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만 잘해선 부족한 시대… 상대 설득하는 소통 능력 키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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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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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마다 준이치 도쿄대 총장

하마다 준이치 도쿄대 총장은 “설득력있게 의사표현을 할 줄 아는 인재를 육성하기 위해 다양한 경험을 사회적으로 장려하고 평가하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도쿄=김창원 특파원 changkim@donga.com
하마다 준이치 도쿄대 총장은 “설득력있게 의사표현을 할 줄 아는 인재를 육성하기 위해 다양한 경험을 사회적으로 장려하고 평가하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도쿄=김창원 특파원 changkim@donga.com
“앞으로 시대가 필요로 하는 인재상은 지식이 많은 사람이 아니라 습득한 지식을 얼마나 잘 활용해 타인과 소통할 수 있는지에 달려 있습니다.”

하마다 준이치(濱田純一) 일본 도쿄대 총장은 동아일보와의 신년인터뷰에서 “앞으로 사회적으로 요구되는 인재는 타인과의 협상이나 타인을 설득할 수 있는 사회적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소유한 사람”이라고 정의했다. “사회적 의사소통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활자화된 지식 못지않게 다양한 경험을 동시에 쌓아야 한다”고도 했다.

하마다 총장은 2009년 4월 도쿄대 총장에 취임한 이후 도쿄대의 글로벌화를 핵심 기치로 내걸었다. 그는 도쿄대를 세계적인 대학으로 만들기 위해 현행 ‘봄 입학제’에서 서구 대학과 같은 가을 입학제로의 전환을 추진하고 있다. 그는 인터뷰 도중 여러 차례 “일본사회의 사고방식과 시스템의 전환이 시급하다”며 “도쿄대는 전환기의 인재를 키워내야 하는 사회적 사명이 있다”고 강조했다. 판에 박힌 고정관념으로 ‘사회적 성공’을 재단하려는 일본 사회의 편협성이 일본의 발전을 가로막는다는 그의 지적은 한국 사회에도 적잖은 시사점이 있다.

―취임 직후 ‘터프(tough·강인한)한 도쿄대생 육성’을 목표로 제시했다. 앞으로 터프한 인재가 필요하다는 말인가.

“사회가 요구하는 인재상은 시대에 따라 달라지기 마련이다. 고도 경제성장 시대는 대학 졸업장만 있으면 모두 팔리는 시대였다. 지식을 많이 갖고 있을수록 힘이 됐다. 그러나 앞으로는 타인의 감정을 얼마나 잘 읽어내는가, 사람들의 능력을 어떻게 잘 끌어내고 종합하느냐가 중요하다. 남을 설득하고 협상하기 위해 공감(共感)하는 능력,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갈수록 요구될 것이다. 하지만 도쿄대생은 지식의 양 측면에서는 강할지 몰라도 유연하고 탄력적인 능력이 모자란다. 지금까지 일본에서는 성적이 우수하면 좋은 회사에 취직하고 사회적으로 성공하는 데 유리했다. 그러나 앞으로는 성적이 전부가 아니다. 성적이 지식이라면 이제는 이 지식을 잘 이용하고 조합해 사회적으로 얼마나 의미 있는 일을 하느냐가 중요하다. 내가 이렇게 말하면 일부 학생은 ‘이제 성적은 중요하지 않다’고 오해한다.(웃음) 여전히 성적은 중요하고 학생은 공부를 해야 하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다.”

―사회적으로 요구되는 지식도 달라진다고 지적했던데….

“동일본 대지진이라는 참화 속에서 ‘종합적인 지식’의 중요성이 더욱 중요해졌다. 예컨대 원전사고 수습을 위해서는 원전 전문가뿐만 아니라 지진전문가, 방사능전문가, 도시공학자, 의학자 등 다양한 방면의 전문가가 모여 논의하고 협력해야 한다. 각 분야의 전문가가 자신의 전문성에만 파묻혀 단절된 채 벽을 쌓아서는 시대적으로 필요한 지식을 생산하지 못한다. 다양한 학문 간 연구의 활성화가 필요하다.”

―가을입학제로의 전환도 시대가 요구하는 인재 육성을 위한 조치인가.

