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자로 세상에 당당히 맞설 힘 얻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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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1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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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점자 ‘훈맹정음’ 83주년
시각장애인 낭독대회 열려
“점자자료 늘려 자립 도와야”

한글 점자(훈맹정음) 제작 83주년을 맞은 4일 서울 용산구 한강로 국립서울맹학교 강당에서 한국시각장애인도서관협회 주최로 열린 전국 시각장애인 낭독대회 참가자들이 손으로 점자책을 만지며 글을 읽어 내려가고 있다. 홍진환 기자
한글 점자(훈맹정음) 제작 83주년을 맞은 4일 서울 용산구 한강로 국립서울맹학교 강당에서 한국시각장애인도서관협회 주최로 열린 전국 시각장애인 낭독대회 참가자들이 손으로 점자책을 만지며 글을 읽어 내려가고 있다. 홍진환 기자
“툭툭툭 1, 2, 3, 4, 5, 6 ‘아’는 126 ‘야’는 345. 점자는 정말 신기한 놈이었습니다. 글을 만지면 만질수록 그는 소녀에게 많은 이야기를 하지요.”

4일 서울 한강로 국립서울맹학교 용산캠퍼스 강당에 시각장애인 김금실 씨(45)의 낭랑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한국시각장애인도서관협의회는 시각장애인들의 문자인 한글점자(훈맹정음·訓盲正音)가 만들어진 지 83주년이 되는 4일 ‘한글점자의 날’을 기념해 시각장애인 점자 낭독대회를 열었다. 이날 전국에서 참가한 시각장애인 20명은 동화, 시, 수필, 웅변 등 자유롭게 고른 글을 점자로 각 3분여씩 읽었다.

“열다섯 가녀리던 소녀는 점자 덕분에 손이 아프도록 모텍스(점자를 찍어 사물에 붙일 수 있도록 만든 투명 테이프)에 점자를 찍어 동화책에도 붙이고 낱말카드에도 동물그림판에도 붙여 만져가며 두 아들을 가르치는 엄마가 됐죠. 나는 말하고 싶습니다. 시력을 잃고 어둠 속을 헤매는 분들께 위대한 점자의 능력을 경험해 보시라고요.”

김 씨가 미리 입력해 놓은 자작 수필 ‘점자 너로 인하여’가 시각장애인용 점자정보단말기에 한 줄씩 튀어나왔고 김 씨는 이를 더듬으며 계속 읽어 나갔다. 일반 청중과 시각장애인으로 구성된 심사위원단 6명이 낭독의 정확도와 빠르기 등을 평가했다.

4세 때 녹내장으로 저시력이 된 서울맹학교 2학년 이대현 군(14)은 이날 ‘앉았으면, 일어나라’라는 자작 수필을 낭독했다. 이 군은 이 글에서 “내가 다니는 교회의 500명 중 시각장애인은 나 한 명뿐이어서 유리벽 같은 것이 가로막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세상에 대한 이해가 널 일어서게 만들 것’이라는 어머니의 말씀으로 당당하게 일어서게 됐다”고 말했다. 이 군은 “점자가 있어서 수학, 과학, 음악도 배울 수 있다”며 “점자는 지식과 정보를 담은 위대한 창구”라고 말했다.

충남점자도서관의 박옥순 씨(48)는 “시각장애인이 손으로 느끼는 것과 정상인이 보는 것 중 어느 쪽이 뛰어난지 말할 수 없다. 시각장애인은 촉각을 통해 친구의 얼굴, 꽃의 섬세한 모양, 나무의 우아한 자태, 바람의 세기를 알아본다”(헬렌 켈러의 ‘행복해지는 가장 간단한 방법’ 중)고 낭독했다. 이날 1등상은 동화 ‘오냐오냐 할아버지’를 낭독한 박정숙 씨(37)가 받았다. 행사를 주최한 한국시각장애인도서관협의회 총무이사 이경재 씨는 “점자 자료와 이를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춰져야 시각장애인들이 자립할 수 있다”고 말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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