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연방 법집행기관 아시아계 최고위직 빅터 송 국세청 조세범칙수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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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6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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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 외할아버지, 가족과 조국을 부끄럽게 하지말라고 당부하셨죠”

6일 미국 워싱턴 국세청 본부 2층 집무실에서 만난 한국계 3세인 빅터 송 조세범칙수사실장. 그는 “국세청 조세범칙수사실에서 일하게 된 것은 새로운 세계를 발견한 것과 같았다”고 말했다. 워싱턴=최영해 특파원 yhchoi65@donga.com
6일 미국 워싱턴 국세청 본부 2층 집무실에서 만난 한국계 3세인 빅터 송 조세범칙수사실장. 그는 “국세청 조세범칙수사실에서 일하게 된 것은 새로운 세계를 발견한 것과 같았다”고 말했다. 워싱턴=최영해 특파원 yhchoi65@donga.com
세계에서 활동하는 4200명의 범칙수사(Criminal Investigation) 특별요원(Special Agent)을 총지휘하는 미국 연방 법집행기관의 아시아계 최고위직. 조세 범죄와 돈세탁 등 국제 금융범죄를 소탕하는 미 연방 법집행기관의 감독.

한국계 3세인 코리안 아메리칸 빅터 송 미 국세청(IRS) 조세범칙수사실장(53)에게 따라붙는 수식어는 이처럼 다양하다. 그의 외할아버지는 하와이 사탕수수밭에서 일한 이민 1세대였다. 1995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 받은 독립운동가 정두옥 씨(1975년 사망)다.

하와이에서 태어나 1981년 이후 30년째 미 국세청에 근무 중인 송 실장은 한국을 포함해 아시아계 미국인으로서는 연방 법집행기관 최고위직에 올라 있다. 미 국세청에서 청장과 부청장에 이어 세 번째로 높은 자리다. 그는 “외조부는 자식들에게 가족을 부끄럽게 하지 말라고 항상 얘기했다”고 말했다. 송 실장을 6일 워싱턴의 미 국세청 본부 2층 집무실에서 인터뷰했다.

―범칙수사실은 어떤 일을 하는 곳인가.

“세금에 대한 법집행을 한다. 탈세든, 소득신고를 누락하든, 아니면 소득신고서에 사인을 잘못했더라도 우리 업무에 해당된다. 돈세탁도 수사하고 있다. 대부분 마약거래와 연관돼 있다. 세탁자금은 미국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몰수 대상이다. 지난 2년 반 동안 국제적인 공조를 통해 많은 수사를 했다. 적법하게 세금을 내지 않으면 미국 국경 밖이어도 수사망이 뻗쳐진다. 테러자금도 수사대상이다. 돈 흐름을 추적하면서 연방수사국(FBI) 및 마약수사국(DEA)과도 공조한다.”

―왜 국세청을 직장으로 선택했나.

“대학 졸업 당시 법 집행에 관심이 많았다. 대학 졸업 직후인 1981년 하와이에서 국세청 직원 선발시험에 합격했고 1983년에 특별수사관으로 승진했다. 아주 다양한 사건을 접할 수 있었고 일이 매우 재미있었다. 탈세, 마약, 돈세탁 등 내가 수사하고 싶은 분야였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나쁜 사람들을 감옥에 보낼 수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은 일은 없었다.”

―범칙수사 업무에서만 30년 동안 일했는데….

“범칙수사실의 특별요원이 된 것은 내가 원했던 것으로 보람 있는 일이었다. 테러자금 조달 수사와 돈세탁 수사, 마약 수사와 최근 국제 은행 수사 등 화이트칼라 범죄와 관련된 수많은 수사를 맡았고 감독했다. 국제적으로 얽히고설킨 복잡한 금융거래를 잡아내 수사하고 법정에 세우는 것이 보람 있다. 특별요원들이 있었기 때문에 여러 산업에서의 탈세 행태를 바로잡을 수 있게 됐다.”

―한국계 미국인으로 차별을 받은 적은 없었나.

“없었다. 하와이에서 조사관으로 일할 때 아시아계가 많았다. 시애틀과 오클랜드 등 서부 지역에서 일할 때도 차별은 없었다. 국세청은 언제나 나에게 더 중요한 업무를 맡겼다. 여기선 다양한 인종이 함께 어울려 일할 수 있는 분위기가 갖춰져 있다. 나는 조세범칙수사실의 책임자(chief)다. 어떤 유리천장을 느낀 적이 없다. 일을 열심히 하면 승진되는 곳이다.”

―국세청 공무원으로서 가장 중요한 자질은 무엇인가.

