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뭉치 ‘폭탄 의경’ 새 사람된 사연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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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7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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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경찰청 이영만 일경, 3차례 영창 들락날락하다 우수대원 거듭나

6일 서울 서대문구 미근동 경찰청에서 열린 ‘전의경 생활문화 개선성과 보고회’에서 이영만 일경이 지난해 4월 의경으로 입대한 후 
영창을 세 번이나 갔다 왔던 경험을 얘기하고 있다. 문제아로 낙인 찍혔던 그는 경남지방경찰청 기동3중대에 배치받은 후 부대원들의 
따듯한 배려 덕에 우수대원으로 거듭났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6일 서울 서대문구 미근동 경찰청에서 열린 ‘전의경 생활문화 개선성과 보고회’에서 이영만 일경이 지난해 4월 의경으로 입대한 후 영창을 세 번이나 갔다 왔던 경험을 얘기하고 있다. 문제아로 낙인 찍혔던 그는 경남지방경찰청 기동3중대에 배치받은 후 부대원들의 따듯한 배려 덕에 우수대원으로 거듭났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영창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이영만입니다.”

지난해 4월 입대해 의경 복무 1년 3개월 동안 소위 ‘영창(유치장)’을 세 번이나 다녀온 경남지방경찰청 기동3중대 이영만 일경(21). 이 일경은 6일 서울 서대문구 미근동 경찰청에서 열린 전·의경 생활문화 개선보고대회에서 자신을 이렇게 소개했다.

평범한 대학생이었던 이 일경은 의경이 된 뒤 ‘문제 대원’으로 변해갔다. “고참이 후임을 때리는 게 당연한 분위기였고 신입대원 때문에 제가 대신 맞는 일이 반복되니까 어느 순간 저도 손이 나가더라고요.”

결국 이 일경은 첫 부대에 배치된 지 100일도 안 된 지난해 8월 후임 이경들을 폭행해 유치장에 갔다. 이 일로 그는 새 부대로 전출됐지만 그곳에서도 동기들과 함께 후임대원에게 ‘머리 박기’를 시켰다가 적발됐다. 경고를 받는 데 그친 다른 동기들과 달리 ‘전과’가 있는 이 일경은 올 1월 보름간 유치장 생활을 했다. 이후에도 부대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그는 후임대원들을 시켜 선임병에게 반말을 하도록 하는 장난을 치고 훈련 중 동료에게 욕설을 했다는 이유로 또다시 후임대원들의 소원수리 명단에 이름이 올랐다. 두 번째 유치장 생활을 마친 지 한 달도 안 돼 이 일경은 또다시 갇혔다.

가는 곳마다 사고를 치는 이른바 ‘폭탄’인 그를 받아줄 부대는 없었다. 여기저기서 퇴짜를 맞다 올 3월 지금 근무하는 기동3중대에 배치됐다. 3중대도 최근 3년간 부대 사고율 1위를 기록한 만만치 않은 ‘문제 부대’.

하지만 이 일경의 인생은 이곳에 처음 배치 받은 날부터 바뀌기 시작했다.

100여 명의 대원이 부대 연병장에 두 줄로 늘어서서 이 일경을 맞이한 것.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한 명씩 악수를 하던 이 일경에게 이 부대 심형태 중대장은 “나도 의경 출신이라 네 마음 잘 안다. 여긴 외인구단 같은 곳이니까 과거는 다 잊자”고 말했다.

부대원들의 따뜻한 대우에 이 일경은 입대 전 평범한 청년의 모습을 되찾아갔다. 그는 “나를 인정해주는 사람들을 만나니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졌다”며 “세 번째 영창 갈 때 어머니가 통화 중 많이 우셨는데 더는 불효하지 말자는 생각도 자주 했다”고 말했다. 요즘 이 일경은 대학시절 밴드 경험을 살려 부대 내 밴드 ‘수신호’와 사물놀이 동아리 ‘어처구니’에서 맹활약하고 있다. 지금 부대에 온 지 4개월쯤 됐는데 중대원들이 매달 투표로 뽑는 ‘우수대원’에 벌써 2차례 선정됐다.

6일 경찰청에서 열린 보고대회에서 이 일경은 “유치장 생활을 자주 하다 보니 ‘동료들이 모두 나를 미워한다. 나는 혼자다’라는 생각만 들었다”며 “나를 고자질한 동료들, 색안경을 끼고 보는 대원들에게 항상 분노를 느꼈고 그것이 사고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그는 “아직도 가끔 욱할 때가 있지만 그때마다 처음 부대(기동3중대)에 오던 날 대원들과 악수할 때 느낀 온기를 떠올린다”며 “그럼 금방 화가 사라진다”고 말했다.

경남대 경찰행정학과 출신인 그는 “경찰이 되려고 의경에 지원했는데 벌써 빨간 줄이 세 개”라며 “‘내가 경찰이 될 자격이 있나’ 하는 자괴감도 들었지만 경찰의 꿈을 포기하지 않으려 한다”고 말해 박수갈채를 받았다. 그는 발표 말미에 뒷주머니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 “꼭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며 담담히 읽어 내려갔다.

“경남청 6기동대 서○○, 5기동대 민○○, 1기동대 엄○○. 그동안 고통을 줘서 정말 미안하다. 지금이라도 술 한잔하면서 제대로 용서를 빌고 싶구나.”

신광영 기자 ne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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