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도전하는 사람들, 탐험가 남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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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8월 3일 17시 3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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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초 루트’, 3000km를 걷다, 갠지스에서 돌아온 탐험가 남영호


안정된 직장을 단번에 뿌리치고 다른 일을 시작할 만한 용기를 가진 사람이 세상에 몇이나 될까. 굉장한 용기가 필요하다. 또 확실한 동기부여가 있어야 한다.

2006년 잘 나가던 잡지사 사진 기자를 단번에 그만둔 한 젊은 혈기왕성한 남자가 뜬금없이 카메라와 배낭을 메고 유라시아 대륙을 자전거로 횡단했다. 여행이라고 하기엔 거리가 너무 길고 위험한 여정이었다. 자그마치 230일간 18,000km였다.

여행에서 돌아온 그는 아예 ‘탐험가’로 직업을 바꿨다. 유라시아 횡단 경험이 자신감과 용기를 줬다. 사진기자로 전국 산을 돌아다닌 방랑 기질도 한몫했다. 하지만 더 결정적인 이유는 바로 이 사람을 만난 것. 유라시아 여행 도중 1300여 년 전 이미 그곳을 탐험했던 혜초(慧超, 704 ~ 787, 신라 고승)스님의 발자취를 만났던 것이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20대에 서역과 인도를 여행하며 ‘왕오천축국전(往五天竺國傳)’이라는 세계적인 기행문을 남긴 혜초. 탐험가 남영호(33)씨는 혜초의 여정을 탐험하고 사진으로 기록한다. 1300여년의 시간차가 있지만 그는 혜초를 탐험의 롤 모델로 꼽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그는 2009년 10월 첫 번째 탐험구간 중국 ‘타클라마칸’ 사막 450km 도보 종단성공에 이어 2010년 6월 히말라야에서 방글라데시 벵골 만까지 갠지스 강 2510km를 도보와 보트를 이용해 무동력으로 탐험하는데 성공했다. 혜초스님의 여정을 따라 온 3000여km의 ‘혜초 루트’ 탐험은 앞으로도 현재 진행형이다.


▲동영상 = 직격인터뷰, ‘혜초루트’ 복원 꿈꾸는 탐험가 남영호씨

갠지스 강에서의 험난한 여정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온 남영호씨. 논현동 작업실에서 앞선 두 번의 탐험 기록을 정리하고 있는 그를 만났다. 가장 먼저 갠지스에 간 이유가 궁금했다.

“첫 번째 타클라마칸 탐험은 왕오천축국전에 기록된 혜초의 여정 중 밝혀지지 않은 행적을 추적해 보는데 의미가 있었다면 이번 탐험은 왕오천축국전에 기록된 그의 인도에서의 행적들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1300년 전 불교문화가 융성했던 시기의 갠지스는 그에겐 아주 특별한 탐험 장소였을 것입니다. 그래서 저에게도 첫 번째 탐험 못지않게 특별한 곳이었습니다.”
사진제공 남영호
사진제공 남영호

그는 인도문화의 종교적인 배경이자 원류인 갠지스를 이해하면 당시 혜초가 느꼈던 것들을 더 가까이서 체험하고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남 씨는 두발과 래프팅만으로 히말라야에서 방글라데시 벵골 만까지 후배 정찬호(30)씨와 함께 갠지스를 따라 강을 탐사했다. 그는 갠지스의 속살을 보고 왔다.

“사람들은 인도 문화를 품고 흐르는 이 강이 항상 촉촉하고 생명력 있는 곳이라고 생각하지만 제가 본 갠지스는 피폐하고 사막화되고 더러운 곳이었습니다. 직접 보기 전엔 상상도 못한 모습이었습니다.”

히말라야 상류에는 기후변화로 부족해진 물을 가두기 위해 댐 공사를 하고 있었다. 하류에는 이로 인해 부족해진 물 때문에 사막화가 진행 중이었다. 그는 마치 타클라마칸 사막을 보는 느낌이었다고 했다.
사진제공 남영호
사진제공 남영호

탐험에는 갠지스에서 화장된 시신들도 늘 함께였다. 한쪽에서 아낙이 빨래를 하면 그 앞으로 타다 만 시신들이 떠다녔다. 보트에 물에 불은 시신이 부딪혀 놀라기 일쑤였다.

