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소리가 시각장애인 꿈이루는 디딤돌 됐으면”

  • Array
  • 입력 2010년 8월 7일 03시 00분


코멘트

장애인 검정고시서 문제 읽어주는 이길남 특수교사

“15번. 그림에서 어두운 부분의 영역을 부등식으로 바르게 나타낸 것은? 단, 경계선은 제외. 음… 원이 그려져 있는데요. 원 밖은 점선 처리 됐고요…. x축 오른쪽엔 4, y축 위쪽은 4라고 돼 있어요. 보기 1번, x제곱 더하기 y제곱은 16보다 크다. 보기 2번….”

2일 오전 10시 반 노원구 상계동 서울시립 노원시각장애인복지관. 시각장애인 20여 명이 고등학교 졸업학력 검정고시 수학 문제를 풀고 있었다. 땀을 뻘뻘 흘리며 수학 문제를 설명하는 중화초 이길남 특수교사(27·여·사진)는 검정고시 대독(代讀)자다. 문제를 볼 수 없는 시각장애인을 위해 문제와 지문을 대신 읽어주는 사람이다.

대독은 과목에 따라 어려운 부분이 많다. 국어는 시간 안배가 중요하다. 이 교사는 “지문이 길면 정작 문제를 들은 뒤 그에 해당하는 부분을 기억하지 못한다”며 “수험생이 다시 듣기 원하는 부분은 다시 읽어준다”고 말했다. 그는 “도형이나 수식, 좌표가 나오는 수학은 위, 아래, 시계방향 등 온갖 용어를 끌어들여 설명하지만 한계가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영어는 발음이 관건으로 원어민처럼 발음을 굴리거나 빠르게 읽는 것은 절대 금물이다. 될 수 있는 한 한국식 발음으로 읽어야 한다. 이 교사는 “나도 영어 듣기 몇 문제 풀려면 긴장되는데 이분들은 50분간 듣는 셈”이라며 “또박또박 읽는 게 제일”이라고 강조했다.

대독에 앞서 연습은 필수다. 지난달 28∼29일 이 교사는 다른 대독자 3명과 함께 서울시교육청에서 사전연습을 했다. 집에서는 기출문제로 맹연습했다. 그는 “내 목이 아픈 건 괜찮지만 시간이 부족하거나 문제 설명을 잘 못할까봐 걱정”이라며 “시험시간을 일반인보다 딱 10분 더 주는데 빠듯하다”고 토로했다.

지난해 8월부터 세 번째 대독을 한 이 교사는 “올 4월까지는 고입(고등학교 입학자격) 시험 대독자였다”며 “그때 만났던 수험생이 고졸시험에 온 걸 보고 ‘힘들지만 꿈을 위해 더 공부하는구나’ 싶어 뿌듯했다”고 말했다.

특수교사인 이 교사는 대독을 하며 짠한 마음을 감출 수 없다. 시각장애인에게 고입 검정고시는 생존문제와 직결될 만큼 중요하다. 안마사가 되려면 중학교 졸업증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고졸시험은 후천적으로 장애인이 되거나 생계 문제로 젊어서 공부하지 못한 성인이 대부분이다. 이 교사는 “딱한 상황을 누구보다 잘 알다 보니 정답 보기를 부를 때는 목소리에 힘이 들어갈 때도 있지만, 중립성을 지키려 마음을 고쳐 먹는다”며 웃었다.

이 교사는 “시각장애인들이 내 목소리로 문제를 듣고 손가락으로 대필(代筆)자에게 정답을 알려주며 어렵게 시험 보는 것을 보면 감동 받는다”며 “앞으로도 내 목소리가 그들이 꿈을 실현하는 데 디딤돌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최예나 기자 yena@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