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연 칼럼]‘베트남-한국과학기술연구원’ 출범에 거는 기대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12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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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기술, 기업 경쟁력과 외교국방의 요체
美도움으로 세운 KIST, 이젠 베트남 지원
폭넓은 교류 통해 한-베트남 함께 성장하길

김도연 논설위원·서울대 명예교수
김도연 논설위원·서울대 명예교수
한 나라의 국력은 경제, 국방, 문화, 외교 등 모든 힘의 총화이지만 이들 각 분야의 기초가 되는 것은 과학기술이다. 기술력은 국가 경제를 좌우하는 기업 경쟁력의 요체이며 국방은 물론이고 외교에서도 가장 중요한 바탕이다. 최근 미국과 중국의 갈등도 21세기에 접어들며 가속 발전하고 있는 기술에 대한 헤게모니 경쟁이다. 10여 년 전 일상에 들어온 스마트폰에 의해 우리 삶은 얼마나 크게 바뀌었나.

그러나 전통적 기술은 빠르게 바뀌는 것이 아니었다. 기술은 장인(匠人)의 천부적 능력과 손에 녹아 있는 숙련의 영역이었다. 고려청자나 조선백자는 당시 세계 최정상의 기술로 만들어졌지만, 이들은 빼어난 몇 사람만이 구현할 수 있는 예술품이었다. 기술은 예술과 다름이 없었다. 오늘날 세계적으로 과학과 기술을 이끌고 있는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MIT)는 1861년에 설립되었는데, 그 무렵부터 내려오는 대학 문장(紋章)에는 과학(Science)과 예술(Arts)의 두 단어가 새겨져 있다.

기술이 예술과 다른 길에 들어선 것은 20세기 초 기계와 전기의 비약적 발전에서 비롯되었다. 제품 생산에 기계가 도입되면서 모든 제조공정이 일정하게 관리되었다. 그리고 얻어진 제품을 분석하고 그 결과를 다시 공정에 반영하는 과학적 접근이 이루어지면서, 예술은 균일한 제품을 대량생산할 수 있는 과학기술로 탈바꿈했다. 과학기술의 첫 번째 덕목은 반복과 재생 가능, 즉 재현성(再現性)이다. 이를 위해서는 길이와 온도 등의 척도를 규정하고 이를 정확히 측정하는 일이 가장 중요함은 당연하다.

1901년 미국은 국립표준기술연구소(NIST·National Institute of Standards and Technology)를 설립하면서 과학기술이 인류의 삶의 질 향상에 크게 기여할 수 있음을 선언하였다. 한반도에서는 명성황후 시해, 아관파천 등 혼란과 무질서가 반복되던 무렵이다. 세계정세와 과학기술에 대한 지도자들의 무지와 당파적 분열로 우리는 고통과 치욕의 기간을 보냈다. 그 후 대한민국은 1966년이 되어서야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Korea Inst. of Science and Tech.)을 설립하며 본격적으로 과학기술의 길에 들어서기 시작했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베트남 파병을 결정하면서 미국과 정상회담을 갖게 되었는데, 이때 요청한 사항 중의 하나가 KIST 설립 및 운영이었다. 연간 국민소득 100여 달러 시대였다. 당장 먹을거리 마련이 아니라 미래를 준비한 안목은 당연히 높이 평가해야 할 일이다. 이렇게 설립된 KIST는 지난 50여 년간 과학기술 연구를 선도하면서 기계, 전기, 화학, 재료 등 분야별 20여 개 연구소로 분화했고, 이들은 우리 국민소득을 3만5000달러로 높이는 데 크게 기여했다. 이제 대한민국 과학기술은 후발국들에 선망의 대상이다. 우리는 선진국의 문턱을 넘어섰으며 다른 나라를 도울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되었다.

2012년 3월 서울에서 열린 한-베트남 정상회담에서 베트남 측은 KIST를 롤모델로 자국의 발전을 꾀하겠다며 이명박 대통령에게 연구소 설립을 요청했고 우리 정부는 이에 긍정적으로 답했다. 2013년에 개최된 양국 정상회담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연구소 설립 지원을 약속했으며, 그 후 2018년에는 하노이 근교에 베트남-한국과학기술원(V-KIST·Vietnam-Korea Inst. of Science and Tech.) 건설이 시작되었다. 착공식에는 문재인 대통령이 참석해 과학기술을 통한 두 나라의 공동번영을 다짐했다. 정부가 바뀌어도 적폐청산만이 답은 아니다. V-KIST처럼 앞선 정부를 이어가는 사업과 정책이 훨씬 더 많으면 좋겠다.

V-KIST란 이름은 KIST와 꼭 닮은 연구기관을 갖고 싶다는 뜻으로 베트남 정부가 직접 지은 것이다. 베트남 과학기술부는 초대 경영 책임자로도 KIST 원장을 지낸 금동화 박사를 초빙 임명했다. KIST 운영 체제와 연구 방식을 따르겠다는 강력한 의지가 드러난다. 미국의 도움으로 KIST가 발족했고, 반세기 지나 이번에는 우리가 도운 V-KIST가 본격 행보를 시작하고 있다. V-KIST가 베트남의 과학기술 메카로 크게 성장하길 기원한다. 베트남은 현재 중국, 미국, 일본에 이은 대한민국의 4대 교역국이다. 한 해 1000억 달러에 가까운 규모로 수출입을 주고받는 최고의 파트너다.



김도연 객원논설위원·서울대 명예교수
#베트남#한국과학기술연구원#과학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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