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문명 기자의 사람이야기]“獨통일에도 사이클이 숨은 역할… 서울~ 평양 달린다면 꼭 참가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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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0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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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르 드 DMZ∼서울’ 참가한 독일팀, 그리샤 야노르슈케-디르크 뮐러

분단을 겪은 나라에서 통일 세대로 살고 있는 서독의 두 젊은이 그리샤 야노르슈케(왼쪽)와 디르크 뮐러 선수는 피와 상처로 얼룩진 비무장지대(DMZ) 구간을 자전거로 달리면서 “한국의 분단으로 인한 상처가 남의 일 같지 않아 몸보다 마음이 더 힘들었다”고 전했다. 이번 DMZ∼서울 국제사이클대회에 참가해 선전한 두 선수는 “한국의 DMZ 풍광이 너무 아름다워 분초를 다투며 속도전을 벌이던 선수들이 탄성을 내지르며 달리는 이색적인 모습이 펼쳐졌다”며 “서울∼평양 사이클대회가 열린다면 꼭 참가하고 싶다”고 했다. 김동주 기자 zoo@donga.com
분단을 겪은 나라에서 통일 세대로 살고 있는 서독의 두 젊은이 그리샤 야노르슈케(왼쪽)와 디르크 뮐러 선수는 피와 상처로 얼룩진 비무장지대(DMZ) 구간을 자전거로 달리면서 “한국의 분단으로 인한 상처가 남의 일 같지 않아 몸보다 마음이 더 힘들었다”고 전했다. 이번 DMZ∼서울 국제사이클대회에 참가해 선전한 두 선수는 “한국의 DMZ 풍광이 너무 아름다워 분초를 다투며 속도전을 벌이던 선수들이 탄성을 내지르며 달리는 이색적인 모습이 펼쳐졌다”며 “서울∼평양 사이클대회가 열린다면 꼭 참가하고 싶다”고 했다. 김동주 기자 zoo@donga.com
대낮 도심에서 햇빛에 반짝이는 은륜(銀輪) 물결이 장관이었다. 22일 강원 고성군 통일전망대에서 시작해 사상 최초로 비무장지대(DMZ)를 통과한 ‘투르 드(tour de) DMZ∼서울 국제사이클대회’. 마지막 구간 경기가 벌어진 24일 낮 12시 반 서울 광화문 문화체육관광부 청사 앞 결승선으로 사흘간 자전거 하나에 몸을 싣고 한반도 DMZ를 거쳐 온 철각(鐵脚)들이 속속 도착했다.

“와, 정말 기쁩니다. 제 인생에서 가장 멋진 대회였어요.”

이날 구간 승리 1위로 결승선을 통과한 독일 그리샤 야노르슈케(23)는 만면에 웃음을 띠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팀으로 움직이는 사이클경기 특성상 야노르슈케의 앞길을 터주었던 선배 디르크 뮐러(37)도 대견하다는 표정으로 후배를 바라보았다. 독일 프로 선수 30여 명과 함께 이번 대회에 참가한 두 사람. 분단의 경험이 있는 나라에서 온 때문인지 피와 상처로 얼룩진 분단의 한반도를 자전거로 횡단하는 마음이 복잡했다고 한다.

‘이번 대회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구간이 어디였느냐’고 묻자 모두 첫날 제1구간을 꼽았다. 통일전망대를 출발해 미시령 옛길∼을지전망대∼펀치볼∼도솔산을 거쳐 평화의 댐으로 골인하는 184km 코스다.

“힘든 코스였지만 몸보다 마음이 더 힘들었다. 60년 전 피로 물들었던 현장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아름다운 곳이었다. 인적 없는 숲 속을 철조망이 가로지르고 있었다. 긴장되면서도 당혹스러웠다. 영원히 잊혀지지 않을 것 같다.”(뮐러)

“통일전망대를 출발해 철조망 너머 북한 땅을 바라봤을 때 뭐라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이었다. 전망대 앞에서 군단장과 사진촬영을 하고 헌병들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내려올 때는 무슨 전쟁영화를 찍고 있는 것은 아닌지 착각이 들었다. 불과 얼마 전 분단 독일이 이랬겠구나 생각하니 잠이 오지 않았다. 속이 울렁거리기까지 했다. 한국이 분단 상황이라는 것이 실감났고 이번 대회가 그런 상황을 알리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야노르슈케)

이문재 시인은 “자전거를 타면 온몸이 엔진이 된다. 자동차가 자연을 그냥 통과하는 것이라면 자전거는 대자연 속으로 스며든다”고 했다. 오랜 프로 선수 생활을 하면서 각종 세계대회에도 여러 번 참석했던 뮐러도 비슷한 말을 했다.

