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의 땅’으로 다시 떠나는 아라우 통역장교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2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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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년전 필리핀 한인에 맡겨져 성장
김승태 중위, 태풍피해 복구 완수뒤, 휴가 반납하고 급식봉사 나서

지난해 발생했던 태풍 하이옌의 피해 복구 임무에 참여했던 김승태 중위가 22일 임무를 마친 뒤 세부 막탄국제공항에서 한국행 비행기에 오를 준비를 하고 있다. 합동참모본부 제공
지난해 발생했던 태풍 하이옌의 피해 복구 임무에 참여했던 김승태 중위가 22일 임무를 마친 뒤 세부 막탄국제공항에서 한국행 비행기에 오를 준비를 하고 있다. 합동참모본부 제공
8년 전 필리핀 마닐라의 한 골목. 끼니 걱정으로 하루하루를 보내던 한 한국인 청소년이 쓰레기통에 버려진 햄버거 조각을 집었다. 어린애가 먹다가 땅에 떨어뜨린 걸 엄마가 쓰레기통에 버린 것이었다. 그 햄버거를 먹던 청년은 하염없이 울었다. 바로 그가 한국군 통역장교로 필리핀에 돌아와 피해 복구에 앞장선 육군 김승태 중위(25)다. 그는 지난해 초대형 태풍 하이옌 피해로 절망에 빠져 있던 곳에 아라우(필리핀어로 ‘희망’이라는 뜻) 부대원으로 ‘희망’을 심었다.

어려웠던 가정형편 때문에 13년 전 필리핀 한국인 선교사 집에 맡겨졌던 김 중위는 하이옌 피해 지역에 재해복구 부대를 파병한다는 소식을 듣고 주저 없이 손을 들었다. 아라우부대가 임무를 마치고 23일 해단식을 했지만 그의 필리핀 사랑은 끝나지 않았다. 김 중위는 파병 후 주어지는 한 달 장기휴가를 활용해 올해 태풍 피해를 본 필리핀 사마르지역 주민들을 도울 준비를 하고 있다. 김 중위는 25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고등학생인 여동생과 함께 29일 필리핀으로 가서 한글학교에서 가르쳤던 학생 15명과 급식 봉사활동을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필리핀에서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김 중위의 생활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한국인 선교사들의 집을 전전하다가 현지에서 알게 된 지인의 집에서 신세를 지기도 했다. 학비와 생활비를 벌기 위해 해보지 않은 일이 없었다. 일했던 이발소가 망해 월급도 받지 못해 학비만 내고 매일 끼니 걱정을 하던 시절도 있었다.

그러면서도 김 중위는 한 번도 한국을 잊지 않았다. 그는 “영주권을 포기하고 2008년 한국에 돌아온 것은 병역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서였다”라고 말했다. 부사관에 지원해 근무하다 다쳐서 전역한 뒤 김 중위는 육군 3사관학교에 다시 지원했고 지난해 임관했다.

필리핀 원주민이 쓰는 타갈로그어에도 능숙한 김 중위는 아라우부대에서 한글학교 교사를 맡았다. 그는 “필리핀 학생들 중에는 한글을 배우러 온 친구들도 있었지만 태풍 이후 친구와 가족을 잃은 어르신도 많았다”며 “떠나는 날 학생들이 한글로 된 플래카드를 들고 아라우부대 장병들을 태운 상륙함 앞에서 플래시몹(예고 없이 특정 장소에서 집단으로 같은 행동을 하는 것)으로 감사의 뜻을 전하던 모습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고 말했다.

잇단 태풍 피해로 외국으로부터 많은 지원을 받고 있는 필리핀에는 자국민을 돕는 문화가 아직은 부족하다고 한다. 김 중위는 “한글학교에서 가르쳤던 현지 학생들과 함께 봉사활동을 함으로써 타인을 돕고 배려하는 마음을 심어주고 싶다”고 말했다. 필리핀 무관이 꿈인 김 중위는 “한국의 위상을 드높일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지난해 12월 파병된 아라우부대는 1년 동안 필리핀 레이테 주(州)에서 태풍 잔해물 제거 임무를 맡아 학교와 관공서 등 67곳의 시설을 복구했다. 또 4만2000명의 현지 주민을 대상으로 의료지원을 했다.

정성택 기자 neone@donga.com
#아라우#통역장교#김승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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