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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6년 2월 25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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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수 형님, 우리 한번 맞춰 보죠.” 가죽바지 사나이는 가방에서 기타를 꺼내 엄인호와 마주 앉았다. “‘바람과 나’ 하는 거지? 오케이.”
엄인호와 한대수는 말 한마디 없었다. 그 대신 기타줄 위에 놓인 두 사람의 손은 씨실 날실 엮듯 촘촘한 연주를 만들어냈다.
한국 포크 록의 ‘큰형’인 한대수와 엄인호 두 사람이 마주 앉은 이유는 ‘신촌블루스’의 콘서트 준비를 위해서다. ‘신촌블루스’는 3월 1∼12일 서울 중구 정동 팝콘하우스에서 ‘10년의 고독, 20년의 블루스, 30년의 방랑’이라는 부제로 결성 20주년 기념공연을 연다.
“지난 20년을 ‘외로움’이란 한 단어로 표현하고 싶네요. 갈수록 가요계는 상업적으로 변질되어 가고 ‘신촌블루스’는 소외돼 가고…. 20주년 공연은 ‘그래도 우리는 변하지 않았다’는 걸 보여 주기 위한 자리라고나 할까요?”
교과서처럼 반듯한 연주로 ‘선생님’이라 불렸던 이정선과 “나는 자유영혼”을 외치며 물 흘러가듯 연주하던 ‘룸펜’ 엄인호, 여기에 한영애와 이광조가 가세해 “제대로 된 음악 한번 해 보자”며 의기투합한 것이 1986년. 신촌을 사랑하고 블루스를 좋아한다는 공통점 때문에 그룹 이름을 ‘신촌블루스’로 지었다. 지금은 사라진 신촌의 카페 ‘레드 제플린’이 이들의 무대였다.
창단 멤버 중 유일하게 남은 것은 엄인호. 뜻 맞춰 노래하다가 홀연히 탈퇴할 수 있는 자유가 ‘신촌블루스’의 보이지 않는 ‘강령’이었다. 이은미 정경화 같은 쟁쟁한 라이브 가수들이 ‘신촌블루스’에서 내공을 쌓았다. 2, 3집 앨범에 참여한 고(故) 김현식은 영원한 ‘신촌블루스’ 멤버다.
“지금 돌이켜 보니 저만 꿋꿋하게 살아남은 것 같아요. 죄책감이 들 정도죠. 현식이가 세상 떠난 지 15년이 지났는데 제대로 된 추모공연 한번 해 주지 못했어요. 그래서 이번 20주년 공연은 김현식이 불렀던 노래들 위주로 기획했어요. 김현식 없이는 ‘신촌블루스’도 없으니까요.”
이번 공연에는 이정선, 이광조, 정경화 등 역대 ‘신촌블루스’ 멤버들은 물론이고 한대수, 전인권, ‘봄여름가을겨울’ 등 ‘신촌블루스’와 동시대를 살아온 가수들이 게스트로 참여할 예정이다.
“이번 공연이 끝난 후 라이브 음반도 계획 중이에요. 그보다 이번 공연에 바라는 게 있어요. 한국 가요계에 주류라고 자처하는 ‘엔터테이너’들에게 쐐기를 박는 공연 그거 하나면 돼요.” 공연 문의 1588-7890
김범석 기자 bsis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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