“국민의 신뢰를 받을 수 있으려면 청렴해야 한다. 국세청 직원이 청렴해야 사람들이 믿음을 가질 수 있다. 실수를 할 여유가 없다. 우리가 재판에 기소한 경우 92%가 유죄판결을 받는다.”

―미국에서 대부분 아시아계 부모들은 자식들이 의사나 변호사가 되기를 바라는데….

“아버지는 자식들이 특정 직업을 갖기를 원하지는 않았다. 다만 일하는 분야에서 최선을 다하고 행복하라고 했다. 나는 언제나 법 집행에 관심이 많았다. 대학에서 전공은 커뮤니케이션이었지만 이곳에 들어와서 수사가 어떻게 진행되는지를 보면서 나에게 정말 맞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새로운 세계를 발견한 것 같았다.”

송 실장은 미 국방부에도 합격 통지를 받았다. 하지만 국세청에 먼저 합격을 해 이곳을 직장으로 선택했다.

―수사요원들은 총을 갖고 있다는데….

“그렇다. (셔츠 안쪽을 가리키며) 여기에 차고 있다. 수사관들은 언제나 총기를 갖고 있어야 한다. 우리 업무는 FBI나 마약수사국과 같은 영역으로 분류된다. 범죄자를 체포해야 하기 때문에 총을 소지하고 있어야 한다. 총을 겨눈 경우는 많았지만 실제로 사람에게 쏴본 적은 없다.”

―외할아버지가 독립운동가이신데….

“1904년 외할아버지는 당신의 부모를 모시고 하와이로 이민 와 사탕수수 농장에서 일했다. 그는 1907년 합성협회 멤버였고 해외의 독립회 회원으로 활동했다. 이 조직들은 일제에서 한국이 광복되도록 하는 자금줄 역할을 했다. 이승만 대통령이 당선되고 나서 비자 발급이 거절돼 모국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1961년 이승만 대통령이 물러난 후에야 고국에 돌아갈 수 있었지만 그때는 이미 하와이에 정착해 미국 시민이 되기로 결정한 후였다.”

―외조부모와 부모의 삶에서 무엇을 배웠나.

“외할아버지는 ‘가족과 조국을 부끄럽게 하지 말라’고 항상 말씀하셨다. 무엇을 하든 최선을 다하라고 하셨다. 우리가 더 나은 삶을 위해 한국에서 미국으로 건너왔기 때문에 매사에 최선을 다하라고 당부했다. 외할아버지는 열심히 일했고 자식들을 사립학교에 보냈다. 당시에는 사립학교에 자식들을 보내는 한인 가정이 많지 않았다. 장남은 수의사가 됐고 차남은 전쟁 중에 죽었다. 3남은 항공우주국(NASA)의 엔지니어가 됐다. 아버지는 내가 승진했다고 할 때마다 ‘다음 승진은 언제냐’고 되물었다. 아버지는 아시아계가 별로 없는 법집행기관에서 내가 두각을 드러내는 것을 아주 자랑스러워했다.”

―아시아계로서는 연방 법집행기관의 최고위직이다.

“법집행기관에 근무하는 아시아계 직원을 대상으로 강연할 때마다 ‘아시아계 출신은 성공하기 어려운데 당신은 어떻게 성공할 수 있었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지금 자리에 있는 것은 아시아계로서 큰 영광이다. 다른 사람들에게 ‘나도 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보다 먼저 나서서 일하고 조직에 변화를 줄 수 있어야 한다. 내가 계속 승진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변화를 이뤄내고 싶다면 나서라’고. 나는 한국계 미국인인 것이 자랑스럽다.”

―당신을 롤 모델로 삼고 싶어 하는 한국계 미국인들이 많다. 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4월 뉴저지에 있는 미 한국상공회의소(KOCHAM)에서 강연한 적이 있다. 여기에 모인 한인 비즈니스맨들에게 ‘한국인의 유산을 갖고 있는 것도 중요하지만 옳은 일을 하는 것은 더욱 중요하다’고 했다. 한국인들은 일에 매진하지만 창업가 정신과 함께 직업윤리로 무장할 필요가 있다.”

―수사업무에 북한과 관련한 돈세탁도 포함돼 있나.

“돈세탁이 미국 납세자의 돈과 관련된 것이라면 관여한다. 특정 국가에 대해선 얘기하지 않겠다.”

―한인 등 소수인종에서도 탈세가 많은가.

“그런 통계는 내지 않는다. 탈세는 유혹에 빠지기 쉬운 분야다. 탈세는 모든 경제그룹에서 일어난다. 조금 탈세하면 다음에 더 큰 유혹에 빠지기 십상이다.”

