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영웅 요즈음]올림픽 한국 첫메달 김성집옹

  • 입력 1999년 12월 7일 19시 48분


한국인 최초의 올림픽 메달리스트. ‘대한민국’ 국적으로 맨먼저 올림픽 무대에서 태극기를 휘날린 ‘세계의 역사(力士)’. 60여년을 한국스포츠와 함께 걸어온 ‘외곬 체육인’.

그가 바로 ‘한국체육사의 산 증인’ 김성집 옹(80·대한체육회부회장)이다.

해방후 첫 올림픽인 48년 런던대회 역도 미들급에 출전해 한국인으로는 최초로 올림픽 동메달을 따낸데 이어 52년 헬싱키올림픽에서 올림픽 2회연속 메달획득의 쾌거를 이뤘던 김옹.

그는 ‘국가대표의 요람’ 태릉선수촌의 최장수 촌장을 지내는 등 한국 스포츠의 태동과 성장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봐왔다.

김옹은 내년이면 우리 나이로 여든 둘이 된다.

하지만 ‘정정하다’라는 표현이 오히려 어울리지 않을 정도의 건강과 식지않는 정열로 여전히 체육일선을 누비고 있다.

올림픽에 첫 출전했을 때가 29세. 선수로서는 결코 적지 않은 나이에 쾌거를 이뤘고 39세인 58년 도쿄아시아경기까지 선수생활을 이어갔으니 김옹의 ‘노익장’은 유래가 깊다.

김옹의 아침 운동은 20여년을 이어온 것으로 유명하다.

지금도 팔굽혀펴기를 3번씩 나눠 130회, 쪼그려뛰기 100회를 거뜬히 해낸다.

선수촌장 시절부터 계속해온 것으로 하루도 거르는 일이 없다.

김옹의 현재 체중은 74㎏. 51년전 런던올림픽에 출전했을 때보다 단 1㎏이 늘었을 뿐이다.

당뇨병으로 한때 체중이 82㎏까지 불었으나 이후 꾸준한 운동으로 체중도 줄이고 병도 치료했다.

선수촌장을 그만둔 지 5년이 넘었지만 요즘도 한달이면 한두번은 꼭 선수촌을 찾는다.

만나는 지도자나 선수들이 인사를 하면 “이번에도 자신 있는거지”하면서 따뜻한 격려를 잊지 않는다.

김봉섭 선수촌장을 만나 고민을 들어주는 등 ‘노하우’를 전해주는 일도 빼놓지 않는다.

선수촌 월계관에 걸려있는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액자는 김옹이 선수촌장시절 가장 강조하던 말.

체육계에서 존경받는 김옹은 요즘도 아무리 청탁해도 결혼식주례를 서는 일이 없다. 주례를 서기 시작하면 시간에 쫓겨 ‘제 할일’을 하지 못한다는 것이 김옹의 지론. 그는 ‘원칙’을 딱 한번 깬 적이 있다.

양정모가 몬트리올 올림픽에서 한국최초의 올림픽 금메달을 따내고 부탁을 해오는데는 어쩔 수 없었다는 것.

평생을 엘리트체육과 함께 해온 그는 선수촌을 떠난 요즘은 생활체육에도 깊은 관심을 갖고있다. 국위선양을 위한 엘리트체육도 중요하지만 국민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것은 바로 생활체육이라는 것. 어쨌든 ‘외곬 인생’을 살아온 노 체육인의 걱정은 늘 체육계안에 머물러 있다.

〈주성원기자〉sw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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