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소한 ‘땅콩의 성공’속엔 처참한 쓴맛이 숨겨져 있어요”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2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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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봉 17일만에 北美수익 5000만달러 넘긴 ‘넛잡’ 제작 하회진 대표

‘넛잡’의 캐릭터들과 함께한 하회진 대표. 왼쪽은 주인공 다람쥐 설리, 오른쪽은 설리의 친구인 생쥐 버디다. 하 대표의 모자는 다람쥐 일당의 홍일점인 앤디 캐릭터로 만들었다. 성남=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넛잡’의 캐릭터들과 함께한 하회진 대표. 왼쪽은 주인공 다람쥐 설리, 오른쪽은 설리의 친구인 생쥐 버디다. 하 대표의 모자는 다람쥐 일당의 홍일점인 앤디 캐릭터로 만들었다. 성남=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대통령까지 ‘넛잡’을 관람하고 창조경제의 모범 사례로 꼽아주시니 영화에서 땅콩 더미를 잔뜩 얻은 다람쥐처럼 날아갈 것 같은 기분입니다.”

4일 오후 서울 성남시 사옥에서 만난 애니메이션 영화 ‘넛잡’의 제작사 레드로버의 하회진 대표(46)는 “요즘 세상을 다 가진 것 같다”고 했다.

지난달 17일(현지 시간) 북미에서 개봉한 ‘넛잡’은 3일까지 5022만 달러(약 542억 원)의 수익을 올렸다. 이는 북미 개봉 한국 영화사상 최고 흥행 성적이다. 지금까지의 최고 기록은 2007년 ‘디워’가 벌어들인 1095만 달러였다. 북미 극장 수익만으로 제작비 450억 원을 뽑고 남았고, 120개국이 넘는 곳에 선(先)판매되기도 했다.

영화가 처음부터 비단길을 달린 것은 아니었다. 하 대표는 2008년 영화 기획안을 들고 투자자를 찾았지만 콘텐츠 관련 펀드들은 철저히 외면했다. 영화 대기업도 뚫지 못한 북미시장 공략이 무모하다는 것이었다.

“지난해 11월까지도 주변에서는 ‘진짜 미국에서 개봉하는 것 맞느냐’는 회의적인 시선이 지배적이었어요. 극장용 애니메이션이 국내서도 성공한 사례가 거의 없으니까요.”

‘넛잡’의 성공 비결을 묻자 하 대표는 “큰 꿈을 꾼 것이 오히려 적중했다”고 말했다.

“국내에서는 ‘뽀통령’(뽀로로)도 극장에선 참패했어요. 그래서 처음부터 전 세계 애니메이션 시장의 40% 이상을 차지하는 미국 시장을 노렸어요.” ‘뽀로로’는 TV 시리즈로 큰 성공을 거뒀지만 지난해 ‘뽀로로 극장판 슈퍼썰매 대모험’은 국내에서 관객 92만 명을 모으는 데 그쳤다.

캐나다 제작사 튠박스와의 협업을 통해 현지의 기호를 면밀하게 조사한 것도 흥행을 도왔다. 캐나다 출신 피터 레페니오티스 감독이 연출을, 론 캐머런 작가가 시나리오를 맡았다.

“현지 조사를 해보니 초등학교 고학년 남자아이가 구매력이 높은 것으로 나왔어요. 타깃을 여기에 맞췄죠. 미키마우스처럼 쥐 캐릭터에 대한 호감도가 높았고요. 배경도 이들에게 친숙한 1959년 미국의 한 공원으로 설정했죠.”

하 대표는 “지난해 아메리칸필름마켓(AFM)에서 ‘넛잡’의 맛보기 영상만을 보고 할리우드 메이저 배급사인 워너브러더스가 계약을 제안했을 때 흥행을 예감했다”고 했다. “미국인들이 ‘이 영화가 되겠다’ 싶으니까 서로 계약하려고 했어요. 현지 배급사인 오픈로드가 홍보마케팅비로 2500만 달러를 투입하겠다고 제안했을 때는 성공을 확신했죠.”

홍익대 금속공학과를 나온 하 대표가 2004년 설립한 레드로버는 원래 3차원(3D) 모니터를 만드는 제조업체였다. 24인치 제품이 6000달러(약 647만 원)인 고가의 레드로버 모니터는 영화 ‘아바타’의 후반 작업에도 쓰였고, 미국 중앙정보국(CIA) 구글 보잉 등이 사용한다.

“2006년 콘텐츠에 관심을 갖고 오락실용 게임을 만들었는데 처참하게 실패했어요. 그때 절실하게 느꼈죠. 사람들은 기술력이 뛰어난 제품이 아니라 재미가 있는 게임을 원한다는 걸요. 할리우드 메이저 영화사처럼 세계인에게 재미를 주는 기업이 될 겁니다.”

성남=민병선 기자 bluedot@donga.com
#넛잡#레드로버#하회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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