“도쿄대는 현행 봄입학제를 서구의 대학처럼 가을 입학제로 전환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높이려면 다른 문화의 접촉이 양적으로 질적으로 많아져야 한다. 많은 외국 학생이 도쿄대로 유학을 와야 되고, 그만큼 많은 도쿄대 학생이 해외로 나가야 한다. 문제는 서구 대학과 도쿄대의 학제가 달라 학점 인정이나 교류가 원활하지 않다는 점이다. 시스템적인 장애물을 없애자는 것이다.”

도쿄대의 가을입학제 추진은 일본 사회구조의 근간을 흔드는 혁명적인 문제 제기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일본에서는 ‘벚꽃 휘날리는 4월에 온 가족의 박수를 받으며 입학식장에 들어서는’ 모습이 메이지 유신 이래 정착됐다. 그만큼 가을입학제를 이질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많다. ‘굳이 일본 최고의 대학이 서구 학제에 맞출 필요가 있느냐’며 못마땅해하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그의 신념은 확고하다. “일본 대학의 국제화는 더는 지체할 수 없는 문제다. 고령화와 인구감소, 오랜 경기침체 등 일본 사회가 안고 있는 숙제를 풀기 위해서는 종전과 다른 성장방식과 인재 육성이 필요하다”는 것. 그는 “우리 것을 지키는 자존심이 아니라 일본 사회 전반의 구조개혁이 절박하다”며 “가을입학제는 일본 사회의 다양성을 높이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고 주장했다.

―학기제를 바꾸는 게 사회적 다양성 증가에 도움이 되나.

“가을입학제를 도입하면 대학 입시가 끝나고 입학까지 6, 7개월의 시간이 생긴다. 이 기간을 인턴이나 해외여행 등 다양한 사회적 경험을 쌓는 기회로 삼을 수 있다. 일본에서는 명문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입시 위주의 공부를 하고 이런 감각으로 대학에 들어가서도 고교 때처럼 좋은 점수를 받기 위한 주입식 공부만 하게 된다. 내가 무엇을 위해 공부를 하는지, 내가 배운 지식이 어떻게 쓰일 수 있는지 진지한 고민을 할 겨를이 없다. 그리고 대학 3학년 겨울방학 때부터는 취직활동에 나선다. 제때에 고교를 졸업해서 대학에 들어가고, 실패 없이 유명한 회사에 들어가는 것만이 사회적으로 성공했다고 평가하는 이런 천편일률적인 사고 속에서는 다양성이 자랄 기회가 없다. 남들이 인정해주는 성공을 위해 많은 학생이 사회적 경험을 쌓을 기회를 포기한 채 주어진 룰을 따르며 산다. 일본은 이제 사회적 룰을 좀 느슨하게 바꿀 필요가 있다.”

일본 사회에서는 대입재수나 취업재수를 부정적으로 보는 경향이 강하다. 제때에 대학을 가지 못하거나 취직을 하지 못하면 낙오자라는 편견 탓이다. 학교라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대학까지 올라가면 22세 무렵에는 사회로 진출해야 한다. 일본 사회는 도중에 엘리베이터에서 내리거나 멈추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하마다 총장은 “이 같은 전원입학, 전원졸업, 전원입사라는 관행은 산업구조의 변화와 함께 더는 통용되지 않게 됐다”며 “학교와 사회를 잇는 좀 더 다양한 길을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삶의 쉼표와 같은 ‘갭 이어(gap year)’를 두자는 것인가.

“갭 이어란 대학입학 예정자가 입학을 늦추고 다양한 사회적 경험을 쌓으며 견문을 넓히는 일종의 유예기간이다. 영국은 갭 이어를 전략적으로 활용하는 나라 중 하나다. 고교 졸업이 통상 6월인데 대학 입학이 시작되는 이듬해 10월까지 16개월 동안 임시 취업이나 자원봉사, 해외여행 등을 하면서 자유롭게 생활한다. 영국의 윌리엄 윈저 왕세손도 대학 입학 전 남미에서 자원봉사를 했다. 학생들은 갭 이어를 경험하면서 자신에 대해 돌아보는 기회를 갖거나 앞으로 무엇을 하고 싶은지 목표를 세우는 효과가 있다. 서구에서는 대학 재학 중 중퇴자가 20%에 이르지만 갭 이어를 경험한 학생은 3, 4%라는 조사결과도 있다.”

