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는 재판으로 삶을 찍는 사진가”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2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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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년 법복 벗은 김상준 前부장판사

김상준 전 서울고법 부장판사가 10일 서울 서초동 법원종합청사 중앙 현관 앞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그는 법관이 언론에 나서는 것은 부적절하다며 퇴임 전 인터뷰를 여러 차례 고사했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김상준 전 서울고법 부장판사가 10일 서울 서초동 법원종합청사 중앙 현관 앞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그는 법관이 언론에 나서는 것은 부적절하다며 퇴임 전 인터뷰를 여러 차례 고사했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판사 본인이 재판을 받는다고 할 때 대우받고 싶은 대로 당사자들에게도 똑같이 재판을 해주고 싶었습니다. 법정에 들어갈 때마다 ‘혈구지도(혈矩之道)’를 늘 가슴에 새겼지요.”

최근 법원 인사를 앞두고 5일 퇴임한 김상준 전 서울고법 부장판사(55·사법연수원 15기)는 그의 전매특허였던 ‘친절한 재판’의 비결에 대해 10일 이같이 말했다. 혈구지도란 ‘자기를 척도 삼아 남을 생각한다’는 뜻으로, 김 전 판사가 지난해 국가정보원 간첩 증거조작 사건의 항소심 재판에서 공무원인 피고인들에게도 권한 말이다. 그는 최근까지 외국인 전담 재판부를 이끌며 법정이 낯선 피고인들에게 법률용어와 절차를 쉽게 설명해 호평을 받았다.

올해로 법관 임관 27년째인 김 전 부장판사는 11일자 고위법관 인사에서 지방법원장 발령이 유력했지만 변호사와 연구자로서 제2의 삶을 살기 위해 법원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3년 전 1, 2심에서 유무죄 판결이 바뀐 재판 540건을 분석해 박사학위를 받은 데 이어 올해 법심리학 분야로 두 번째 박사과정을 마칠 예정이다. “재판은 사람에 대한 이해가 선행돼야 하는데 법학만으로는 2% 부족하다고 느꼈다”는 게 그가 밝힌 만학의 이유다.

김 전 부장판사는 법관으로서 개척과 연구를 쉬지 않는 삶을 살았다. 2002년 현직 법관으론 처음으로 일반 시민이 재판에 참여하는 배심제 도입을 주장했고 이듬해 사법개혁위원회 전문위원으로 국민사법참여제도의 틀을 만들었다. ‘법관에 의한 재판’ 원칙에 어긋난다며 법원 안팎의 반대가 거셌지만 미국 러시아 등 배심제 도입 국가의 전문가들을 일일이 만나 자문하고 반대하는 동료 법관들을 설득했다.

1997년 법원행정처 인사담당관 시절에는 법관의 해외연수를 사법정보 수집 통로로 적극 활용했다. 그는 “당시 외국 법원의 쓰레기통 색깔과 계단 숫자까지 알아 오라고 할 정도였다”며 “미국 국립주법원센터(NCSC) 등 사법정책연구소의 도서관을 통째로 복사한다는 각오로, 귀국하는 판사마다 사본을 박스째 화물로 실어 날랐다”고 회고했다. 당시 수집한 정보들은 법학전문대학원, 국선 전담 변호사 등 2000년대 추진된 사법개혁의 밑거름이 됐다.

올 12월부터 시행되는 치료명령제도도 2007년 그가 대전고법에 근무할 당시 재판에 처음 적용한 것이었다. 김 전 부장판사는 “숭례문 방화 사건처럼 정신적인 문제로 범죄 습벽을 못 버리는 사람에게 처벌과 함께 치료 조치를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지난해 ‘팔달산 토막살인 사건’ 재판에서 한국 사법 사상 최초로 범죄자의 뇌구조 영상을 증거로 채택하기도 했다.

김 전 부장판사는 “판사는 인생만사 속에서 재판이라는 사진을 찍는 사진가”라며 ‘사진이 마음에 안 들면 대상에 더 다가서라’던 종군 사진작가 로버트 카파의 말처럼 판사석을 내려와 법률 조력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다가가겠다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 오판 연구 전공을 살려 억울함을 호소하는 교도소 수감자들을 찾아가 법적인 도움을 주면서 연구활동을 병행할 계획을 갖고 있다.

신동진 기자 shin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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