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 해결에 푹 빠져 산 여인, 30여년만에 국과수 수장됐다

  • 입력 2008년 7월 11일 03시 05분


“세계적인 수준의 과학수사연구소를 지향합니다. 제 몫은 모든 연구원이 유능한 법과학자가 되도록 효율적인 조직 운영과 공정한 성과 관리 등 뒷받침을 하는 게 아닐까요.”

국립과학수사연구소(국과수)가 1955년 문을 연 뒤 처음으로 여성 소장이 나왔다.

행정안전부는 10일 직위 공개모집으로 정희선(사진) 법과학부장을 임기 3년의 신임 소장으로 임명했다.

정 소장은 충북 출신으로 숙명여대 약학과에서 학사 석사 박사학위를 받았다. 1978년 국과수 약무사를 시작으로 약독물과장, 마약분석과장을 거쳐 2002년부터 법과학부장으로 근무했다.

약·독물과 마약 분석·감정 분야에서 새로운 감정기법을 개발해 과학수사가 뿌리 내리는 데 기여했다.

2001년 마약분석과장으로 근무할 때는 국과수가 유엔 마약통제본부의 기준 실험실로 선정됐다.

“약대를 졸업하고 처음에는 3년 정도만 다니려고 했는데 벌써 30년이 넘었어요. 매번 새로운 증거를 놓고 어떤 약인지 알아내는 게 재밌더라고요. 초창기에는 식품 위생 분야를 많이 다뤘는데, 마약 분야로 넘어온 것은 시대에 따라 범죄의 형태가 바뀐 결과라고 할 수 있겠죠.”

그는 1995년 인기그룹 듀스의 전 멤버였던 가수 김성재 사망 사건을 가장 기억에 남는 일로 꼽았다. 처음에는 주사 바늘이 많이 꽂힌 흔적을 보고 김 씨를 마약 중독자라고 짐작해 300종의 마약을 일일이 조사했다.

김 씨를 죽음으로 내몰았던 것은 마약이 아니라 동물에게 사용하는 약이었고 제보자의 도움으로 이를 밝혀내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1987년 발생한 오대양집단자살사건 등 결국 풀지 못한 사건은 지금까지도 마음 한구석에 남아 있어요.”

과학기술부는 정 소장이 마약류 관련 특허를 4개 갖고 있는 등 국내 과학수사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해 지난해 ‘제7회 올해의 여성과학기술자상’을 줬다.

그는 최근 5년 동안 국내외 학술지에 약물 및 마약 관련 연구논문 40여 편을 썼다.

이유종 기자 pe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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