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주성심학교 청각장애인 야구부 박상수 감독

  • 입력 2006년 10월 21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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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충주성심학교 야구부의 박상수 감독(오른쪽)이 6월 광주 무등경기장에서 열린 전국 무등기 고교야구대회를 앞두고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다. 사진 제공 충주성심학교
충북 충주성심학교 야구부의 박상수 감독(오른쪽)이 6월 광주 무등경기장에서 열린 전국 무등기 고교야구대회를 앞두고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다. 사진 제공 충주성심학교
청각장애 학생만 입학이 가능한 충북 충주성심학교. 야구 연습시간만 되면 운동장은 신나는 목소리로 가득하다.

야구선수들은 이 시간만 되면 자기만의 언어로 “파이팅”, “야”라고 외친다. 비장애인이 알아듣기는 힘들지만 누구의 외침보다도 통쾌함과 기쁨이 들어 있다.

“아이들에게 일부러 마음껏 소리를 지르도록 지도합니다. 한번도 크게 소리를 질러 본 적이 없는 아이들이죠.”

국내 최초 청각장애인 야구부인 충주성심학교 야구부를 3년째 맡고 있는 박상수(37·사진) 감독. 그는 청각장애가 생긴 뒤 성대를 못 쓰는 아이들에게 잃어버린 목소리를 돌려주고 싶었다.

프로야구팀 쌍방울 레이더스의 촉망받는 외야수였던 박 감독은 8월 말 창단한 국내 최초 지체장애인 야구팀인 ‘대한장애인야구대표팀’ 감독도 맡아 다시 주목을 받았다. 야구팀을 창단한 정립회관은 그가 특수체육 지도자로 적임자라고 판단해 감독 직을 제의했다.

박 감독은 “더 많은 장애인에게 야구의 묘미를 알려주고 싶어 응하게 됐다”고 말했다.

박 감독은 지금처럼 능숙한 특수체육 감독이 되기까지 두 번의 큰 좌절을 겪었다. 프로 선수로 활동한 지 2년이 됐을 무렵인 1995년. 경기 중 슬라이딩을 잘못해 어깨와 무릎을 다쳐 6급 지체장애인이 됐다.

“무인도에 홀로 떨어진 느낌이었어요. 인생이 끝난 것만 같았습니다.”

박 감독은 건설업체에서 일하며 제2의 인생을 꿈꿨다. 시련은 또 찾아왔다. 운동하다 만난 선배에게 사기를 당해 그동안 모은 돈을 모두 날렸다.

“연이은 실패로 일어서고 싶은 의지조차 없었어요. 그래도 살아야 하니 내가 맨몸으로 할 수 있는 건 역시 야구더라고요.”

박 감독은 ‘야구지도자 자격증’ 시험공부에 돌입해 ‘1급 경기지도자 자격증’을 비롯해 모두 5개의 자격증을 손에 쥐었다. 이 자격증은 국내에서 서울대 출신 교수, 전직 대만 프로야구 감독 등 5명만이 취득한 자격증이다.

“첫 경기인 2003년도 봉황대기 전국고교야구대회까지만 감독을 맡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눈에 밟혀 떠날 수가 있어야죠.”

박 감독은 학교 앞 원룸에서 홀로 생활하는 ‘기러기 아빠’다. 아내와 세 아들이 부산에서 생활하고 있어 2, 3주에 한 번씩 가족을 보러 간다. 네 살 난 막내아들과 야구를 배우고 있는 두 아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지만 자신을 이해해 주는 가족의 사랑으로 살아간다.

3년간 박 감독의 손을 거쳐 간 학생은 30여 명. 수화를 배우고 아이들과 가까워지고자 6개월간 기숙사 생활을 했던 그는 이제 학생들을 누구보다 잘 이해한다.

“충주성심학교가 존재하는 한 아이들을 가르치며 특수교육에 대한 연구를 계속하고 싶어요. 언젠가는 경기 중 농아들의 경기 집중력에 대한 논문을 쓰고 싶습니다.”

박 감독은 오늘도 장애를 앓는 친구들에게 야구의 기쁨을 주기 위해 길을 나선다. 그는 학생들이 중간고사를 치르고 있는 19일에도 선수를 영입하기 위해 산골에 있는 선수의 학부모를 찾았다.

그는 “2년 동안 전화로 설득하다 안 돼 이렇게 왔는데도 완강하시니 앞으로 몇 차례 더 찾아가야 할 것 같다”고 말하며 웃었다.

충주=조은아 기자 ach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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