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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횡설수설/정원수]자택 앞 시위 민폐

입력 2022-12-01 03:00업데이트 2022-12-01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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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6월 한 정보기술(IT) 기업 회장의 서울 단독주택 앞에 시위대 10여 명이 모였다. 이들은 ‘소액주주 병들어 죽는다’는 플래카드를 펼친 채 “사측이 주가 상승을 저지하고 있다”는 구호를 외쳤다. 비슷한 시기 한화 등 다른 기업의 일부 소액주주도 주가 하락에 항의하기 위해 최고경영자(CEO)의 자택 앞을 찾아갔다. 기업 본사가 아닌 기업인들의 자택 앞에서 시위를 하는 것이 공식처럼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자택 앞에서 텐트를 치고 노숙하거나 삼겹살을 구워 먹는 민폐 유발형 집회도 많아졌다.

▷자택 앞 시위의 유형도 예전엔 1인 시위 위주였는데, 요즘엔 단체 시위로 바뀌었다. 은마아파트 재건축추진위 주민들이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의 자택 앞에서 12일부터 벌이고 있는 시위도 한 예다. 이들은 현대건설이 시공을 맡은 공사로 인한 붕괴 위험을 거론하며 아파트 하부를 지나도록 설계된 광역급행철도(GTX) 노선의 변경을 요구하고 있다. 그런데 GTX 노선을 바꿀 결정권은 현대건설이 아니라 국토교통부에 있다. 정 회장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주민들이 안전 문제를 우려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국토부는 안전에 관한 한 아무 문제가 없다고 설명한다. 터널을 뚫는 공법도 주민들이 걱정하는 ‘발파공법’이 아니라는 것이다. 안전성에 대해 “산 밑에 빨대 두 개를 꽂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비유하는 전문가도 있다. 무리한 시위는 재건축추진위에 소속된 주민들에게도 자충수가 된 형국이다. 국토부가 재건축추진위 공금을 GTX 반대 시위에 사용한 것이 위법이라며 조사를 시작한 것이 단적인 예다.

▷자택 앞 시위의 대상은 기업인뿐만 아니다. 정치인이나 지방자치단체장이 사는 지역이 단골 시위 장소가 된 지 오래다. 단독주택이든 아파트든 가리지 않고 극단적 표현이나 원색적 욕설을 쏟아내 이웃 주민들이 단체로 정신적, 신체적 고통을 호소하는 일이 잦다. 자택 앞 집회가 금지된 곳은 대통령이나 국회의장 등 현직 헌법기관장이나 외교 사절의 공관뿐이다. 한때 아파트 단지 출입구를 집회 금지 장소에 추가하려는 움직임도 있었지만 결국에는 무산됐다.

▷현행 집시법에는 ‘사생활의 평온(平穩)을 뚜렷하게 해칠 우려가 있는 경우’ 경찰이 집회를 금지 또는 제한할 수 있도록 돼 있다. 그러나 자택 앞 시위는 법률의 문제를 떠나, 기본적인 상식과 시민의식의 문제라는 지적이 많다. 앞서 주가 하락 시위만 하더라도 충분히 항의는 할 수 있지만 꼭 프라이버시를 침해해야 하느냐는 것이다. 더구나 시위 대상이 되는 기업인들의 이웃이라는 이유만으로 소음과 혐오 표현에 고통받아야 하는 사람들은 무슨 죄인가.

정원수 논설위원 needj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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