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혈병 소년 정표의 삶 책으로 출간되다

  • 입력 2007년 3월 13일 17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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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혀 상상치 못했던 세상 속으로 들어온 지 열흘이 넘었습니다. 잠에서 깨어나 보면 여전히 '소아 혈액종양 병동'이라는 안내문이 현실을 부정하지 못하도록 합니다. 오늘 3차 항암제를 맞으면서 열두 살 아들이 말했습니다.

"엄마, 장발장이 감옥살이를 왜 그렇게 오래 했는지 아세요?"

남의 것을 훔쳐서 감옥에 들어갔다가 탈옥하고 그 죄가 또 덧붙여져 그렇다고 대답해 주었더니 제 아들이 하는 말, "엄마, 그건 빵 하나 때문이라고요."

이내 아들이 참았던 눈물을 줄줄 흘립니다. "나는 도둑질도 안 했는데, 왜 이런 감옥에서 살아야 해요. 여긴 감옥보다 더 무서워요. 싫어요. 하필 나만…."

감당하기 어려운 고통을 준비 없이 맞게 된 아들을 보며 부모 마음은 장발장보다 더 큰 죄를 짓고 있습니다. (책 '정표 이야기' 중 어머니의 편지에서)

하루하루 두려움과 공포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았던 백혈병 소년과 그 어머니의 가슴 저미는 사랑 이야기가 책으로 출간됐다.

이 책은 본보가 1월 27일 보도한 '백혈병 소년이 남기고 간 1년 9개월 삶과 죽음의 기록'의 완결편이다.

2005년 4월 1일 백혈병 판정을 받은 이정표(13) 군은 올해 1월 14일 세상을 떠났다. 작가가 되길 꿈꿨던 정표는 투병생활 내내 일기를 썼다. 숨지기 사흘 전, 의식이 남아있던 날까지 연필을 놓지 않았다.

본보는 정표의 일기를 재구성해 우리가 때때로 헛되게 보내는 시간을 부여잡고 사투를 벌여온 투병 아동의 일상을 소개했다. 이 보도 이후 파랑새출판사는 정표의 일기와 어머니 김순규(41) 씨의 글을 모아 300쪽 분량의 책을 펴냈다.

다음은 김 씨가 2005년 정표의 담임교사에게 보낸 편지의 한 토막.

"잠깐 눈을 붙이면서 정표가 말합니다. '내일은 이렇게 아프지 않겠지. 내일은 오늘보다 덜 아프겠지. 아마도 오늘이 제일 아픈가 보다.' 곁에서 이 못난 어미가 해줄 수 있는 것은 겪어 보지 못한 엄청난 고통을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덜어 줄 수 있을까 손을 잡고 지지해 주는 것 밖에 없습니다. 우리 정표 자리 그대로 비워두세요. 선생님! 꼭 다시 (정표를) 학교에 보낼게요."

정표는 다시 학교로 돌아가지 못했지만 모자의 소원은 기적처럼 하나씩 이뤄지고 있다.

정표의 꿈처럼 지은이가 '이정표'로 된 책이 출간됐다. 이제 정표는 작가 지망생이 아니라 유고 작품을 남긴 작가가 됐다.

그가 그토록 가고 싶어 했던 서울 등촌초교에서는 지난달 14일 그에게 명예졸업장을 선물했다.

어머니 김 씨는 "졸업장을 주기 위해 정표의 이름을 부르는데 마치 아들이 살아있는 듯 느껴졌다"며 감회에 젖었다.

김 씨는 가족과 함께 '정표 이야기' 책을 들고 5월경 일본 골수은행을 찾아갈 생각이다. 2005년 10월 27일 한 일본인에게 골수 이식을 받은 정표는 입버릇처럼 일본 골수은행을 가고 싶다고 말해 왔다.

김 씨는 "책 출간을 위해 정표의 흔적을 정리하는데 다 찾은 것 같아도 또 새로운 것이 계속 나왔다"며 "남은 사람이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게 큰 위로가 됐다"고 말했다.

파랑새출판사의 김진 팀장은 "정표를 통해 삶에 대한 겸손함을 배웠다"며 "미국 등에서 정표의 일기를 번역하고 싶다는 문의가 있었다"고 말했다.

파랑새출판사는 책 수익금의 1%를 난치병 어린이의 소원을 들어주는 '한국메이크어위시재단(www.wish.or.kr)'에 기부할 예정이다.

이재명기자 egij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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