기사에 종종 달리는 댓글이다. 배우 ‘이나영’이 아니다. 이나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49·사진)다. 그는 강남역 살인사건부터 이어진 수많은 여성 관련 이슈에서 여성을 사회적 피해자로 규정해 남성들 사이에서 역차별 논란을 일으켰다. 그리고 그 논란은 현재 진행형이다.

이 같은 남혐·여혐 논란에 가려져 잘 드러나지 않았지만 여성학자로서 그의 주 연구 과제는 ‘일본군 위안부’다. 최근 미국에서 출간된 ‘세컨드웨이브 페미니즘’에 위안부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글을 실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그가 위안부 문제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건 미국 메릴랜드대에서 여성학 석·박사 과정을 밟던 2003년. 당시 그는 일제강점기부터 시작된 한국의 성매매 산업에 대한 논문을 준비하며 한국으로 현장 조사를 나왔다. 그때 윤미향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대표(당시 사무처장)를 만났다.

“윤 대표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며 한국의 위안부 활동가들이 얼마나 힘든 길을 가고 있는지 알게 됐죠. 당시만 해도 답이 나올지 말지 모르는 싸움이었거든요. 대낮에 사무실에서 둘이 이야기 나누다 울었죠.”

사실 그는 1980년대 운동권과는 거리가 먼 학생이었다. 그를 열혈 여성운동가의 길로 접어들게 만든 건 뜻밖에도 이른 나이에 한 결혼이었다.

“공부를 곧잘 해 여중, 여고, 대학까지 여성으로서 차별받은 적도, 불편한 적도 없었어요. 그런데 24세에 결혼하고 아이를 낳으니 정체성이 사라지더라고요. 누구 엄마, 몇 호 아줌마로 불렸죠. 이나영이란 사람은 사라지고 이름 없는 여성만 남더라고요.”

그때 그는 지인으로부터 ‘여성학’의 존재를 들었다. 이미 많은 여성이 비슷한 문제로 고민하고 답을 찾기 위해 애쓰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두 아이의 엄마로 부산여대에서 여성학 석사를, 메릴랜드대에서 여성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지금까지 위안부와 관련한 연구와 강의를 지속해왔다.

“현재의 성매매 문화는 식민지 시기 공창제도가 시작이었고, 군사독재 시대를 거치며 여성을 값싼 노동력으로 여기는 시각이 일반화됐어요. 임금 격차, 유리천장, 성폭력 등 대부분의 여성 문제가 근현대사를 거치며 쌓여온 적폐죠. 역사의 매듭을 풀지 않고선 성평등 논의 자체가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는 건강한 페미니즘은 남성 해방운동으로 이어진다는 점도 강조했다.

“세상은 절대적 강자 몇몇을 제외하곤 모두 약자입니다. 남성과 여성이 함께 손잡고 싸워 나가야 할 분야가 많은데 여성을 상대적 약자로 만들면 그만큼 남자가 힘든 거예요. 남자가 진 짐을 같이 나누고 함께 살아가자는 것, 그게 제가 생각하는 페미니즘입니다.”
  
송충현 기자 balgun@donga.com
#여성학자 이나영 교수#남혐여혐#페미니즘#남성 해방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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