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는 미래를 위한 선택, 월급은 투자를 위한 시작[광화문에서/박희창]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12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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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창 경제부 기자
박희창 경제부 기자
내년 3월 결혼을 앞두고 있는 직장인 이모 씨(32)의 꿈은 건물주다. 안정적인 월세 수입이 확보되면 바로 직장에 사표를 던지고 아내와 여행을 다닐 생각이다. 그에게 직장은 건물주로 향하는 징검다리인 셈이다. 그는 월급에 마이너스통장 잔액 4000만 원을 끌어다 주식이나 가상화폐 등에 투자하는 데 쓴다. 돈을 굴려 건물 매입자금을 하루라도 빨리 마련하기 위해서다.

최근 집값이 치솟고 주식, 가상화폐 가격까지 롤러코스터를 타면서 땀 흘려 버는 근로소득보다 투자로 단박에 큰돈을 쥐려는 이 씨와 같은 청년들이 늘고 있다. ‘일만 열심히 하다 벼락거지가 되지 않겠다’ ‘일보다 투자가 더 중요하다’는 말들이 재테크 카페에 넘친다.

이런 추세는 통계로도 나타난다. 우리금융경영연구소의 ‘팬데믹 시대의 대중부유층 보고서’에 따르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이후 근로 활동의 가치가 이전보다 떨어졌다고 답한 이들은 전체의 28.7%였다. 높아졌다고 답한 이들(15.5%)의 약 2배 수준이었다.

자산 가격 상승 폭이 워낙 크기 때문에 매달 꼬박꼬박 통장에 들어오는 돈만으로는 ‘벼락거지’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는 것을 경험한 사람이 많다는 뜻이다. 이미 큰 폭으로 뛰기 시작한 물가도 월급의 가치 하락을 부추긴다. 연 2%가 넘는 물가 상승률이 가시화됐지만 월급은 그만큼 빠르게 오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노동의 가치는 경시되고 근로 의욕이 꺾인다. 주변의 많은 기업인이 ‘요즘 직원들은 딱 월급 받는 만큼만 일한다’며 아쉬워하기도 한다. 부동산 등 자산시장 거품을 관리하지 못한 정부의 실패가 근로소득을 투자소득에 비해 초라하게 만든 것이다. 청년들의 근로 의욕과 노동 활력이 떨어지면 잠재성장률이 꺾이고 있는 우리 경제도 힘들어질 수밖에 없다. 이렇게 되면 주식, 부동산 등 자산시장도 계속 활황일 순 없다.

정부와 정치인들은 어설프게 청년을 위로할 게 아니라 건물주보다 최고경영자(CEO)를 꿈꾸는 청년들이 늘어나도록 기업가 정신을 북돋우고, 청년들이 땀 흘려 일하고 정당한 소득을 얻을 기회를 늘려야 한다. 그런 기회가 줄어드니 청년들이 미래를 불안하게 여기고 근로소득의 가치를 불신한다.

투자는 미래를 위한 선택이고 그 출발은 노동으로 번 ‘월급’이라는 점을 기억해 볼 필요가 있다. 전업 투자자로 변신해 투자 에세이 ‘비겁한 돈’까지 펴낸 개그맨 황현희 씨(41)는 최근 한 유튜브 채널에서 청년들에게 “노동에 대한 가치를 느끼면서 충분한 시드 머니(종잣돈)를 만들라”며 “노동은 필요 없고 투자에 올인하라는 것은 사기꾼”이라고 말했다.

내년 한국은행은 추가 기준금리 인상에 나서 기준금리를 연 1.5%까지 끌어올릴 가능성이 높다. 대출 부담은 무거워질 수밖에 없다. 여기에다 오미크론 변이 확산, 글로벌 공급 병목 현상 등으로 경제의 불확실성은 더욱 커졌다. 투자 수익에 기대기 힘든 시대가 온다는 신호다. 소소하지만 확실한 월급의 힘, 근로의 가치를 다시 한 번 되새겨봐야 할 연말이다.



박희창 경제부 기자 ramblas@donga.com


#투자#미래#선택#월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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