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에게 소설로 작업 걸며 섹시하게 늙고 싶어”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5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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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장편 ‘소소한 풍경’ 낸 박범신씨

“일흔 살 노인이 쓸 법한 거대담론은 쓰고 싶지 않다. 나는 독자에게 소설로 작업을 건다고 믿는다. 그래서 이런 불온한 소설을 썼나 보다. 섹시하게 늙어가고 싶으니까.”

소설가 박범신 씨(68·사진)의 신작 장편 ‘소소한 풍경’에는 우연히 함께 살게 된 한 남자와 두 여자가 등장한다. 오빠와 부모가 차례로 세상을 떠난 여자 ㄱ, 5·18 때 광주에서 아버지와 형을 잃은 남자 ㄴ, 탈북 과정에서 아버지가 숨진 여자 ㄷ. 가상의 도시 소소(昭昭)를 배경으로 언제 누가 떠날지 알 수 없는 불안정한 상태에서 서로를 의지하며 지낸다. 둘 또는 셋이 한 침대에 들면서. 이들 사이에 질투란 존재하지 않는다.

7일 만난 작가는 “전작보다 형식이 새롭거나 주제가 달라야 한다. 동어반복에 불과하고 지난 작품보다 형편없다는 지적이 나오면 은퇴하겠다는 생각으로 글을 쓴다”고 했다.

‘촐라체’ ‘고산자’ ‘은교’를 통해 ‘갈망 3부작’을, ‘비즈니스’ ‘나의 손은 말굽으로 변하고’ ‘소금’으로 자본주의의 폭력성을 비판한 3부작을 펴냈다. 이번 신작에서는 사랑의 불완전성을 밑바닥까지 파고들었다. ‘은교’에서 늙어간다는 슬픔 속에 노인이 젊은 은교를 욕망하지만 이번 소설에서는 그런 욕망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했다.

“젊을 때 ‘사랑은 고유명사다’ 같은 문장을 썼다. 지금 보니 부자연스럽다. 현실에서는 일 대 일의 사랑, 소유는 불가능한 꿈이다. 과거로 돌아간다면 장가를 간다거나, 여자를 어떤 다른 남자와도 접촉 못하게 하지 않을 거다.(웃음) 나는 평생 가족을 잘 챙겨온 책임감 있는 가장이었는데, 이번 소설의 교정을 보면서 순 뻥치면서 살아온 거나 다름없다고 생각했다.”

작가는 “내 소설을 마누라가 읽으면서 ‘나는 참 이상한 사람하고 사는 것 같아. 당신을 잘 모르겠다’고 그런다”면서 웃었다.

소설의 문을 여는 것은 여자 ㄱ의 스승인 소설가 ‘나’다. 작가는 그의 입을 통해 소설 쓰기에 대한 속내도 털어놓는다. “나는 작가야. 그러므로 나는 평생 늘, 새로운 문장을 쓴다. 그동안 수십 편의 소설을 썼지만 똑같은 문장을 두 번 쓴 적은 한 번도 없다. 새로 쓰는 문장으로 이미 써버린 과거의 문장을 계속 엿 먹인다고 상상하면 가슴이 뻐근하다.”(38∼39쪽)

작가는 말한다. “누군가를 완벽히 가지려고 하면 할수록 고통에 빠진다. 사랑뿐만 아니라 우리 삶 자체가 그런 것이다. 당분간은 이런 생의 비밀을 찾아서 소설을 쓸 것 같다.”

조이영 기자 lycho@donga.com
#박범신#소소한 풍경#촐라체#은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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