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는 그동안 진보진영에서도 강경한 목소리를 내면서 두각을 나타냈다. 타협과 협상으로 대변되는 기성 정치권과 결이 달랐다. 2015년 5월 소셜미디어에 올린 글을 보자.
‘노무현 대통령을 보면서 타산지석으로 배운 게 있다. 노무현은 너무 착해서 상대 진영도 나처럼 인간이겠거니 하며 믿었다. 하지만 인간이 아니다. 관용과 용서는 참극을 부른다.’
보수우파 세력은 청산해야 할 대상이라는 적개심이 묻어났다. 이 후보가 박근혜 탄핵 정국을 주도하면서 2017년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바람을 일으킬 수 있었던 동력이었다.
이번 민주당 경선에서 이 후보가 대선후보가 될 수 있었던 배경에도 이런 ‘이단적’ 캐릭터가 작용했을 것이다. 정권교체 여론이 우세한 상황에서 친문 일색보다는 ‘이종(異種)교배’ 효과가 더 절실하다는 판단에서다. 역대로 집권여당의 대선후보는 주류가 아닌 비주류 진영에서 나온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여당 대선후보는 집권세력 주류를 껴안고, 반대 진영의 표심(票心)까지 흔들어야 한다. 이것이 여당 대선후보의 숙명이기에 이 후보가 안고 가야 하는 딜레마다.
전두환은 적어도 지금 여권에선 만악(萬惡)의 근원이다. 집권 내내 보수야권을 적폐청산으로 몰아가면서 선악(善惡) 프레임으로 갈라놓았으니 당연한 귀결이다. 이 후보는 경제를 살린 전두환 리더십을 평가한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후보를 겨냥해 “존경하는 분이니 밟지 못할 것”이라며 전두환 표지석까지 밟는 퍼포먼스까지 했다. 한술 더 떠 조국은 “히틀러 통치 시기 독일 중공업은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독일 총리 후보가 ‘히틀러가 잘한 것도 있다’라고 말하면 어떻게 될까”라고 윤 후보를 비판했다. 결국 윤 후보는 대국민 사과를 했다.
그러나 이 후보도 “전두환도 공과가 공존한다”며 경제성과를 인정했다. 경제 부흥이라는 공도 인정할 수 없다는 여권의 금기(禁忌)를 깬 것이다. 그 정도로 절박한 심정으로 야당의 기반인 대구경북 표밭을 공략하겠다는 승부수였다.
문제는 그 다음 대응이었다. 초등학생이 봐도 발언 취지는 같은 맥락인데도 “이재명과 윤석열 발언은 다르다”고 했다. 당내 일각에서 “이 후보 발언은 너무 나갔다”는 지적도 있었지만 이 후보는 오히려 “우리가 양자택일, 흑백논리에 빠져 있다”고 반박했다. 나는 괜찮지만 윤 후보는 용납할 수 없다는 전형적인 이중잣대다.
문재인 정권의 부동산정책 실패 등으로 등 돌린 민심 지형은 이 후보에게 불리한 편이다. 여권 인사들도 지금의 이 후보 지지율에서 5% 정도 빼서 보는 게 정확한 분석이라고 보고 있다. 그래서 중원의 표밭으로 나가야 하는 이 후보의 절박함을 모르는 바 아니다. 여권의 오만과 불통에 대해 연일 사과 모드로 몸을 낮춘 이유일 것이다. 그러나 어제 했던 말이 오늘 바뀌고, 뒤집힌다면 그 사과가 진정성이 있을까. ‘내로남불’의 표상이었던 조국 사태에 대해 사과하면서 전두환 공과 발언을 나 몰라라 한다면 어느 쪽 말도 믿기 어려워질 것이다.
여론조사 전문가들이 주목하는 중요 지표 가운데 진실성(integrity) 리더십이 있다. 그 핵심은 ‘말’의 존중이다. 리더는 위기에 몰렸을 때도 전체 구성원에게 솔직하게 소통할 수 있어야 한다. 메시지의 힘이다. 그러나 이 후보의 메시지는 너무나 혼란스럽다. 이게 실용 노선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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