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엔 장애 있어도 연주엔 장애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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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8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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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각장애인 교향악단 ‘한빛예술단’ 8년째 이끄는 김용복 감독

“자, 준비, 시작. 빰, 빰빠, 빱.”

지휘봉은 없었다. 지휘자인 김용복 한빛예술단 감독(53·사진)은 멋진 옷도 입지 않았다. 무대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마이크를 통해 시작과 리듬, 강약을 말로 알려줬다. 그러면 눈이 보이지 않는 연주자들은 건반을 치고 마림바를 두드리며 트럼펫을 불었다. 시각장애인들로 구성된 교향악단 ‘한빛예술단’이 지난달 27일 경기 광주시의 서울시교육청 퇴촌교육장에서 장애인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공연하는 모습이었다.

이들의 눈에는 장애가 있지만 연주에는 장애가 없었다. 이런 연주를 가르치고 지휘한 김 감독은 전 KBS교향악단 트럼펫 연주자 출신이다. 2002년 한빛맹학교 김양수 교장으로부터 “악단을 만들어 보자”는 제안을 받은 뒤 올해로 8년째 이 일을 해 왔다.

김 감독은 다섯 살 때 길을 잃고 부모와 헤어져 구세군 보육원에서 성장한 고아 출신으로 미8군 군악대 대위에게 트럼펫을 배웠다. 입술이 부르트도록 트럼펫을 불어 장학생으로 중앙대 음대에 입학했고 국립교향악단, KBS교향악단에서 단원 생활도 거쳤다. 미국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UCLA)로 유학도 떠났다. 하지만 위기가 찾아왔다. 그의 말에 따르면 “작은 성공에 오만해져 길을 잃었던” 게 문제였다. 15년 전 이혼이 분수령이었다.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한국에 돌아왔던 그는 이후 김 교장과 한빛예술단 학생들을 만났다. 그는 “몇 번이고 도망가고 싶을 때마다 울며 붙잡는 아이들이 나를 여기까지 오게 했다”고 말했다.

47명의 시각장애인과 1명의 정신지체 2급 장애인으로 구성된 한빛예술단은 1년에 300회 가까운 공연 일정을 소화하며 연주로 돈을 번다. 하지만 아직은 연주 수입만으로 재정자립을 이루기 힘들어 후원금에 의지한다. 그래서 김 감독은 목표가 하나 있다. 미국 공연이다. 그는 “나는 이들에게 앵벌이 음악을 가르치지 않는다”며 “정식 연주자로 인정받기 위해 미국처럼 큰 무대에서 ‘공연 여행’으로 인정받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포털 ‘네이버’의 ‘지식인’ 서비스에 특수교육과 클래식 음악에 관한 설명을 열성적으로 하다 ‘우수지식인’으로 선정됐다.

광주=김상훈 기자 sanh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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