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박중현]부자 부모에게 가난한 청년이 용돈 주는 사회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10월 18일 23시 4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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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상 가장 부유한 한국의 신중년
MZ세대가 세금으로 떠받치는 게 맞나

박중현 논설위원
박중현 논설위원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지난달 내놓은 노인빈곤 보고서를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노인들의 가난에도 세대 차이가 있다’는 거다. 한국의 노인 빈곤율이 선진국 중 1위란 건 익히 알려진 사실이지만, 한국의 노인을 모두 비슷한 빈곤층으로 보는 건 착각이란 의미다.

소득에 따라 전 국민을 한 줄로 세웠을 때 정중앙에 놓인 사람의 소득을 ‘중위소득’이라고 한다. 중위소득의 50% 이하를 버는 사람은 빈곤층으로 분류된다. 65세 이상 노인층의 2021년 한국의 빈곤율은 37.7%다. 10% 안팎인 유럽 선진국들은 물론이고, 20%를 조금 넘는 미국, 일본에 비해서도 압도적으로 높다.

하지만 출생 시점에 따라 빈곤율의 차이가 현격하다는 게 보고서의 시사점이다. 현재 나이로 80대 중후반인 1930년대 후반기 출생자의 빈곤율은 56.3%다. 80대 초반인 1940년대 전반기 출생자는 51.3%, 높은 70대인 1940년대 후반기 출생자 역시 44.5%로 심각한 수준이다. 그런데 70대 초반, 1950년대 전반기 출생자로 넘어가면 그 비율이 27.8%로 뚝 떨어진다. 높은 60대인 1950년대 후반기 출생자는 18.7%로 더 내려간다.

더욱이 한국의 고령층은 자산의 70∼80%를 집으로 갖고 있다. 다른 선진국 노인들보다 부동산 자산 비중이 많이 높다. 공시가 12억 원, 시가 17억 원 미만 집을 보유한 노인들이 모두 집을 담보로 주택연금에 가입해 연금을 받는 등 자산 수준을 고려하면 연령대별 빈곤율은 5∼14%포인트씩 뚝 떨어진다. 1950년대 후반기 출생 노인들의 빈곤율은 13.2%까지 내려간다. 선진국 클럽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과 정확히 같은 수준이다.

베이비부머(1955∼1963년생) 가운데 60대 초반과, 그 아래 50대의 이른바 ‘신(新)중년’이 노인이 되는 시점엔 빈곤율이 더 낮아질 것이다. 역사상 가장 혜택받은 세대이기 때문이다. 신중년층은 이전 세대보다 훨씬 더 많이 교육받았고, 경제성장률이 10%를 넘나들던 1980년대 대기업 일자리가 쏟아질 때 어렵지 않게 취업했다. 눈치 빠른 이들은 집값이 폭락한 1997년 외환위기 즈음해 내 집까지 장만해 자산 증식의 고속도로에 올라탔다.

이렇게 다 같이 힘든 노인이 아닌데도 우리 정부는 소득하위 70% 노인에게 월 32만 원의 기초연금을 제공하고 있다. 진짜 빈곤층 노인에겐 절대 없어선 안 되는 생계비다. 하지만 경제적 여유가 있는 노인들에겐 그저 생기면 좋은 용돈일 수 있다. 기초연금 확대 공약으로 정권을 잡은 박근혜 정부가 지급 대상을 크게 늘리고, 10만 원이던 월 지급액도 20만 원으로 증액했다. 문재인 정부 때 월 30만 원을 넘겼고, 40만 원 인상은 윤석열 정부의 국정과제다.

일하는 동안 본인이 상당 부분을 부담한 뒤 노후에 받는 국민연금과 기초연금은 전혀 다르다. 순전히 그 해 걷는 세금에서 나눠줘야 한다. 현 제도를 유지한다면 내년에 대상이 700만 명에 육박하고, 2030년엔 한 해 40조 원의 예산이 필요해진다. 노인들 대신 앞으로 수십 년간 경제활동을 해야 하는 청년 세대가 그 부담을 고스란히 짊어져야 한다.

70, 80대 빈곤층 노인을 위한 기초연금은 필요하다. 32만 원이 아니라 생계에 실질적 보탬이 되는 수준까지 높여야 한다. 하지만 취업난과 과중한 대출이자 부담에 허덕이고, 심지어 전세사기까지 제일 많이 당한 MZ세대가 내야 할 세금으로 부유한 노인까지 매달 용돈을 주는 사회는 계속 유지될 수 없다. 입만 열면 청년의 미래를 생각한다는 여야 정치인들의 얘기가 빈말이 아니라면 눈앞에 닥친 이 숙제에 해답을 내놔야 한다.


박중현 논설위원 sanjuck@donga.com
#기초연금#mz세대#세금#중위소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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