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5·18행방불명 가족회' 김정길회장 "가족들 한 풀어줘야"

  • 입력 2003년 5월 12일 18시 18분


코멘트
1988년에 만들어진 ‘광주5·18행방불명가족회’에 참여해 현재 회장으로 활동 중인 김정길씨(오른쪽)가 회원인 오명환씨와 함께 행방불명자 관련 서류를 들어 보이고 있다. -김동주기자
1988년에 만들어진 ‘광주5·18행방불명가족회’에 참여해 현재 회장으로 활동 중인 김정길씨(오른쪽)가 회원인 오명환씨와 함께 행방불명자 관련 서류를 들어 보이고 있다. -김동주기자
“해마다 5·18이 돌아오면 목이 메어 옵니다. 사랑하는 가족을 행방불명자로 잃어버린 가족들은 명예를 회복하지도, 유골을 찾지도 못했습니다.”

23년째 행방불명된 동생을 찾고 있는 ‘광주 5·18 행방불명 가족회’ 김정길(金正吉·58) 회장은 “우리에게 5·18은 아직 끝나지 않았는데, 사람들에게 ‘1980년 5월 광주’가 역사적으로 정리된 사건으로 인식되는 것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23년이란 시간이 지나면서 ‘광주사태’는 민주화운동으로 명예를 되찾고, ‘폭도’는 민주화 운동 유공자로 인정되고 있지만 행방불명자 가족들에겐 눈물뿐이다.

김 회장은 80년 2월 디스크자키(DJ)로 취직하기 위해 광주에 내려간 동생 김성기(金星基·당시 27세)씨를 잃었다. 80년 6월부터 ‘폭도’인 동생을 찾느라 온갖 노력을 다했으나 헛수고였다.

같이 일하는 오명환(吳明煥·69)씨의 사연은 더 기구하다. 54년 군대에 가면서 가족과 헤어졌다가 80년 5월 17일 26년 만에 동생을 만났다가 그 다음날 바로 동생과 연락이 끊겨 다시 23년의 세월이 흘렀다.

행방불명자에 대한 보상신청은 88년 4월 노태우 정권 때 치유대책의 하나로 시작됐고, 이후 90년부터 2000년까지 4차에 걸쳐 광주보상법에 의한 보상신청이 있었지만 ‘5·18 관련자’로 인정받은 행방불명자는 전체 465명의 신청자 중 64명에 불과하다.

김 회장은 “가족들이 힘겹게 시위에 참가한 행방불명자를 봤다는 목격자를 찾아냈지만 정부가 조사를 하면서 묵살한 경우가 부지기수”라고 주장했다.

김 회장은 “88년 첫 신청 때 행방불명자의 가족들이 신청서조차 작성하지 못하는 노인이 대부분이라는 것을 알고는 이 일을 하게 됐다”며 “관계 공무원들이 ‘보상금에 눈이 먼 사람’으로 취급할 때 가장 가슴이 아팠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5월 보상심의위원회 활동이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며 항의하다가 특수공무집행방해 혐의로 구속되기도 했다.

김 회장은 “행정 착오에 대한 벽이 너무 높아 지금은 많은 가족들이 자포자기의 심정에 빠져 있다”며 “새 정부는 보상법을 다시 정비해 가족들의 한을 지금이라도 풀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허진석기자 jameshuh@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