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회의 10년, 사형수는 부활의 ‘알’만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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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0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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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죄로 사형확정 43세 男, 10년간 연필로 달걀만 그려 복역수 작품전시회 출품
“명암에 다양한 깊이 담겨”… 사형수론 처음 대상에 뽑혀

사형수로 서울구치소에 복역 중인 이모 씨가 지난해 5월 삼중 스님에게 보낸 옥중 편지(왼쪽)와 제41회 교정작품전시회 대상 수상작
 ‘일상’. 편지에서 이 씨는 “절망 속에서 희망을 꿈꾸게 됐고, 꿈을 행동으로 옮겨 참회의 길을 걷고 있다”고 썼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사형수로 서울구치소에 복역 중인 이모 씨가 지난해 5월 삼중 스님에게 보낸 옥중 편지(왼쪽)와 제41회 교정작품전시회 대상 수상작 ‘일상’. 편지에서 이 씨는 “절망 속에서 희망을 꿈꾸게 됐고, 꿈을 행동으로 옮겨 참회의 길을 걷고 있다”고 썼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사형수는 하루에도 열 번은 죽는다. 먼발치서 들려오는 교도관 발소리에서도 사형수는 죽음의 그림자를 느낀다. 그런 사형수가 법무당국이 주최한 미술작품 전시회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사형수가 작품을 출품한 것도, 대상을 받은 것도 처음이다.

법무부와 서울지방교정청은 41회 ‘교정작품전시회’ 출품작을 심사한 결과 문예작품 수용자 부문 대상 수상자로 서울구치소에 수감된 이모 씨(43)가 출품한 ‘일상’을 뽑았다고 22일 밝혔다. 수형자와 교정 공무원이 출품한 548점 가운데 수용자 부문 최고상을 받은 것.

이 씨가 출품한 ‘일상’은 연필로 계란을 그린 작품으로, 둥근 알의 입체감과 명암의 깊이가 잘 표현돼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심사위원장을 맡은 윤여항 홍익대 미술대학 교수 등은 “입체감과 명암의 다양한 깊이가 잘 표현돼 있으며 ‘일상’이라는 주제를 독창적으로 표현했다”고 평가했다. 이 씨는 대상 소식에 크게 기뻐했다고 한다.

도박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살인을 저질러 2000년 사형 확정 판결을 받은 이 씨는 2000년 초 교정위원으로 활동한 부산 자비사 삼중 스님과 이인자 경기대 예술대학 명예교수(72·여)를 만나면서 참회하고 반성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삼중 스님은 이 씨를 처음 만나 ‘마음을 잘 쓰고 행동으로 참회해라. 모든 죄역은 이승에서 끝내고 다음 생을 멋지게 시작하라’고 가르쳤다. 이 씨는 ‘네 알겠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이후 이 씨는 2000년 초 불교에 귀의한 뒤 구치소 내부 법당에서 매일 기도하고 있다. 영치금을 모아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300만 원을 기탁했고, 지난해 동일본 대지진 때는 일본 돕기 성금 100만 원을 내기도 했다. 삼중 스님은 “이 씨는 과거를 참회하는 마음으로 그림을 그리고, 또 붓을 들고 있다”며 “죄를 떠나 한 인간의 승리이자 교정정책의 승리”라고 했다.

이 씨는 2002년 당시 교화활동을 나온 이 교수에게서 미술을 배웠다. 이 교수는 기초가 전혀 없던 이 씨에게 가로 세로 선을 긋는 기초부터 연습시켰다. 이 씨는 묵묵히 따랐다. 이후 이 교수는 ‘계란’을 그려보라고 했다. 꾸밈이 없는 순수한 소재인 ‘계란’을 표현해 내는 과정에서 ‘인내’를 배울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해서였다. 이 교수는 “종이와 연필이라는 최소한의 도구로 달걀의 명암과 광선의 변화를 모두 표현해 내도록 훈련시켰다”고 했다. 이 씨는 최근까지 10년간 계란을 주제로 한 그림만 그려 왔다.

이 교수는 “이 씨가 그림을 그리는 순간만큼은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나 집중할 수 있었던 것 같다”며 “누구든, 어디서든 열정을 쏟으면 목표를 이룰 수 있다는 걸 보여줬다”고 했다.

장관석 기자 jks@donga.com
#사형수#교정작품전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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