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보다 어렵고 의미 있는 시험들 남아
자신이 스스로 만들어갈 미래 준비해야

수십 년이 지났지만 생생히 기억한다. 내가 시험을 치르던 그날도 어둑새벽은 몹시 추웠다. 도시락 가방을 주렁주렁 매달고 수험장을 찾아가다가 문득 뒤돌아보니 엄마들이 닫힌 교문의 차가운 쇠창살을 붙잡고 간절한 기도를 바치고 있었다. 몇 해 전에는 나도 그 엄마들의 자리에서 시험을 보러 가는 아들의 뒷모습을 하염없이 좇았다. 지각한 어떤 아이가 허둥지둥 달려 들어가고 교문이 쿵 닫힌 뒤에도 좀처럼 발길을 돌릴 수 없었다. 코가 새빨개진 엄마들 사이에서 시린 발을 동동 구르며 한참 동안 아이들이 빨려 들어간 미명을 바라보았다. 평소보다 시험을 잘 봐서 좋은 성적을 얻기를 원하지는 않았다. 그동안 노력한 만큼, 딱 그만큼만 실수하지 않고 후회 없이 실력을 발휘하길 바랐다.
대학 입시 전형 방법이 다양해지면서 수능 평가의 비중이 예전 같지는 않지만 여전히 수능은 국가적 이벤트다. 교통 소통 원활화를 위해 공공기관을 비롯한 사업체의 출근 시간이 조정되고 등교 시간대 지하철과 버스·택시가 증차되며 비상 수송차량이 지원된다. 주변 소음 방지를 위해 듣기 평가 시간에 항공기 이착륙과 전차 이동이 금지되는가 하면 공사장의 소음과 사이렌 등 시험장 근처의 경적 자제가 요청된다.
다만 통과한다는 것은 어디에도 머무르지 않는 것, 그 의식에 지나치게 큰 의미를 부여하는 일은 경계해야 한다. 수능이 끝나면 어김없이 뉴스에 등장하는 실의에 빠진 수험생의 비극은 통과의례에 대한 오해와 과도한 해석 때문이다. 어떤 시험에서도 전부가 원하는 결과를 얻지는 못한다. 점수로 환산된 현재에 사로잡혀 모든 것이 끝나고 결정된 듯 절망에 빠질 필요는 없다. 아마도 지금은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그래서 위로가 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수능은 인생의 시험들 가운데 아주 작은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 더 어렵고 더 소중하고 의미 있는 시험들이 인생의 앞길에 무수히 남아 있고, 이제 그것에 대비한 진짜 공부를 시작할 시점에 다다랐을 뿐이다. 상대를 평가할 수 없는 오직 자기만의 시험, 스스로 만들어갈 미래에 대해 불교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인생은 가장 어려운 시험이다. 많은 사람들은 모두가 다른 시험지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타인을 그저 흉내 냈기에 낙제했다.”
코로나19라는 전대미문의 역병이 창궐하는 가운데 수험생들은 어느 해보다 오랜 시간 동안 긴장과 불안을 홀로 견뎌야 했을 것이다. 다들 애썼다. 지루하고 고단했던 하루하루가 성적표의 점수로만 환산될 수는 없다. 시험 한 번에 성공과 실패를 말하지 말자. 그저 잘 견뎌준 것, 긴 터널을 건너와 지금 여기 도착한 것에 감사할 뿐이다. 맛있는 것을 먹고, 푹 자고, 친구·가족들과 시시풍덩한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깔깔 웃자. 그 또한 지나갔고, 이 또한 지나가리라!
김별아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