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웅 교수 “실험용 생쥐는 119보다 더 많은 사람 구합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3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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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자 변형 쥐 개척자… 이한웅 연세대 교수

13일 취재팀이 방문한 이한웅 교수 연구팀의 실험용 쥐 사육실. 연구팀 이재훈 박사(오른쪽)가 쥐의 종류와 특성을 설명하고 있다.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13일 취재팀이 방문한 이한웅 교수 연구팀의 실험용 쥐 사육실. 연구팀 이재훈 박사(오른쪽)가 쥐의 종류와 특성을 설명하고 있다.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그는 생쥐들로 가득 찬 풀장에서 수영하는 것 같았다.”

1997년 미국 뉴욕의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의대 연구생 시절 지도교수가 실험용 생쥐 연구에 몰두하던 이한웅 박사(55·사진)를 가리켜 한 말이다. 이한웅 연세대 생명시스템대 생화학과 교수(실험동물연구센터 센터장)는 ‘실험용 생쥐’ 연구의 개척자다. 이 교수는 미국 지도교수의 적극적인 권유로 23년 전 실험용 생쥐 연구를 시작했고, 국내에선 불모지였던 이 분야의 연구를 주도해왔다.

13일 오전 기자가 찾은 이 교수의 연구실 찬장 한 칸은 미키마우스를 비롯한 온갖 생쥐 인형으로 가득했다. 이 교수는 “지인들이 어딜 다녀오면 저한텐 이런 선물을 주더라고요”라며 웃었다.

국내의 실험동물 연구센터는 이 교수 연구팀이 있는 연세대를 포함해 서울대, 이화여대, 생명공학연구원, 국립암센터 등 5곳에 불과하다. 2012년을 기준으로 국내에서 사용된 실험용 쥐만 한 해 150만여 마리로 전체 실험동물의 93%를 차지하지만 한국은 아직 실험용 쥐 자체 개발의 역사도 짧고 연구도 제한적이다.

이 교수는 “처음 지도교수와 생쥐 연구를 시작했을 때도, 1998년 한국에 돌아와 이를 계속하기로 다짐했을 때도 주변에선 회의적인 시각이 많았다”며 “하지만 ‘생쥐는 119보다 더 많은 사람을 구한다’는 미국의 한 저널 문구처럼 당시 이 분야가 매우 중요해질 것이라고 확신했다”고 말했다.

당뇨병 신약 효과를 시험하려면 당뇨에 걸린 쥐에 약물을 투여해야 한다. 이 질병 쥐를 국내에선 자체 개발하지 못해 아직 선진국에서 한 마리당 수십만 원의 높은 비용을 내고 수입하거나 생산 기술에 대한 특허료를 지불하고 기술 전수를 받아야 한다. 일반 쥐가 1만 원 정도인 데 비해 암 실험용 쥐는 한 마리당 42만 원, 비만 쥐는 25만 원 선이다.

그의 연구팀은 이러한 유전자 변형 쥐를 만드는 자체적인 우리 기술을 개발하는 데 힘쓰고 있다. 2006년에는 눈을 구성하는 단백질 유전자를 조작해 사람의 백내장과 똑같은 증세를 보이는 쥐를 만드는 실험에 성공했다. 또 내년엔 비만 쥐 생산 기술을 자체 개발할 계획도 세우고 있다.

연구팀의 사육실에선 생쥐 5000여 마리가 우리(cage) 1500개에서 자라고 있었다. 생육 기간과 색깔에 따라 구획이 나뉘어 있고 섭씨 20∼26도의 일정 온도와 습도, 조명이 유지됐다. 몇몇 우리에선 엄지손톱만 한 새끼 쥐들이 대리모 흰쥐의 젖을 빨며 자라고 있었다. 직원들이 매일 사료와 톱밥을 갈며 의학 산업의 발판이 될 생명들을 돌봤다.

이 교수는 “우리끼린 ‘나중에 지옥에 가면 쥐한테 실험을 당할 것’이란 농담을 하기도 한다”며 “힘든 과정이고 좌절할 때도 많지만 한국 의학 발전에 분명 의미가 있을 거라 믿는다”고 말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이 교수와 손을 잡고 42억 원을 들여 올해부터 2018년까지 암, 당뇨병 등 질병 유전자를 타고난 쥐를 만드는 5개년 프로젝트 ‘미래 맞춤형 모델동물개발 연구사업단’을 12일 출범시켰다. 의약품 실험에 필요한 질병 쥐를 자체 개발하는 ‘마우스센터’가 국내 최초로 설립된 것이다. 정면우 식약처 실험동물자원과장은 “유전자 변형으로 질병을 갖고 태어난 쥐는 불필요한 희생을 막고 신약 개발 비용도 절감해 ‘생명자원 주권’을 회복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곽도영 기자 now@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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