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년 공무원 최상철 감사관 ‘철밥통’ 비판 책 발간

  • 입력 2006년 10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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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로는 ‘기업이 국가’라고 외치면서 각종 규제와 단속으로 기업을 괴롭히면 나라 꼴이 뭐가 되겠습니까?” 기업인들에게서나 들을 법한 이 발언의 주인공은 공무원이다. 감사원 특별조사본부 직속 기업불편신고센터의 최상철(51·사진) 감사관. 노동부 출신인 그는 공직사회의 행정편의주의에 휘둘리다 ‘말기 암 환자’의 심정으로 감사원을 찾는 기업인들의 민원을 듣고 해당 기관에 시정조치를 내리는 일을 2004년부터 해 오고 있다.》

그런 최 감사관이 최근 ‘기업 하는 사람들이 눈물을 흘릴 때’라는 책을 내고 공직사회의 복지부동(伏地不動) 실상을 공개해 화제다. 공직생활 32년째인 그는 2일 본보 기자와 만나 “제 얼굴에 침 뱉기인 줄 알면서도 기업인들에게 속죄하는 심정으로 책을 썼다”고 말했다.


○ 부처이기주의 더 심해져

최 감사관은 부정부패 등 공직사회의 ‘전통적 비리’는 전보다 줄었지만 부처이기주의나 복지부동은 오히려 더 심각해졌다고 지적했다. “공직의 직업 안정성이 전만 못하다 보니 손해 보는 일은 결코 하지 않으려 한다”는 것.

최 감사관은 지난해 서울 S대의 A 교수에게서 한 국책은행의 전횡을 고발하는 민원서류를 받았다. A 교수는 정보기술(IT) 보안솔루션 기술을 바탕으로 벤처기업을 창업하면서 지분의 절반을 넘기는 조건으로 은행으로부터 ‘무제한 투자’를 약속받았다.

하지만 회사가 제 궤도에 오르지 않자 은행 측은 투자 후 4년 뒤 계약서의 일부 문구를 문제 삼아 4년간 투자액에 대한 이자를 매년 17%씩 내라고 A 교수를 압박하고 나선 것.

최 감사관은 해당 은행장과 담판해 A 교수의 파산을 막았다.

최근에는 경기도의 한 중소도시에 땅을 매입해 공장을 지었는데 해당 시청에서 이미 지어진 공장 등록을 받아주지 않아 B 씨가 제기한 민원을 받았다.

알고 보니 B 씨는 폭우 대비용으로 설치한 파이프의 규격을 바꾸면서 시청에 보고하지 않아 ‘괘씸죄’가 적용됐다. 조사 결과 B 씨에게는 큰 문제가 없는 것으로 판명돼 등록 허가를 받을 수 있었다.

○ “이제는 민간의 역량 인정해야”

최 감사관은 3년 넘게 기업의 민원을 처리하며 공직사회 일각에서 자신들의 정체성 유지를 위해 불필요한 규제를 유지 또는 강화하고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됐다고 한다.

그래서 정부 내 감사활동도 과감하게 “왜 인허가를 해 줬느냐?”에서 “왜 인허가를 해 주지 않았느냐?”로 바뀌어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수많은 기업인을 만나 보니 그들에게 시간은 정말 돈이더군요. 이런 상황에서 공무원들의 소극적인 대(對)기업 업무 처리는 일종의 부패행위로 봐야 합니다.”

감사원 파견 근무를 하기 전 노동부에서 주로 노사 관계를 감독하는 근로감독관으로 일해 온 최 감사관은 갈수록 기업인들의 진심을 느낄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출자총액제한제도 등을 둘러싸고 여전히 논란이 있지만 대기업들이 없었다면 거기서 일하는 수십만 명의 일자리는 누가 만들었겠느냐”고 반문한 뒤 “‘번듯한 일자리’를 정부가 창출하는 데는 한계가 있는 만큼 이제 민간이 할 수 있는 일은 민간에 넘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 감사관은 “책을 낸 뒤 처음에는 주변 선후배 공무원들의 눈치를 봤지만 요즘에는 ‘할 말 했다’며 격려하는 동료들도 적지 않아 큰 힘이 된다”고 말했다.

이승헌 기자 dd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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