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 사<私>교육 아닌 사<思>교육 해야 할 때[공부를 공부하다/신종호]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3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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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호 서울대 교육학과 교수
신종호 서울대 교육학과 교수
통계청이 사교육비 조사를 시작한 2007년 이후 초중고교생 사교육비 총액과 1인당 평균 사교육비 액수가 지난해에 최고치를 경신했다고 한다. 초중고교생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는 41만 원으로 전년도보다 11.8% 증가했다. 사교육비 총액은 약 26조 원으로 교육부 전체 예산의 3분의 1 규모와 맞먹는 것으로 나타났다. 코로나 시기에 학습 결손을 만회하려는 이들이 많아졌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이를 계기로 사교육 문제의 구조적 원인을 짚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초중고 사교육비 지난해 역대 최고치

수치가 보여주듯 한국은 거의 모든 가정에서 사교육을 당연시하는 경향이 있다. 학교 교육만으로는 자녀의 공부를 기대만큼 관리할 수 없고, ‘과잉 경쟁’ 사회에서 남들보다 앞서기 위해서는 반드시 사교육을 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형성돼 있다. 이렇다 보니 사교육 참여율은 2022년 기준 거의 80%에 육박한다. 사교육을 시킬 경제적 여건이 되지 않는 가정과 고등학교 진학 후 취업을 진로로 정한 가정을 제외하고는 거의 모두 사교육에 참여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다면 사교육에 대한 학부모들의 만족도는 어떨까? 가계부담이 크지만 효과가 있다면 만족도가 높을 텐데, 실제 사교육을 통해 기대한 만큼 성과를 얻었다는 학부모도 그리 많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왜 그럴까?

먼저 사교육의 주요 목적 중 하나인 선행학습의 효과부터 냉철하게 생각해 보자. 선행학습은 주로 현 학년에서 배우는 내용을 넘어서 상위 학년의 내용을 ‘속진’으로 학습하는 것을 뜻한다. 속진의 속성상 단기간에 이전보다 난도가 높은 내용들을 학생들이 자기 것으로 소화해야 한다. 한데 이는 쉽지 않다. 충분히 현 내용을 이해하고 난 뒤에 다음 내용을 학습해야 하는데, 현 내용을 온전히 파악하지 못한 상태에서 다음 내용으로 급히 넘어가니 학습 효과가 떨어지는 것이다.

20년 이상 학습에 관한 연구를 해온 전문가로서 선행학습은 우리 학부모님들이 기대하는 만큼 효과가 크지 않다는 점은 분명히 이야기할 수 있다. 선행학습보다 현 학년에서 배우는 내용을 깊이 있게 자기 것으로 만들고, 다음 학년의 내용을 순차적으로 천천히 학습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자기주도적 학습 없는 사교육 효과 적어


학교 교육의 보충은 사교육의 또 다른 주요 목적이다. 이 경우 선행학습보다는 만족도가 높지만 기대만큼 효과가 보장되지 않는 경우도 적지 않다. 현재의 학습적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사교육을 시키는데 왜 이런 문제가 발생할까. 사교육의 도움을 받더라도 자기주도 공부 습관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 현재 학교 공부에 어려움이 있으니 필요한 동안 도움을 받고, 이 과정에서 자신이 공부의 주체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으로 노력해야 한다. 공부는 남으로부터 도움을 받아야 효과적이라는 의존적 생각이 중심이 되면 공부에 대한 주체성을 잃게 된다. 공부에 대한 주인의식 없이 사교육의 도움을 받는 경우, 그 효과는 절대 오래가지 못한다.

인터넷 강의를 듣거나 학원에 가기 전에 스스로 먼저 교과서를 읽고 그 내용을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먼저 스스로 노력해야지 인터넷 강의나 학원에서의 보완적 공부가 성공할 수 있는 것이다. 자녀 스스로 노력하는 공부가 빠진, 의존적 사교육은 절대 하지 말아야 한다.

이렇듯 사교육의 기본적 기능을 생각해보면 우리 미래교육의 토대를 망가트리는 일종의 죽은 교육, 사(死)교육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사교육의 기본적 속성은 사실, 지식을 이해하고 기억하도록 하는 것이다. 지식학습 패러다임에서 경쟁이라는 가치와 문화를 중심으로 학교 교육에 기생해 온 것이 사교육이다. 지식학습과 경쟁 패러다임을 근거로 하는 사교육이 최근 챗GPT와 같은 인공지능(AI)의 일상적 활용 시대, 해결해야 할 문제가 복잡계 특성을 갖는 시대에도 여전히 필요한가에 대해 깊게 생각해야 할 시점이다.

2015년 세계경제포럼에서 21세기를 살아갈 미래세대가 갖추어야 할 역량으로 강조한 것이 바로 비판적 사고력, 창의력, 그리고 소통과 협력 역량이다. 단순히 기존 지식을 체계적으로 정리, 보관하고, 필요 시 즉시 이를 정리하여 결과로 만들어주는 능력은 더 이상 인간의 고유의 능력이 아니다.

지식 연결해 결과 만드는 창의력 필요


2011년 IBM의 인공지능 ‘왓슨’(가운데)이 미국 퀴즈쇼 ‘제퍼디’에 출연한 모습. 67만 권의 책에 해당하는 정보를 지닌 왓슨은 암기 위주의 시대는 끝났음을 보여줬다. 사진 출처 위키미디어
2011년 IBM의 인공지능 ‘왓슨’(가운데)이 미국 퀴즈쇼 ‘제퍼디’에 출연한 모습. 67만 권의 책에 해당하는 정보를 지닌 왓슨은 암기 위주의 시대는 끝났음을 보여줬다. 사진 출처 위키미디어
2011년 IBM에서 개발한 인공지능인 왓슨이 미국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퀴즈쇼인 제퍼디에 출연해 당시 인간 퀴즈왕 2명과 3회에 걸쳐 대결했을 때 이미 지식 학습의 시대는 끝났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았다. 당시 왓슨이 스스로 학습해 간직하고 있던 지식의 양이 4TB(테라바이트)라고 한다. 한글 워드로 작성한 A4 용지 1장을 1페이지로, 이렇게 작성한 300페이지를 책 한 권이라고 할 때, 약 67만 권의 책을 왓슨이 자신의 두뇌인 데이터베이스 속에 학습을 통해 간직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인간이 67만 권의 지식을 머릿속에 기억하고 있을 수 있나? 그 많은 정보를 필요할 때 즉시 찾아 활용할 수 있을까? 요즘 챗GPT에서 보듯이, 기존 지식을 학습하고 정리하는 능력은 인공지능의 영역이 된 지 오래다.

사(思)교육의 시대가 열렸다. 지식 학습을 넘어 지식에 대한 평가 능력, 그리고 새로운 방식으로 지식을 연결하여 결과물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창의력이 요구되는 시대다. 우리 교육이 사(私)교육 패러다임에 잡혀 있는 동안 교육 경쟁력은 하락할 수밖에 없다. 이제는 챗GPT와 경쟁하는 교육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그것이 교육이 살 길이고, 가야 할 길이다.

신종호 서울대 교육학과 교수
#ai 시대#사교육#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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