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수처법 밀어붙인 巨與, ‘사찰 논란’은 왜 모른 척하나 [광화문에서/한상준]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1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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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준 정치부 차장
한상준 정치부 차장
“검경의 이러한 광범위한 사찰은 민주주의에 대한 정면 도전이다.”

연일 ‘사찰 논란’에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국민의힘이 낸 논평이 아니다. 박근혜 정부 때인 2014년 10월 새정치민주연합(현 더불어민주당)이 낸 논평이다.

약 7년 전의 상황은 지금과 흡사하다. 당시 검경은 정치권 인사와 지인들의 카카오톡 대화를 들여다봤다. 이런 문제 등으로 인해 민주당은 19대 국회에서 수사기관이 통신사에 통신자료를 요구할 때 영장 청구를 의무화하는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현재 속속 드러나고 있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의 무더기 통신조회가 문제라는 걸 민주당은 이미 알고 있었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 부부는 물론이고 야당 의원들과 외신 기자에 대해서까지 공수처가 통신조회에 나섰다는 사실이 드러난 지금, 민주당은 “뭐가 문제냐”는 태도다. 법조인 출신인 민주당 이상민 의원조차 “통신조회 수사 관행은 명백히 위헌이고 위법”이라고 지적했지만, 민주당은 “이명박 박근혜 정권 때도 무수히 많은 통신조회가 이뤄졌다”며 응수하고 있다.

민주당의 이런 해명은 공수처 설치를 밀어붙일 당시 여권이 내세웠던 명분과도 정면으로 배치된다. 민주당은 2019년 공수처 설치법을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했다. 우여곡절 끝에 공수처법이 통과된 뒤 민주당은 재차 무력 과시에 나섰다. 2020년 12월 민주당은 공수처장 선출 방식을 바꾼 개정안을 또다시 일방적으로 몰아붙였고 그 결과 지난해 1월 공수처가 닻을 올렸다.

민주당이 거듭된 공수처 드라이브에 나섰던 명분은 “검찰개혁의 상징성”이었다. 한마디로 기존 검찰 수사에 문제가 많으니, 공수처를 통해 바로잡겠다는 의미다. 그런데 검찰과 다르게 수사하겠다며 발족한 공수처가 정작 사찰 논란이 불거지자 “기존의 수사 관행”이었다는 해명만 내놓고 있다. 기존의 관행이라도 잘못됐다면 바로잡아야 하는 게 공수처의 설립 취지지만, 민주당도 공수처도 모두 이를 모른 척하고 있다.

여기에 공수처는 명칭에도 담긴 본연의 기능인 ‘수사’도 제대로 못했다. 이른바 ‘고발 사주’ 의혹 수사에서 공수처는 출석 조사도 없이 구속영장을 청구하는 초유의 기법을 선보인 것도 모자라 구속영장을 번번이 기각당했다. 자연히 1년을 그냥 흘려보냈다. 성과는 없고 문제만 일으키는 공수처를 향해 청와대에서조차 “이러려고 우리가 (공수처를) 했던가 생각을 가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하지만 대선을 앞두고 “문재인 정부의 잘못된 점이 있다면 바로잡겠다”며 연일 목소리를 높이는 민주당은 공수처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다. 혹시나 민주당도 박범계 법무부 장관처럼 공수처 문제의 해법으로 “창단된 신생팀이니 격려가 우선”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면 대단한 오판이다. 수사기관인 공수처에 필요한 것은 격려가 아니라 재창단 또는 팀 해체까지를 각오한 개선과 조정이다.

한상준 정치부 차장 always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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