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상주단원 없이 프로젝트마다 오디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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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8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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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무용단 초대 예술감독 홍승엽씨

"무용은 예술이죠. 하지만 모든 무용작품이 예술은 아닙니다. '무용은 예술'이라는 인식에 무임승차를 하면 더 이상 생명력이 없죠. '무용이 이래서 예술이구나'라는 걸 일반 관객들에게 계속 확인시켜줄 수 있어야 합니다."

28일 선임된 홍승엽 국립현대무용단 초대 예술감독(48)에겐 '파격' '반골'같은 수식어가 자주 붙는다. 시작부터 그랬다. 1982년 경희대 섬유공학과 재학 중 무용을 시작해 약 2년 만에 제 14회 동아무용콩쿠르 대상을 수상했다. 현대무용수지만 1990년 유니버설발레단에 입단해 3년간 활동했다. 1993년에는 대학교와 관계없는 순수 민간 현대무용단으로 최초였던 '댄스시어터온'을 창단했다.

2일 오전 찾은 서울 광진구 능동 댄스시어터온 연습실에서는 그 동안 작품에서 사용됐던 소품을 담은 박스를 쌓아둔 채 이사 준비가 한창이었다. 공직과 민간단체 대표를 겸직할 수 없기 때문에 20여년간 이어온 댄스시어터온은 활동을 중단해야 한다. 홍 감독은 "벽재, 바닥, 공간구성 모두 내가 직접 한 것이라 차라리 내 손으로 부수는 게 마음 편할 것 같다. 하지만 앞으로 나아갈 생각만 하고 있어 아쉬움이 남지는 않는다"라고 말했다.

-학연을 벗어난 인사라고들 얘기한다.

"예술계, 특히 공연예술계 쪽에 '학연에 얽힌 폐단이 많다'는 지적이 예전부터 나왔지만 꼭 그렇지도 않다. 학연으로부터 독립적으로 활동하는 후배들이 이미 많았다. 현대무용, 자유로운 창작을 기반으로 하는 분야다 보니 다른 어떤 예술 장르보다도 진취적으로 나가고 있었다고 본다."

-2004년에 '올해의 예술상' 수상을 거부한 적도 있고, '반골' '파격'이라는 수식어가 자주 붙는 편인데….

"나 스스로는 자신이 참고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라고 생각한다. 공대 다니다 무용을 시작했고, 1993년 최초로 민간무용단인 댄스시어터온을 창단했고, 그러다보니 아무래도 주목을 받게 됐다. 그 동안 중심을 잡으려고 많이 노력해왔다. 어느 쪽을 자꾸 부정하기보다는 원래 있던 흐름에서 새로운 지류를 만들어왔다고 생각한다. 학연 단체가 있는 것도 소중하게 생각한다. 그런 단체가 무용 저변을 튼튼하게 만들어준다. 그 위에서 프로 무용가로서 일반 관객과의 소통을 중심에 둔 작품들도 나올 수 있다."

-국립현대무용단은 상주단원을 두지 않고 각 프로젝트마다 오디션을 보는 형태로 운영된다고 들었다.


"문화관광부에서 먼저 그런 밑그림을 그렸지만 내가 갖고 있는 방향과도 90% 이상 일치한다. 무용, 특히 현대무용처럼 계속 자신에게 채찍질을 하고 창조해내야 하는 분야에서 상주단원이 돼 안주하면 그 순간 무용수로서 수명이 반은 깎인 거다. 무용 기능인이 아니라 무용 예술가를 원한다. 프로로서 자기 작품에 책임을 지고 그냥 춤을 추는게 아니라 자기 철학을 넣을 줄 알아야 한다. 직장인으로서의 무용수는 재미없다."

-앞으로의 운영 방향은.

"프로젝트 식으로 한다고 하니 프로젝트 하나 하고 끝난 뒤에 또 다른 프로젝트를 하고 그런 식으로 느껴지지만 실은 아니다. 여러 프로젝트가 오버랩 될 거다. 내가 하는 일이 이제는 '프로젝트 디자이너'가 아닌가 싶다. 새로운 프로젝트를 위해서 필요한 안무자와 방향을 제시하는 역할인거다. 현대무용에 대한 간접지원의 통로가 되는 식물의 생장점 역할을 하고 싶다. 그래서 몇 년 뒤에는 생각보다 훨씬 더 많은 무용수가, 시즌별로 많을 때는 200명 혹은 그 이상의 숫자가 전국 곳곳에서 작업할 수 있도록 만들고 싶다. 다만 후배들에게 해줄 이야기는, 아직 많은 현대 무용수들이 굉장히 뛰어난데도 불구하고 프로로서 자기가 어떤 책임을 져야 하는지 체득이 안 된 경우가 있다는 거다. 그런 부분에서 본인이 빨리 바뀌지 않는다면 탈락하게 될 거다."

