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의지 어찌 처벌하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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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2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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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조선고등법원 판결록 번역
3·1운동 독립운동가 기개 확인
“연일 악형에 사경” 고문 고발도

법원도서관이 편찬한 한글판 조선고등법원 판결록. 사진 제공 법원도서관
법원도서관이 편찬한 한글판 조선고등법원 판결록. 사진 제공 법원도서관
“충신인의(忠信仁義)로 맹세하고 옛 땅을 회복(광복)해 인도(人道)를 세우는 것은 그 금수(禽獸)의 부류를 면하려는 데 있으니, 어찌 처벌할 수 있겠느냐.”

일제강점기인 1919년 3·1운동에 참여했다 보안법 위반 혐의로 법정에 섰던 독립운동가 백관형 선생은 원심에서 유죄를 선고받은 뒤 당시 조선고등법원(현재 대법원에 해당)에 상고이유서를 내면서 이같이 광복 의지를 역설한 것으로 24일 확인됐다. 대법원 산하 법원도서관이 국역한 조선고등법원 판결록 제6권(형사편)에는 백 선생과 같이 독립운동을 하다 잔혹한 고문 끝에 법정까지 섰지만 광복에 대한 염원과 의지를 꺾지 않았던 독립운동가들의 기개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실제 대한광복회를 결성해 친일파 처단 활동을 하다 체포돼 살인방화 혐의 등으로 사형선고를 받은 채기중 선생은 상고이유서를 통해 일제 치하 경찰의 가혹한 고문을 고발했다. 그는 “연일 악형(惡刑)을 멈추지 않았고, 몇 번이나 사경(죽을 고비)에 이르렀다”며 “묻는 대로 답하지 않으면 맞아 죽을 것이라고 협박했다”고 말했다.

독립운동 구경만 해도 징역형을 받았던 엄혹한 시대 현실도 반영돼 있다. 같은 해 3월 8일 대구 시장에 장을 보러 갔다 체포된 신모 씨는 “곡식을 사러 갔다가 시장의 많은 사람이 독립만세를 부르는 소리를 듣고 길가에 서서 구경했는데 별안간 헌병 순사의 손에 포박됐다”며 상고했지만 결국 징역 6개월을 선고받았다. 당시 법원은 기초적인 사실 관계조차 다시 검토하지 않은 채 “원심이 인정한 치안방해 사실은 적용 법조에 해당하는 범죄를 구성함이 명백하다”는 말만 되풀이하며 3·1운동 참가자들에게 유죄를 확정했다.

법원도서관은 2004년부터 총 30권, 36책 2만여 쪽에 이르는 조선고등법원판결록에 대한 국역 사업에 착수해 지난해까지 총 9권을 편찬했다. 이 판결록에는 1909년부터 1943년까지 선고된 민형사 판결이 수록돼 있다.

이종식 기자 bel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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