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째옹기장이 황충길씨 가족 "옹기에 사랑담아 행복을 굽지요"

  • 입력 2003년 1월 12일 18시 4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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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째 옹기 장인의 대를 이어가고 있는 황충길씨 가족이 갓 구워낸 옹기를 살피고 있다. 왼쪽부터 황충길, 셋째며느리 강현숙, 둘째아들 진, 셋째아들 진영 씨. -김동주기자
4대째 옹기 장인의 대를 이어가고 있는 황충길씨 가족이 갓 구워낸 옹기를 살피고 있다. 왼쪽부터 황충길, 셋째며느리 강현숙, 둘째아들 진, 셋째아들 진영 씨. -김동주기자
열일곱 살 때 점토를 처음으로 만져봤다. 그리고 40년이 지난 57세 때, 그러니까 1998년에 노동부가 선정한 대한민국 도자기 공예부문 ‘옹기 명장(名匠)’이 됐다. 명장에 오르던 날, 평생을 ‘옹기장이’로 지냈던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떠올리며 한없이 울었다.

항아리 만드는 가업을 3대째 이어오고 있는 충남 ‘예산전통옹기’ 대표 황충길(黃忠吉·61)씨. 충남 천안∼예산 간 21번 국도에서 예산군 오가면 탄중리 마을을 거쳐 4㎞쯤 달리면 ‘대한민국 옹기 명장 황충길’이라는 간판이 보인다. 조립식으로 만든 공장 3개동과 황토흙으로 빚은 20여m의 재래식 가마가 1000여평의 부지에 자리잡고 있다.

황씨는 17세 되던 1958년 재래식 가마에 불을 때다 심장마비로 갑자기 쓰러져 돌아가신 아버지 동월(東月·당시 59세)씨를 발견하게 된다. 옹기장이였던 할아버지 춘백(春白)씨 밑에서 평생 독 만들기에만 전념했던 아버지였다. 그는 삶의 현장에서 숨져간 아버지를 바라보며 ‘독장이’로의 삶에 접어들게 된다.

지금의 예산공장에는 1975년에 터를 잡았다. 남의 옹기 공장 직원으로 충북 진천과 음성, 충남 천안, 경기 송탄 등지를 떠돈 뒤였다. 쓰러져 가는 10평짜리 목조건물 공장과 재래식 가마가 전부였던 시설에서 ‘황충길’만의 옹기를 만들기 시작했다.

“밤새 물레질을 해 예쁜 모양의 옹기가 틀을 잡으면 잿물을 정성스레 발라 16시간 동안 불 때기를 40여년간 했어요.”

잿물은 부인 정창분씨(57)가 소나무와 콩깍지, 참나무를 태운 뒤 나온 재와 약토를 혼합해 만든 것. 예산옹기가 입소문을 통해 알려지자 황씨는 “만들 수 있는 것은 모두 만들겠다”며 냉장고용 김칫독을 비롯해 머그잔, 돌솥밥용 그릇도 만들었다. 그중 냉장고용 김칫독은 황씨를 ‘옹기 명장’ 1호로 만든 작품.

그러나 옹기 수요가 준 데다 일이 노동집약적인 탓에 황씨도 90년대 중반 들어 가업을 정리하려고 마음먹었다. 이때 막내아들인 진영(珍永·30)씨가 가업을 잇겠다고 나섰다. “옹기장이를 천시하는 문화여서 자식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았는데, 막상 아들이 가업을 잇겠다고 나서니 너무 자랑스러웠어요.”

진영씨는 체계적인 도예공부를 위해 인근 홍성군의 혜전대 도예과에 입학해 2002년 2월 졸업했다. 또 아버지 공장 직원으로 근무하던 한양대 도예과 출신인 강현숙씨(25)를 아내로 맞이하기도 했다. 앞으로 4대째 가업을 이어갈 진영씨는 “현대감각에 맞는 세계적인 옹기, 색채와 조형미도 갖춘 살아 숨쉬는 옹기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예산=이기진기자 doyoc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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