“한 도시를 자전거로 다닐 때마다 길과 사람, 그 나라의 역사를 많이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인지 사이클대회는 소통, 교류에 기여하고 평화의 메시지를 전하는 특징이 있다. 남들이 가지 않은 길, 금지된 길을 통과하면서 벽을 허무는 이벤트 대회로 자리매김하는 경우가 많다.” 그의 말이 이어졌다.

“통일 독일 이전에 유럽에도 폴란드 체코 독일 국경을 가로지르는 평화 투어 사이클대회가 있었다. 일반인들에게는 통행이 금지되어 있는 코스였다. 대회 기간에 특별히 허용된 국경을 넘으며 선수 모두는 자전거로 평화와 교류의 메시지를 전달한다는 자부심이 컸다. 이 대회는 매년 언론에 특별한 관심을 받았는데 외국인에게 분단 독일의 아픔을 알리는 역할을 했다. 이번 서울대회 역시 독일 언론에 소개되고 있다. 한국이 평화의 땅이 되기를 염원하는 세계인들의 관심을 끄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야노르슈케가 말을 받았다.

“DMZ 구간은 그 어떤 곳보다 아름다웠다. 분초를 다투는 선수들이 경치가 아름답다고 탄성을 내지르는 일은 없는데 모두 중간중간 환호성을 지르며 구간을 통과했다. 그런데 그런 아름다운 자연에 사람이 살지 않는다는 게 이상했다. 민통선 안에는 마을이나 군부대도 전혀 볼 수 없었다. 독일 같은 경우 어딜 가나 20km쯤 가다 보면 여지없이 마을과 사람들이 보였는데 이런 풍광에 익숙한 나로서는 너무 낯설고 안타까웠다.”

속도에 신경 쓰느라 풍경에 눈길조차 줄 틈이 있었을까 싶은데 두 사람 모두 몸으로 풍경을 찍은 듯 묘사가 구체적이었다.

프로 생활 14년차인 뮐러는 중장거리 육상선수였다가 15세 때 사이클을 시작해 19세에 국가대표로 선발됐다. 21세 때는 유럽챔피언컵대회 4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세계 20여 개국 대회에 참가한 경험이 있다.

야노르슈케는 독일 사이클의 영웅 얀 율리히를 보면서 사이클 선수가 됐다. 1997년 율리히가 미국 사이클 영웅 랜스 암스트롱과 접전을 벌이며 투르 드 프랑스에서 우승컵을 거머쥐는 모습을 보며 자전거와 인연을 맺었다. 17세 때 청소년국가대표 선수로 선발됐으며 20세부터 프로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현재 엘리트 스포츠 선수를 위해 특수 교육프로그램이 개설되어 있는 서독 뉘른베르크 인근 아우스바흐대에서 스포츠경영학을 공부하며 학업을 병행하고 있다. 두 사람 모두 독일 스포츠식품회사 누트리크시온과 은행 스파르카세가 운영하는 프로팀 소속으로 활동 중이다.

통일 독일시대를 살고 있는 두 사람에게 통일 독일 생활을 물었다. 모두 “눈에 보이는 장벽을 허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장벽을 허무는 데 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했다. 뮐러가 먼저 입을 열었다.

“나는 서독 프랑크푸르트에서 북쪽으로 100km가량 떨어진 풀다라는 작은 도시에서 태어났다. 독일이 통일되었던 해에 열일곱 살이었는데 내가 속한 팀에 동독 선수가 하나 둘 편입되면서 통일을 실감했다. 아무래도 서로 다른 시스템에서 훈련을 받고 자란 선수들과 경쟁한다는 것이 잘 맞지 않았다. 초기에는 소통에 문제가 많았다. 동독은 국가지원에 의해 육성된 선수들이라 명예심이 강했고 서독은 자기성취가 더 강한 측면이 있었다. 국가대표 선발이나 실업팀 선발 때에 동독 선수가 대거 몰리면서 경쟁도 치열해졌다. 선수들은 더 힘든 환경을 맞이했지만 독일체육계 전체로서는 선수층이 두꺼워져 결국 도움이 됐다.”

