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바꾸기, 억지는 ‘실용’이 아니다[오늘과 내일/정연욱]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12월 18일 03시 00분


코멘트

李·尹, 전두환 경제성과 발언은 같은 취지
엇갈리는 메시지 혼란은 신뢰 위기 초래

정연욱 논설위원
정연욱 논설위원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는 그동안 진보진영에서도 강경한 목소리를 내면서 두각을 나타냈다. 타협과 협상으로 대변되는 기성 정치권과 결이 달랐다. 2015년 5월 소셜미디어에 올린 글을 보자.

‘노무현 대통령을 보면서 타산지석으로 배운 게 있다. 노무현은 너무 착해서 상대 진영도 나처럼 인간이겠거니 하며 믿었다. 하지만 인간이 아니다. 관용과 용서는 참극을 부른다.’

보수우파 세력은 청산해야 할 대상이라는 적개심이 묻어났다. 이 후보가 박근혜 탄핵 정국을 주도하면서 2017년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바람을 일으킬 수 있었던 동력이었다.

이번 민주당 경선에서 이 후보가 대선후보가 될 수 있었던 배경에도 이런 ‘이단적’ 캐릭터가 작용했을 것이다. 정권교체 여론이 우세한 상황에서 친문 일색보다는 ‘이종(異種)교배’ 효과가 더 절실하다는 판단에서다. 역대로 집권여당의 대선후보는 주류가 아닌 비주류 진영에서 나온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여당 대선후보는 집권세력 주류를 껴안고, 반대 진영의 표심(票心)까지 흔들어야 한다. 이것이 여당 대선후보의 숙명이기에 이 후보가 안고 가야 하는 딜레마다.

전두환은 적어도 지금 여권에선 만악(萬惡)의 근원이다. 집권 내내 보수야권을 적폐청산으로 몰아가면서 선악(善惡) 프레임으로 갈라놓았으니 당연한 귀결이다. 이 후보는 경제를 살린 전두환 리더십을 평가한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후보를 겨냥해 “존경하는 분이니 밟지 못할 것”이라며 전두환 표지석까지 밟는 퍼포먼스까지 했다. 한술 더 떠 조국은 “히틀러 통치 시기 독일 중공업은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독일 총리 후보가 ‘히틀러가 잘한 것도 있다’라고 말하면 어떻게 될까”라고 윤 후보를 비판했다. 결국 윤 후보는 대국민 사과를 했다.

그러나 이 후보도 “전두환도 공과가 공존한다”며 경제성과를 인정했다. 경제 부흥이라는 공도 인정할 수 없다는 여권의 금기(禁忌)를 깬 것이다. 그 정도로 절박한 심정으로 야당의 기반인 대구경북 표밭을 공략하겠다는 승부수였다.

문제는 그 다음 대응이었다. 초등학생이 봐도 발언 취지는 같은 맥락인데도 “이재명과 윤석열 발언은 다르다”고 했다. 당내 일각에서 “이 후보 발언은 너무 나갔다”는 지적도 있었지만 이 후보는 오히려 “우리가 양자택일, 흑백논리에 빠져 있다”고 반박했다. 나는 괜찮지만 윤 후보는 용납할 수 없다는 전형적인 이중잣대다.

문재인 정권의 부동산정책 실패 등으로 등 돌린 민심 지형은 이 후보에게 불리한 편이다. 여권 인사들도 지금의 이 후보 지지율에서 5% 정도 빼서 보는 게 정확한 분석이라고 보고 있다. 그래서 중원의 표밭으로 나가야 하는 이 후보의 절박함을 모르는 바 아니다. 여권의 오만과 불통에 대해 연일 사과 모드로 몸을 낮춘 이유일 것이다. 그러나 어제 했던 말이 오늘 바뀌고, 뒤집힌다면 그 사과가 진정성이 있을까. ‘내로남불’의 표상이었던 조국 사태에 대해 사과하면서 전두환 공과 발언을 나 몰라라 한다면 어느 쪽 말도 믿기 어려워질 것이다.

여론조사 전문가들이 주목하는 중요 지표 가운데 진실성(integrity) 리더십이 있다. 그 핵심은 ‘말’의 존중이다. 리더는 위기에 몰렸을 때도 전체 구성원에게 솔직하게 소통할 수 있어야 한다. 메시지의 힘이다. 그러나 이 후보의 메시지는 너무나 혼란스럽다. 이게 실용 노선은 아니다.



정연욱 논설위원 jyw11@donga.com


#억지#실용#더불어민주당#이재명#대선후보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