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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달콤한 거짓’을 선호하는 사회[이정향의 오후 3시]

이정향 영화감독
입력 2022-04-13 03:00업데이트 2022-04-13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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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프랑수아 오종 ‘신의 은총으로’
이정향 영화감독
2014년. 프랑스의 리옹에 사는 마흔 살의 게랭은 10대 소년 시절 자신에게 성폭력을 가했던 프레나 신부가 지금껏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고 여전히 아이들을 지도하고 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는다. 추기경에게 편지도 쓰고 만나기도 하지만 미온적인 반응일 뿐이다. 오히려 가톨릭 교구는 공소시효 20년을 넘겼다는 사실을 ‘신의 은총으로’ 여긴다. 게랭은 양심과 상식에 호소하길 포기하고, 법의 힘을 빌리고자 자신과 같은 피해자를 수소문한다. 프레나 신부의 성폭력은 오랫동안 지속됐기에 아직 공소시효가 남은 피해자들이 있었다. 그들은 프레나 신부와, 그의 범죄를 알면서도 아무런 조치 없이 방조해 온 추기경을 고소한다.

성폭력 피해자들이 맞서 싸워야 할 상대는 거대한 가톨릭 교단이지만, 막상 피해자들을 할퀴고 헐뜯는 건 그들의 가족과 가톨릭 신자들이다. 수십 년 전 일을 뭣 하러 들추는가, 지금에서야 이러는 속셈이 뭐냐, 너는 이제 어른인데 그 늙은 신부가 불쌍하지도 않으냐며 침묵을 종용한다. 심지어 자신은 해를 안 입었다는 이유로 프레나 신부를 감싸며 피해자에게서 잘못을 찾으려 한다.

피해자 70여 명은 당시 10세 전후의 소년이었다. 엄청난 충격을 용기 내서 말하기까지 적어도 수십 년의 시간이 필요했다. 하지만 세상은 소수의 피해자보다는 힘 있는 가해자의 편일 때가 많다. 좋은 게 좋은 거다, 잘잘못을 따지지 말고 무조건 빨리 화해해라 등의 말을 무책임하게 뱉는 사람들도 있다. 피해자에게 속으로 삭이길 강요하는 사회, 남의 상처에 함부로 용서를 말하는 사회, 회개와 반성보다는 용서에만 관심 있는 사회일수록 범죄는 늘어나고, 우리는 공범이 되어 간다.

열등감이 큰 가해자일수록 반성보다는 자기를 보호할 변명에 급급하다. 상대의 고통을 헤아리는 대신 자신에게 면죄부를 주고자 진실을 가짜로, 거짓을 진실로 호도한다. 가해자의 세력이 클수록 거짓에게 밀려난 진실은 음모론의 탈을 쓰고 떠돈다. 음모론이라고 규정짓는 일엔 별다른 증거나 기준이 필요 없는 세상이다. 반대로, 음모론이 아님을 밝히는 데엔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다. 실패하면 영영 음모론으로 남는다. 10%의 진실을 확대해서 90%의 거짓마저 진실로 둔갑시키는 궤변이 먹히는 이유는 사회의 대다수가 아픈 진실보다 달콤한 거짓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거대 악에 도전하는 정의로운 소수를 앞장서서 탄압하는 건 거대 악에 속고 있는 대중들이다. 힘들고 외로운 싸움을 이어 온 피해자들은 프레나 신부를 고소한 지 5년 후에야 징역형 5년을 받아낸다. 프레나의 범죄를 오랫동안 은폐한 추기경은 항소에서 결국 무죄를 받았다. 실화다.

이정향 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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