“보트 옆으로 하루에 수십 구의 시체가 지나갔습니다. 보트에 뭔가 부딪혀서 보면 시체고 악취가 나 돌려보면 물에 퉁퉁 불은 시체가 떠다녔습니다. 우리나라 한강이 이랬다면 어떻겠습니까. 상상도 못할 경험이었어요.”

시신들 못지않게 충격적이었던 것은 갠지스 강의 오염이었다. ‘신성한 강’이라는 이름이 무색할 정도였다고 한다. 하류로 내려갈수록 오염은 심각했다.

“물 색깔은 엔진오일을 풀어놓은 듯 하고 1m 깊이조차 보이지 않았습니다. 탐험 시작 하루 만에 피부병이 생겨 고름이 나오고 물집이 잡혔고 입안에까지 물집이 번져 탐험기간 내내 고생했습니다. 그런데 현지 사람들은 이 물을 마시고, 사람을 화장하고, 신성한 강이라고 숭배하니 아이러니 한 거죠.”

1300년 전 혜초는 불교문화가 융성한 갠지스를 봤지만 2010년 남씨가 본 갠지스는 삶과 죽음 신성함과 더러움을 함께 품고 흐르는 강이었다.

그는 특히 갠지스의 환경문제를 인터뷰 내내 강조했다. 타클라마칸 탐험 이후 인터뷰 때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대부분의 탐험 장소는 지구환경에 대단히 중요하고 상징적인 의미를 갖고 있는 곳이 대부분입니다. 환경문제에 특별한 관심이 없어도 다니다보면 이렇게 밖에 놔둘 수 없나 하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어요. 그리고 하나의 소임이 되는 거죠. 혜초의 역사, 문화 이야기도 중요하고 필요하지만 우리가 살아 숨 쉬고 있는 지구의 이야기도 굉장히 중요하다는 것을 이번 탐험을 통해 느끼게 됐어요.”

남씨는 항상 카메라로 탐험을 기록한다. 두 번의 탐험에서 가져온 사진만 수천 장이다. 다큐멘터리 사진가이기도 한 그는 혜초루트 탐험의 기록들을 모아 특별한 이벤트를 만들 계획을 갖고 있다.
사진제공 남영호
사진제공 남영호

“대부분의 탐험가나 산악인들은 정상을 찍고 내려온 그 행위로 탐험의 모든 것이 끝나버립니다. 사람들은 더 많은 것들을 기대하고 있는데. 그래서 저는 그런 아쉬움을 덜고 싶습니다. 혜초 루트 탐험 이야기를 어떤 형태로든 많은 사람들과 공유할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그것이 탐험을 다녀온 것보다 더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첫 번째 타클라마칸, 두 번째 갠지스 강 탐험 모두 세계 최초라는 타이틀이 붙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아직 기록을 대변해 줄 수 있는 기관이 없다.

“주변에서 세계 최초라고는 하는데 큰 의미를 두지 않습니다. 저 나름의 의미가 있기 때문에 선택한 길이기 때문이에요. 무동력으로 실행해 본 전례가 없기 때문에 세계 최초가 된 것 같아요. 하지만, 산악계를 제외한 탐험 류에서는 기록을 대변해 줄 수 있는 공인된 기관이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앞으로 그런 작업들이 필요할 거라고 생각해요.”

남씨는 탐험할 때 마다 GPS를 이용해 전 구간 경로를 기록해 둔다. 이번 갠지스 강 탐험에서도 GPS로 전 구간을 기록해 놓았다. 이 기록이 훗날 인증을 위한 중요한 기록이 될 것이다.
사진제공 남영호
사진제공 남영호

지구에는 수많은 길들이 존재한다. 이름이 붙여진 길도 있지만 붙여져 있지 않은 길도 있다. 탐험가는 이름이 붙여지지 않는 길들을 가는 사람이다. 남영호 씨는 탐험가다. 하지만 그는 탐험을 위한 탐험, 도전을 위한 도전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탐험도 굉장히 중요한 것이지만 탐험을 통해 만들어내는 콘텐츠와 이야깃거리들을 어떻게 사람들하고 나눌 수 있을까를 늘 고민합니다. 갠지스라는 곳을 처음 무동력으로 전 구간을 탐험한 것 자체로도 굉장히 매력적인 이야기일수 있습니다. 하지만 진짜 이야기는 내가 갠지스에 간 이유와 목적이겠죠.”

이철 동아닷컴 기자 kino2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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