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나이 받아들이기[동아광장/김금희]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1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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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세까지 인생 장면 담은 그림책 펴봤더니
잊고 있었던 시절 만나고 미래 준비하게 돼
‘나이의 무게’에 지지 않는 새해 되길 바라

김금희 객원논설위원·소설가
김금희 객원논설위원·소설가
새해는 ‘나이 들기’에 관해 매우 특별한 경험을 하는 해다. 올해 나이가 어떻게 되죠? 하고 물으면 막 서른이 되었지만 조금 있으면 스물아홉이 됩니다, 라고 대답할 수 있으니까. 마치 역주행하는 롤러코스터를 단체로 올라탄 것처럼 우리는 한 살 더 먹었다가 한 살, 최대 두 살 거꾸로 먹게 된다. 행정 기본법이 개정돼 6월부터는 만 나이를 쓰기 때문이다.

한 살 더 먹는 무게감이야 모두에게 달갑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나이테가 굵어지는 나무에서 보듯 나이 먹는 일이 마냥 괴롭고 소득 없는 일은 아니다. 묵은해에서 새해로 넘어가는 시기, 독일의 극작가 하이케 팔러가 쓴 ‘100 인생 그림책’을 읽으면서 그런 생각을 했고 나이 드는 일이 조금은 덜 두려워졌다.

‘100 인생 그림책’은 0세부터 100세까지 인간 삶의 결정적 장면을 담아낸 책이다. 모든 이가 한 번은 경험하고 지나가게 되는 시간대의 ‘실체’를 간명하고 일상을 깊숙이 꿰뚫는 문장으로 표현한 수작이다.

한 살 반 정도 나이가 되었을 때 우리는 “엄마가 어디론가 가버려도 다시 온다”는 걸 배웠고 “그것이 믿음”이라는 것을 느꼈다. 믿는다는 것은 머리가 아니라 마음을 움직여 힘쓸 수 있다는 것. 눈앞에 당장 있지 않지만 분명 어딘가에는 있는 모든 것을 상상하는 능력을 우리는 작은 아기일 때부터 배웠다. 희망, 사랑, 기대, 친밀감, 신뢰, 기쁨, 기다림 그 모든 마음이 눈에 보이지 않는 형태로 영원히 우리 삶을 구성하리라는 것을. 하지만 그러한 것들을 힘써 믿고 느끼려 하지 않는다면 삶이 메말라 ‘지루해질 수도 있다’(7과 4분의 1세)는 것을.

세상의 모든 일이 흥미로웠던 아이 시절을 지나 열다섯 살은 “사람이 맨눈으로 볼 수 있는 가장 먼 천체는 안드로메다은하”라는 사실 같은 것을 알게 되는 시기다. 그리고 안드로메다가 “삼십억 년쯤 후에 우리 은하와 충돌한다”는 전망에 묘한 기대와 두려움을 동시에 느끼게 되는 나이이기도 하다.

이 시기에 나 역시 많은 과학 소설들을 읽었고 한때는 최면술에 관심을 갖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추상적 세계에 ‘감정적’으로 끌렸던 시기처럼 느껴지는데, 내가 그랬다. 어디서 구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최면 상태를 만들어 전생의 기억을 떠올리게 해준다는 오디오 테이프를 밤마다 열심히 들었다. 전생은 한 시기의 삶을 온전히 끝내고 난 뒤의 기록이니까 그걸 알고 싶었다는 건 어쩌면 그 나이 때부터 미래에 대한 간절한 궁금증과 불안이 있었다는 뜻일 것이다. 나는 이 책 덕분에 그런 기억을 떠올리고는 말이 안 되는 전생 테이프에 미래를 기탁했던 십대의 나에 대해 좀 더 갸륵한 마음을 갖게 되었다.

이렇듯 ‘100 인생 그림책’은 경험했지만 잊고 있었던 ‘내 나이’에 대한 반가운 회상을 가능하게 한다. 또 경우에 따라서는 앞으로 다가올 나이대에 대해 깨닫고 준비하는 마음을 갖게 하기도 한다. “누군가와 이토록 가까운 적은 없었을” 사랑이라는 모험(24세)에 대해 알게 하고, 행복이 “아주 좋을 때와 아주 나쁠 때 그 두 경우 가운데쯤에서 가장 잘 자란”다(30세)는 것을 알려주기도 한다. 부모가 되어 “잠이 모자라도 버티는 법을 배우게” 된 서른세 살의 분투를, “밤새 한 번도 깨지 않고 잔다는 게 얼마나 호사를 누리는 일인지” 겸허하게 깨닫는 마흔아홉 살의 무게를 담아낸다. 우리가 한 해 한 해 시간을 보내며 만들어 나갈 ‘나이의 역사’다.

그렇다면 100세는 어떻게 규정되는 나이일까? 이 글을 읽을 사람들 중 그 나이를 경험한 사람은 극히 드물 테니까 100세는 어쩌면 우리 모두가 궁금해하는 미래이자 종착지일 것이다. 그 해답은 이 좋은 책을 직접 읽어 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밝히지 않겠다. 다만 저자는 이 책을 쓰기 위해 다양한 사람들을 인터뷰했고, 거기에는 아흔 살을 넘긴 노인도 많았다고 한다. 그 과정에서 저자가 가장 놀랐던 것은 “대화를 나누었던 노년층 가운데 죽음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점이었다고 전한다. 그들은 “해마다 빈 잼 병을 지하실에 가져다 놓으면서 이렇게 생각해요. 내년에 또 쓰게 될지 혹시 알아?” 하고 말했다고. 우리 각자에게 준비된 이 많고 적은 나이를 이렇듯 낙관하는, 결코 나이의 무게에 지지 않는 새해가 되기를 바란다.

김금희 객원논설위원·소설가
#새해#나이 들기#새 나이#나이의 무게#받아들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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