한국계 3세인 그는 한국말을 못한다. 미국의 주류사회에서 성공한 대표적인 케이스지만 그와 가족의 사고방식은 너무나 한국적이었다. 송 실장은 인터뷰 내내 ‘가족’이라는 말을 수십 번 강조했다. 자녀 교육에 열성인 아내는 중국계 미국인이고 세 자녀를 두고 있다. 첫째는 지난해 대학을 졸업했고 둘째는 이달 중순 고교를 졸업한다. 셋째 딸은 12세다.

―자녀들에게 어떤 얘기를 하나.

“‘무엇을 하든 우리가 지지할 테니 최선을 다하라’고 당부한다. 외할아버지 말씀대로 가족을 부끄럽게 하지 말라는 게 집안의 가훈이기도 하다. 외할아버지는 한인 사회에서 잘못한 일이 신문에 나면 엄청나게 화를 내시곤 했다.”

―당신 아들처럼 사회에 진출하는 젊은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아들은 지금 의대 진학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그동안 가족이 일했기 때문에 네가 편했지만 이제부터는 네가 가족을 책임져야 한다’고 말했다.”

송 실장은 인터뷰가 끝난 후에 “진정 용감한 사람은 나의 외할아버지였다”며 “고국을 떠나 자식을 위해 새 세상을 개척한 외할아버지는 총을 차고 범죄자를 체포하는 국세청 특별요원보다 훨씬 용감한 터프가이였다”고 말했다.
FBI와 맞먹는 조세범칙수사실

조세범칙수사실 특별요원 배지.
조세범칙수사실 특별요원 배지.
미국 시카고를 중심으로 조직범죄단을 이끌었던 마피아 두목 알 카포네(1899∼1947). 주류 제조 및 판매가 금지된 1920년에 그는 시카고를 중심으로 도박과 매매춘, 밀수 등 불법 활동을 통해 많은 돈을 벌었다. 당시 그의 나이는 21세. 카포네는 시카고 경찰과 정계 인사를 매수해 1927년에는 1억 달러가 넘는 소득을 올렸다. 당시 미 국세청 조사국에서 카포네의 탈세행위를 조사했다. 국세청 특별요원인 프랭크 윌슨은 카포네의 금융거래를 추적해 탈세 행위를 잡아내고 1932년 그를 법정에 기소했다. 암흑계에 군림했던 카포네는 12년의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카포네를 감옥에 넣었던 미 국세청 조사국은 현재 빅터 송 실장이 이끌고 있는 조세범칙수사실(Criminal Investigation)의 전신이다. 국세청 조사국은 1919년 7월 발족했다. 보통 사람은 물론이고 유명한 사업가와 정부 관료, 범죄자에 이르기까지 탈세행위는 조사국 특별요원의 손에서 벗어날 수 없다.

현재의 이름인 조세범칙수사실로 이름을 바꾼 때는 1978년 7월. 전통적인 탈세 행위뿐 아니라 자금세탁과 마약거래, 테러자금도 집중적인 수사대상에 오르게 된 때다. 4200여 명의 특별요원은 고도로 훈련되고 직업정신이 투철한 공무원으로 이름 나 있다. 화이트칼라의 금융범죄를 집중적으로 감시, 단속하는 곳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특별요원은 항상 권총을 소지하고 다닌다. 언제든지 범죄자를 잡아 체포할 수 있는 권한이 있기 때문이다. 권한이 막강해 대표적인 법 집행기관인 미 연방수사국(FBI)이나 마약수사국(DEA)과 같은 반열에 올라 있다. 특별요원이 수사를 시작한 경우 기소율은 80%를 넘고 법정에 기소된 경우 92%가 징역형을 선고받는다.

워싱턴=최영해 특파원 yhchoi65@donga.com 
:: ◇ 빅터 송 조세범칙수사실장은 ::

―1958년 하와이 출생
―1981년 미 하와이대 졸업(커뮤니케이션 전공)
―1981년 미 국세청(IRS) 입사
―1983∼1992년 하와이 호놀룰루 조세범칙 수사실 특별요원
―1992∼1996년 시애틀 미 국세청 그룹 매니저, 특별수사본부 시니어 애널리스트
―1997∼1999년 캘리포니아 주 라구나니구엘 지점장
―2000∼2003년 포틀랜드사무소 특별요원 책임자
―2003∼2004년 오클랜드사무소 특별요원 책임자
―2004∼2007년 태평양지역 디렉터
―2007∼2009년 조세범칙수사실(CI) 부실장
―2010∼현재 조세범칙수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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