―도쿄대 학생이 해외유학을 꺼리는 것도 사회적 고정관념 때문이라는 건가.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도쿄대 학부생의 절반 가까이는 유학 등 해외경험을 원하지만 실제로 나가는 학생은 0.4%에 불과하다. 외국에 나가면 ‘취직하는 데 시간이 걸린다’ ‘기업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모르겠다’는 이유로 포기하는 사례가 많다. 이전까지 일본은 한 회사에 취직해 거기서 일생을 바쳐 근무하는 단선적 경력이 주류였다. 하지만 이제는 갭 이어를 이용해 스스로의 힘을 키워 다음 직업을 찾는 감각을 길러야 한다. 인생 속의 갭을 포용할 수 있는 사회적 의식개혁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우선 입시와 입학 간에 갭을 두자는 것이다.”

―도쿄대에는 한국인 학생도 많다. 한국인 학생에 대한 평가는….

“대학원에서 5, 6명을 가르쳐봤다. 도쿄대에 유학하고 있는 한국인 학생은 전체 외국인 유학생의 22% 정도다. 기본적으로 도쿄대에 오는 한국인 학생들은 우수한 학생이다. 매우 듬직하고 성실하고 ‘아, 이런 생각을 가지고 사는구나’라며 놀랄 때가 많다. 한국인 학생들은 대체로 일본 학생과 비슷하다. 성실하고 주어진 과제에 대한 적응력은 뛰어나지만 도전정신은 다소 부족하다. 반면에 서양 학생들은 때로는 논리적인 비약이 있지만 매우 크리에이티브(창조적)하다. 섞여서 함께 공부하면 서로 보완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교류는 중요하다.”

―2004년 법인화 이후 도쿄대에서도 기초학문과 응용학문 간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법인화 이후 기초학문 분야의 상실감이 크다. 하지만 기초학문이 응용학문의 기반이 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총장으로서 기초학문이 패배의식을 느끼지 않도록 애쓰고 있다. 응용학문에서 첨단 프로젝트로 돈을 벌면 재분배하고, 대학 기부금의 일부를 기초학문에 의무적으로 배정하는 등 기초학문 분야가 허물어지지 않도록 서로 책임감을 가지고 있다. 법인화 이후 긍정적 효과도 나타나고 있다. 윤리학과의 경우 응용윤리라고 해서 지금까지의 전통적 철학 범주의 윤리학을 넘어 의료현장에서의 윤리, 서로 살아가며 사귀는 대인윤리 등 실생활과의 접목에 힘쓴 결과 정부와 재단으로부터 기부도 많이 받고 있다. 법인화 이후 전반적으로 교수들이 바빠졌지만 학문 발전을 위한 긍정적 의미로 받아들이고 있다.”

도쿄=김창원 특파원 changkim@donga.com   
:: 하마다 총장은 누구 ::


“글로벌만이 日 바꿀수 있다”… 도쿄대 국제화에 앞장

1950년에 태어나 도쿄대 첫 전후(제2차 세계대전 이후)세대 총장으로 불린다. 1969년 도쿄대 법학부에 입학해 석사와 박사를 마친 국내파 학자다. 미디어법 정보법 등 뉴미디어시대의 정보정책통이다.

2009년 4월 6년 임기로 제29대 도쿄대 총장에 취임하면서 임기 내 핵심공약으로 도쿄대의 국제화를 내세웠다. 도쿄대는 지난해 영국 더 타임스가 주관한 세계대학평가(THE·Times Higher Education)에서 8위(명성 평가)에 올랐을 정도로 이미 세계적 대학으로 평가받고 있다. 하지만 하마다 총장은 자신이 생각하는 ‘글로벌한 도쿄대’의 모습과 현재 상황은 한참 떨어져 있다고 보는 듯했다.

하마다 총장이 구상하는 ‘글로벌’은 현대자본주의 사회에서 기업과 자본이 쉼 없이 시장을 확장하는 그런 글로벌이 아니다. 다른 문화와의 접촉면을 확장시키고 그 안에서 서로 다양성을 나눠가짐으로써 결과적으로 개인과 조직의 사고 깊이와 능력의 외연을 넓혀가는 긍정적 상호작용으로서의 글로벌이다. 이 같은 글로벌만이 정체된 일본사회를 바꿀 수 있다는 게 그의 신념이다.

지난해 5월 1일 현재 도쿄대로 유학 온 외국인 학부생은 전체의 1.9%, 해외 대학으로 유학을 간 도쿄대 학부생은 0.4%에 불과하다. 하마다 총장은 “단기유학이나 서머스쿨의 형태로라도 도쿄대 학부생의 30% 이상이 해외 경험을 하도록 하고 싶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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