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정연욱]이재명 私黨의 그림자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3월 3일 21시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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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 ‘개딸’ 앞세운 홍위병식 압박전
자기 쇄신 없는 대여 투쟁은 역주행

정연욱 논설위원
정연욱 논설위원
정치권에서 여야는 다투지만 그 강도는 내부 계파 싸움에 못 미친다. 내부의 적에게 쌓인 앙금은 오래갔다. 옛 한나라당 시절 친이, 친박의 날 선 공방부터 과거 친노-비노 전쟁까지 여야를 가리지 않았다. 여야 의원들은 싸운 뒤에도 뒤풀이를 하지만 같은 당내 파벌은 쉽게 어울리지 못했다. 지금 더불어민주당 사정이 그렇게 보인다.

이재명 대표 체포동의안이 ‘가결 같은 부결’로 끝나자 사실상 내전 상태로 들어갔다. 이 대표 호위무사를 자처하는 강경파 지지자 ‘개딸’들은 비명 세력을 겨냥한 총공세에 나섰다. 친명 핵심들은 “배신자들의 반란”이라며 이들을 부추기고 있다. 이 대표가 “단합이 우선”이라고 자제를 요청해도 이중 플레이로 비치는 이유다.

배신자를 색출한다며 ‘살생부’ 명단이 나돌고, 의원실에 연락해 ‘심한 배신감이 드는 하루. 찬성표 맞는지 답을 달라’는 문자 폭탄도 쏟아졌다. 무기명 투표인데도 주눅이 든 의원들이 ‘가결표 안 던졌다’고 답하는 모습은 안쓰러울 정도다. 당명을 바꿀 때도 ‘민주’ 간판은 꼭 살리던 정당에서 벌어지는 이런 장면이 정녕 민주적이라고 생각하는가.

중국 문화혁명 시절 홍위병들의 ‘비투(批鬪)’가 있었다. 마오쩌둥 노선에 반대한 내부의 적들을 공개 비판하면서 조리돌림도 서슴지 않았다. 그 어떤 반론이나 항변의 기회도 없이 벌어진 인민재판이나 다름없었다. 당시 무대는 길거리였지만 50∼60년이 지난 지금 사이버 공간으로 진화했다. 민주당 내전은 ‘비투’ 시즌2를 방불케 한다.

당원 중심주의. 친명 주류가 휘두르는 요술방망이다. 당원이라지만 사실상 친명 강경파들이 든든한 뒷배여서다. 몇몇 비명 의원은 공개적으로 맞서지만 상당수 의원은 침묵하고 있다. 친명 강경파들은 파상 공세다. 대표 거취 결정을 위한 전(全) 당원 투표를 비롯해 ‘개딸 여론조사 공천 반영’ 등 카드까지 거론하고 있다. 비명계를 이끌 만한 구심점이 없고, 당의 기반인 호남 표심이 버텨준다는 정치적 계산이 깔려 있다.

대선에서 졌으면 왜 졌는지 원인부터 진단하고, 새롭게 정비하는 ‘뉴 플랜’을 준비하는 게 상식이다. 김대중(DJ)도 ‘뉴DJ 플랜’으로 전면 쇄신에 나섰고, 문재인도 중도층에 한 걸음 더 다가가기 위한 전략을 세웠다. 그러나 이 대표는 강경파들의 ‘졌잘싸(졌지만 잘 싸웠다)’ 논리에만 기댄 채 거꾸로 갔다. 압도적인 당심을 무기로 개딸이 총대를 멨다. 아무런 연고도 없는 이 대표의 인천 보궐선거 출마를 시작으로 당 대표 선출, 친명 일색 지도부에 이어 당헌 80조(기소 시 직무정지) 무력화까지 일사천리였다. 누가 봐도 이 대표의 사법리스크를 대비한 행보였다. ‘이재명=민주당’이라는 이재명 사당(私黨)의 그림자는 짙어져 갔다.

야당은 집권세력의 실정을 비판하면서 수권역량을 키우는 반대당(opposition party)이다. 동시에 자기 쇄신으로 국민들의 신뢰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재명당에선 두 날개 중 한 날개가 꺾였다. 2002년 대선에서 패배한 한나라당은 대선 자금 수사 직후 천막당사로 옮겼고, 2006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자당 소속 의원들을 공천비리 의혹으로 노무현 검찰에 수사 의뢰하는 결기를 보였다.

체포동의안 사태 이후 개딸들의 입당 러시는 이어지는데 민주당 지지율은 오히려 하락하고 있다. 친명 당원들의 결집이 국민들의 신뢰 기반을 허무는 역설이다. 이 대표 측의 강력한 대여 투쟁과 비명계 공격이 당 지지율의 발목을 잡는 이유를 멀리서 찾을 것이 아니다.


정연욱 논설위원 jyw11@donga.com
#개딸#이재명#계파 싸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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