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립니다] 이국종 교수가 동아일보 기자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보내는 편지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5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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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많은 직업이 있습니다. 그중에서 기자라는 직업을 선택한 이유와 시작을 동아일보사에서 하려고 결심한 것에는 각자 큰 뜻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시점으로부터 여러분이 평생 가지고 가야 하는 초심을 같이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저 같은 일반인들이 기자들을 보는 시각에는 여러 가지가 있는 줄 알고 있습니다. 그 시각이 긍정적이건 부정적이건,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기자들이 세상에 미치는 영향은 참으로 크다는 것입니다. 단 한 줄의 기사나 사진만으로 역사가 바뀔 수도 있다는 것을 우리 모두는 잘 알고 있습니다. 세상에 한 줄기 빛과 같은 존재가 될 수 있다는 것과 큰 피해를 줄 수 있다는 이유가 바로 기자들에게는 고도의 전문성과 윤리의식을 요구하는 큰 짐으로 작용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저는 오래전부터 기자들이야말로 수도승과 같이, 성직자와 같이 자신의 몸을 던져 정의를 실천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이것은 기자들에게 과도한 부담을 드리겠다는 뜻이 아니고 혼탁한 인간사 속에서 절제된 감정과 냉철한 이성을 조절하면서도 어렵고도 힘든 가시밭길인, 어떤 경우에는 어느 방향이 진리인지도 모르는 안갯속에서도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 소임을 실천해 나가야 하는 기자들의 숙명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적어도 1년에 한 번씩은 선정이 되는 주요 문학상 수상집은 꼭 읽어 보려고 노력해 왔습니다. 제가 2000년대 초반 외과학교실 연구강사 시절 김훈 작가가 쓴 ‘칼의 노래’를 처음 읽었을 때의 느낌은 아직도 지울 수 없습니다. 뭔가 매우 다른 느낌의 문체를 접한 뒤 다시 작가의 약력을 보니 작가가 한 주요 신문사의 기자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때서야 ‘난중일기’를 마치 3인칭 신문기사처럼 써 내려가며 주인공의 인간적인 갈등을 실어내는 독특한 문체를 이해하게 되었고 기자 출신 작가의 필력을 다시금 느꼈습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이러한 글을 쓸 수 있는 분이 조금 더 현장에서 기사를 쓰셨다면 얼마나 더 많은 사람들에게 힘이 되었을까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동아일보는 세간에 ‘민족정론지’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각자 입장에 따라서 본 설립자분의 옳고 그름을 떠나서 분명한 사실(fact)은 동아일보가 일제강점기에 손기정 선수의 가슴에서 일장기를 지웠고 대한민국 정부에 맞서기도 하는 등 ‘무엇인가 옳은 일’을 하려다가 폐간에까지 이르기를 수차례나 한 언론사라는 것입니다. 빈약한 한국 현대사에서 자기 목에 칼이 들어오는 상황에서도 ‘옳은 일’에 대한 무조건적인 추구와 ‘이건 아니지 않은가’라는 정신에 입각한 “아닌 건 아닙니다”라고 기사를 내는 언론사에 여러분은 인생을 걸고 입사하려는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가 모든 언론인의 선봉에 서기를 진심으로 희망합니다. 제가 런던에서 근무할 때 같이 근무하던 외상외과 전공의들에게 강한 정신자세를 강조하면서 말한 것이 있습니다.

“We are the spearhead of the whole medical staffs!”(우리가 전체 의료진의 중추이다) 이러한 자세는 필연적으로 개인의 희생을 요구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분은 타 언론사 기자들과는 달리 단순한 현상만을 표현하기보다는 배경까지 꿰뚫어 보는 시각을 가져야 하며 타인의 어려움이나 아픔을 마음속 깊이 느껴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만 타 언론사와는 차원이 다른 깊이 있는 기사를 쓸 수 있으며 그런 하나하나의 노력이 모여서 좀 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 초석들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렇게 살겠다고 다짐하는 분들만이 100년 역사에 빛나는 민족정론지라고 자타가 인정하는 동아일보의 기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부디 신입기자 시절부터 부지런히 현장을 배우고 취재 중간 중간에 비는 틈을 활용해서 더 많이 읽고, 자기 자신을 던져 세상을 밝고 맑게 만드는 큰 기자가 되기를 충심으로 기원합니다.

다시 한 번 동아일보사에 입사하려는 여러분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아주대 의과대학 외과 부교수 이국종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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