-어떤 점을 바꿔야 한다는 건가.

"기본적인 것들이다. 연습시간 지키는 것, 무용수로서 자기 몸 관리하는 것 등이다. 자기 자신에 대한 책임, 프로젝트 팀원들에 대한 책임을 지키라는 거다. 규정은 최소한으로 하되 강하게 지켜갈 생각이다."

-민간무용단을 20년 가까이 이끌어왔는데 이제 활동을 중단해야 한다고 들었다.


"내가 앞만 보고 가는 건지, 생각하는 방향이 다른 건지 단원들은 훨씬 더 가슴 아파하고 힘들어하는데 나는 오히려 다음 단계만 생각하고 있다. 그 동안 매달 350만 원씩 내면서 이 공간을 유지해왔다. 첫 민간무용단이었기 때문에 후배들한테 쉽게 고꾸라지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내 숙제라고 생각했다. 예술감독을 맡고 보니 '이렇게 되려고 그 동안 고비를 넘기며 고생해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1982년 경희대 섬유공학과에 다니던 중 무용을 시작했는데.

"원래 음악이나 미술 같은 예술 분야에 관심이 많았다. 다만 그걸 내가 직접 할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도 못했었다. 수능 성적에 맞춰 남들 다 가는 공대에 갔다. 그런데 대학교 2학년이 되니 내가 앞으로 뭘 해야 하는지 고민이 됐다. 무용이 아니면 안 될 것 같다, 이걸로 살아야겠다는 생각은 드는데 확신을 하기까지 7개월이 걸렸다. 그 동안 식음을 전폐해서 몸무게가 50kg까지 빠질 정도였다. 결국 2학년 1학기를 마치고 무용과로 찾아갔다."

-현대 무용수이면서 유니버설발레단에 들어가 활동하기도 했는데.

"연습을 하다 보니 현대무용으로는 내가 하고 싶은걸 다 해낼 수 없겠더라. 뭔가 비어있다는 느낌이었다. 발레단에 들어가기 전부터 개인적으로 발레 레슨을 받았다. 유니버설발레단에 들어간 건 당시 발레단이 외국 무용수를 많이 데려오면서 국제적인 기준에 맞는 시스템이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무용단을 만들어서 운영하는 걸 꿈꾼다면 실제 무용단이 어떻게 운영되는지도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래서 오디션을 봤고, 실력은 없었지만 남자라서 합격한 것 같다."
-어렵게 시작해서인지 무용에 대한 애정이 많이 느껴진다.

"국립현대무용단 예술감독을 맡다보니 '그런 공직은 거부하고 작품만 하는 모습을 보여줬으면' 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주제넘게 자꾸 후배 걱정이 된다. 무용계가 일반 시민들과도 소통할 수 있는 지점까지 가야 무용계가 선순환이 되는데 아직은 아니지 않나. 국립현대무용단의 제일 첫 번째 목표 역시 지속적으로 안무가가 나올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거다. 무모하다 싶을 정도로 부딪힐 줄 아는 젊은 안무가들이 시행착오를 많이 거칠 수 있게 해줘야 한다."

-해외 진출에 대한 계획은 없나.

"당장 지금이라도 치고 나갈 수 있다. 자신 있다. 해외에서 우리를 잘 모르고 네트워크가 없기 때문에 힘든 거다. 세계 시장에 지금 당장 내놔도 부족함이 없을 작품들이 충분히 있다. 국립현대무용단에 두 가지 목표가 있다. 앞에서 얘기했듯이 지역차별을 없애면서 전반적으로 국내 무용 수준을 올려두는 것과, 예술을 알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이게 바로 최고 수준의 무용이다'라고 자신할 만한 작품을 보여주는 거다. 그러기 위해서는 해외 페스티벌을 통해 확인을 받는 것도 필요하다."

-올해 말, 내년 초에 창립 공연을 하기로 돼 있다. 어떤 작품이 될 예정인가.

"지금 당장 신작을 만들기는 어려워서 그 동안 내가 만들어왔던 작품의 하이라이트를 재구성해보려고 한다. 가능하다면 20분 정도의 짧은 신작도 선보일 예정이다."

이새샘기자 iams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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