말수가 적고 사색형인 뮐러에 비해 야노르슈케는 신세대답게 더 활달하고 솔직했다.

“독일이 통일됐을 때 세 살밖에 안 된 아기였기 때문에 기억나는 게 없다. 내가 살고 있던 마을은 동독에 가까운 곳이긴 하지만 통일 이후에도 동독에서 이주하는 사람이 거의 없어 세상이 변한 것을 실감하지 못했다. 그런데 청소년 팀에 동독 친구들이 들어오면서 변화를 체감했다. 재미있는 것은 우리 같은 신세대는 분단 경험이 없는데도 한눈에 서로가 동독 출신인지 서독 출신인지 알아본다. 말하는 억양부터 다르다.(웃음) 통일 이후 한 세대가 지나가고 있지만 나 역시 동독 친구들하고는 기본적으로 정서가 다르다. (동서독이) 완전히 합쳐지려면 적어도 두 세대는 더 흘러야 할 것 같다. 서독 사람 중에는 공공연하게 장벽이 다시 세워졌으면 하고 바라는 사람도 있다. 실업자도 많아지고 동독의 재건을 위해 서독 사람들만 세금을 낸다고 억울해하는 젊은이도 많다.”

‘그럼, 통일이 안 되는 게 나았다고 생각하느냐’고 묻자 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원래 하나였던 나라가 다시 합쳐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고 당연한 일이다. 무엇보다 동독인들이 자유를 만끽하고 능력과 의지만 있으면 성공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으니 말이다. 헤어진 사람들도 다시 만났다. 나는 뉘른베르크에서 100km 떨어진 반베르크라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동독에서 불과 30km 떨어진 곳이다. 전쟁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갑자기 하루아침에 땅에서 장벽이 솟아나 옆에 살던 가족과 형제 이웃이 생이별을 했다. 한국의 이산가족 상봉 장면을 TV로 본 적이 있는데 남의 일 같지 않게 느낀 적이 있다.”

이번엔 뮐러가 거들었다. “동서독 남녀의 결혼도 점점 많아진다. 동독이 서독 수준이 되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독일인들은 더 나은 미래를 만들기 위해 인내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두 사람은 서독에서 평범한 생활인의 삶을 살고 있는 젊은 세대다. 그들의 생각은 평균적인 서독인들 마음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아직 남아있지만 어떻든 잘될 것이라는 낙관적인 그들의 믿음을 보면서 장벽도 허물지 못하고 있는 분단 한국은 통일은 물론이고 통일 이후 화학적 결합에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까. 기자의 마음은 잠시 무거워졌다.

두 사람 모두 한국이 두 번째 방문. 지난해 투르 드 서울 행사에서 뮐러는 2위를, 야노르슈케는 3위를 하는 선전을 했다.

“베를린만 해도 인구 300만∼350만의 소도시이기 때문에 서울에 오면 그 규모에 우선 놀란다. 오늘 마지막 구간인 강변북로에서 만난 서울의 모습은 정말 대단했다. 전쟁의 폐허 위에서 크게 발전한 한국을 보며 경의를 표하고 싶어졌다.”(야노르슈케) “서울코스에서는 남산 소월길로 접어드는 길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한국 선수들도 점점 더 강해지는 것 같다. 스타일이 공격적이다. 서울에서 평양까지 자전거로 달리는 행사가 열린다면 꼭 참가하고 싶다.”(뮐러)

인터뷰 말미에 ‘한국 음식 중에서 무엇이 가장 맛있었느냐’고 묻자 뮐러는 “밥”, 야노르슈케는 “떡볶이”라고 대답했다.

‘두개의 은륜이 굴러간다/엔진도 기름도 없다 오직/두 다리 힘만으로/은륜의 중심은 텅 비어있다’(유하, ‘자전거의 노래를 들어라’)

금기와 장벽 없이 모든 것을 넘나드는 텅 빈 자전거 바퀴처럼 언젠가 우리도 통일의 길을 따라 저 금단의 땅을 밟을 날이 올까. DMZ가 평화를 염원하는 세계인들의 마음이 모이는 공간이 되고 마침내 철조망이 걷히는 세상이 와서 이번 투르 드 DMZ 대회가 서울과 평양을 잇는 평화의 대회로 거듭나는 그런 날 말이다.

허문명 기자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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