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수처, ‘통신자료’ 조회 경위부터 설명해야 [오늘과 내일/정원수]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12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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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찰적 수사 지향’ 공수처가 성찰 대상으로
국민 신뢰 못 받는 수사기관 존재이유 없어

정원수 사회부장
정원수 사회부장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의 권한이 주권자인 국민께 받은 것이라면 그 권한을 받은 공수처는 당연히 이러한 사실을 항상 기억하고 되새기며 권한 행사를 해야 할 것입니다. 저는 이러한 권한 행사를 성찰적 권한 행사라 부르고자 합니다.”

김진욱 초대 공수처장은 올 1월 21일 취임사를 통해 ‘성찰적 권한 행사’라는 말을 세 차례 했다. ‘국민’이라는 단어도 21차례 사용했다. 그러면서 “수사와 기소라는 중요한 결정을 하기에 앞서서 이러한 결정이 주권자인 국민의 눈높이에 맞는 결정인지, 헌법과 법, 그리고 양심에 따른 결정인지 항상 되돌아보게 될 것”이라고 약속했다. 신생 수사 기관인 공수처는 검찰과 경찰 등 결과만 중시하는 기존 수사 기관의 잘못된 수사 관행을 되풀이하지 않고, 국민의 신뢰를 받는 ‘인권 친화적 수사 기구’로 자리매김하겠다는 것이 김 처장의 구상이었다.

출범 1주년을 앞둔 공수처는 요즘 어떤가. 공수처가 올 5∼11월 수사 과정에서 기자 100여 명, 야당 정치인 10여 명, 시민단체 대표, 변호사 등의 휴대전화 통신자료를 광범위하게 조회한 사실이 드러났다. ‘반헌법적 사찰 논란’에 휩싸이면서 성찰적 수사 기관을 지향한 공수처가 성찰 대상이 된 것이다. “적법 절차를 지켰다”고 강조해 온 공수처는 야당 국회의원의 항의 방문 다음 날인 24일 “과거의 수사 관행을 깊은 성찰 없이 답습했다.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는 입장문을 냈다. 그러면서도 “수사 중인 개별 사건의 구체적 내용은 공개하기 어렵다”면서 조회 경위는 끝까지 설명하지 않았다.

고위 공직자를 수사대상으로 하는 공수처는 두 가지 사건을 수사하면서 기자와 정치인 등의 통신자료를 조회했다고 한다. 우선 공수처가 올 3월 7일 피의자 신분이던 이성윤 서울고검장을 공수처장의 관용차에 태운 뒤 집무실에서 면담한 이른바 ‘황제조사’ 사건에 대한 수사다. 이 고검장이 차량에 타는 장면이 찍힌 폐쇄회로(CC)TV 장면이 올 4월 1일 공개되자 공수처가 기자의 자료 입수 경위 등을 조사한다면서 기자와 지인의 통신자료와 통화내역까지 뒤진 것이다. 가입자의 주소와 주민번호가 적힌 통신자료는 수사 기관의 요청만으로, 통화 상대방과 통화 시간, 통화 일시 정보가 담긴 통화내역은 법원의 영장을 받아서 확인할 수 있다. 법조계에선 “수사 필요성과 상당성을 넘어선 ‘황제조사’ 보도에 대한 보복 수사로 볼 여지가 있다”고 평가한다.

두 번째는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의 고발사주 의혹에 대한 수사다. 지난해 대검찰청에서 근무할 당시 윤 후보의 참모였던 손준성 검사와 통화한 기자, 국민의힘 김웅 의원과 통화한 정치인 등에 대한 통신자료를 공수처가 확보했다. 손 검사나 김 의원과 통화한 적이 전혀 없는 기자나 지인들까지 포함됐다는 점에서 이 역시 통신자료뿐만 아니라 통화내역까지 조회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사고 있다.

수사 기관 종사자는 진실을 밝히겠다는 의지 외에 인권침해 등 수사에 따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전문성을 반드시 갖춰야 한다. 요즘 공수처는 피해를 최소화할 선의가, 능력이 있는지조차 의심스럽다. 그런데도 김 처장은 짧은 입장문만 내놓고 경위 설명을 미루고 있다. 전체 국민들 상대로 설명이 어렵다면, 최소한 당사자에게는 어떤 경위로 수사했는지 낱낱이 밝히고, 평가를 받아야 한다. 공수처의 존폐 여부는 국민의 신뢰에 있고, 국민들이 불신하는 수사 기관은 더 이상 존재할 이유가 없다.



정원수 사회부장 needjung@donga.com


#공수처#통신자료 조회#경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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