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촌상 영광의 얼굴들/문학]김춘수 시인

입력 1998-09-20 20:48수정 2009-09-25 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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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완성된 작품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추구하는 과정 속에 있습니다.”

문학부문 수상자 김춘수시인(金春洙·76)은 자신의 창작관을 이렇게 집약했다. 하나의 시적 실험이 농익었는가 하면 다시 그를 버리고 새로운 단계로 나아가는 자기부정을 통해 김시인은 한국시에 ‘무의미시(無意味詩)’라는 지평을 열었다.

“본격적인 창작은 50년대부터입니다. 실존주의에 심취해 썼던 이 시기 작품이 바로 ‘꽃’이지요.”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그는 다만/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로 시작되는 ‘꽃’(52년)은 곧잘 연애시로 해석되지만 창작동기는 ‘언어 이전에는 존재도 없다’는 철학자 하이데거의 명제였다.

그러나 그는 60년대중반부터 ‘무의미시’의 세계로 나아간다.

“시는 관념(철학)으로 응고되기 이전의 세계라는 깨달음을 얻어 관념을 의도적으로 배제하기 시작했습니다. 궁극에는 기존 관념이 녹아있는 단어까지 해체하게 되더군요.”

25년만에 완성된 연작시 ‘처용단장(處容斷章, 91년)’은 그 ‘무의미시’실험의 결정체다.

언어파괴라는극한까지자신을몰아가본 시인은 요즘 모든 의도적 실험을 배제한 채 “마음가는 대로, 느끼는 대로” 사물의 모습을 노래하는 ‘만유사생첩(萬有寫生帖)’을 연작으로 쓰고 있다.

“노년에 상 받는 것만도 기쁨인데 민족선각자인 인촌선생의 뜻을 기리는 상이고 보니 더욱 감회가 깊습니다.”

〈정은령기자〉ryung@donga.com

▼ 공적사항 ▼

김춘수시인은 한국시 전통에서는 드물게 철학적 탐구와 언어실험이 두드러진 작품세계를 펼쳐왔다.

청마 유치환의 인도로 시 세계에 들어선 시인은 50년대 ‘꽃의 소묘’ 등으로 인간실존 문제를 천착했으나 60년대 후반 이후 기존 관념으로부터 해방된 ‘무의미시’를 주창, 김수영시인의 ‘참여시론’과 대척점을 이루며 한국 시문학에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구름과 장미’ ‘늪’ ‘들림, 도스토예프스키’ 등 14권의 시집과 시론집 ‘시의 위상’ 자전소설 ‘꽃과 여우’ 등을 펴냈으며 영남대문리대학장 한국시인협회장 등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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