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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인생의 새로운 시험지는 이제 펼쳐졌다[동아시론/김별아]

김별아 소설가
입력 2021-11-20 03:00업데이트 2021-11-20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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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의 통과의례는 고독과 고통 동반
수능보다 어렵고 의미 있는 시험들 남아
자신이 스스로 만들어갈 미래 준비해야
김별아 소설가
2022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일인 18일의 날씨는 수도권 기준으로 최저 기온 3도, 최고 기온 10도, 비올 확률은 20퍼센트였다. 예년보다 기온이 높아 포근한 날이라 했지만 수험생들이 체감한 온도는 사뭇 달랐을 것이다. 국립국어원의 개방형 국어사전인 우리말샘에 등록된 ‘수능 한파’라는 단어의 의미는 단순히 온도계의 눈금을 가리키지 않는다. 수능을 치르는 시기가 되면 갑자기 내려가는 기온은 몸이 아니라 마음이 느끼는 냉기와 한기에 가까울 테다.

수십 년이 지났지만 생생히 기억한다. 내가 시험을 치르던 그날도 어둑새벽은 몹시 추웠다. 도시락 가방을 주렁주렁 매달고 수험장을 찾아가다가 문득 뒤돌아보니 엄마들이 닫힌 교문의 차가운 쇠창살을 붙잡고 간절한 기도를 바치고 있었다. 몇 해 전에는 나도 그 엄마들의 자리에서 시험을 보러 가는 아들의 뒷모습을 하염없이 좇았다. 지각한 어떤 아이가 허둥지둥 달려 들어가고 교문이 쿵 닫힌 뒤에도 좀처럼 발길을 돌릴 수 없었다. 코가 새빨개진 엄마들 사이에서 시린 발을 동동 구르며 한참 동안 아이들이 빨려 들어간 미명을 바라보았다. 평소보다 시험을 잘 봐서 좋은 성적을 얻기를 원하지는 않았다. 그동안 노력한 만큼, 딱 그만큼만 실수하지 않고 후회 없이 실력을 발휘하길 바랐다.

대학 입시 전형 방법이 다양해지면서 수능 평가의 비중이 예전 같지는 않지만 여전히 수능은 국가적 이벤트다. 교통 소통 원활화를 위해 공공기관을 비롯한 사업체의 출근 시간이 조정되고 등교 시간대 지하철과 버스·택시가 증차되며 비상 수송차량이 지원된다. 주변 소음 방지를 위해 듣기 평가 시간에 항공기 이착륙과 전차 이동이 금지되는가 하면 공사장의 소음과 사이렌 등 시험장 근처의 경적 자제가 요청된다.

일찍이 학교 밖에서 자기 삶을 개척하는 청소년들도 있지만 한국의 10대 대부분은 학생이고 그 자신과 가족의 뜻으로 대학 입학을 원한다. 한편으로 요란스러운 국가적 대책이 한국 사회의 학벌 지상주의와 입시 지옥을 증명하는 것 같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전후 수십 년에 걸쳐 자리 잡은 한국식 ‘통과의례’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인류학자 방주네프가 처음 사용한 통과의례라는 말은 장소·상태·사회적 지위·연령 등의 변화에 따른 의례를 가리키는데, 한마디로 개인이 성장하면서 시기마다 겪는 인생의 의식이라고 할 수 있다. 청춘의 통과의례는 언제나 고독과 고통을 동반한다. 헤르만 헤세의 소설 ‘데미안’ 식으로 말하면 새는 알에서 나오기 위해 알을 깨뜨리는 투쟁을 해야 한다. 수능이 제도 교육에 속한 미성년에서 벗어나 삶의 기술을 찾는 성년의 단계로 진입하는 한국식 통과의례라면 출근을 늦추고 비행기를 멈추는 일도 과한 것은 아닐 테다. 좀 더 모험적이고 설레는 통과의례가 준비돼 있지 않아 아쉬울망정 한 단계에서 다음 단계로 이동하며 삶의 매듭을 짓는 일은 사회 구성원 모두가 배려하고 응원해야 마땅하다.

다만 통과한다는 것은 어디에도 머무르지 않는 것, 그 의식에 지나치게 큰 의미를 부여하는 일은 경계해야 한다. 수능이 끝나면 어김없이 뉴스에 등장하는 실의에 빠진 수험생의 비극은 통과의례에 대한 오해와 과도한 해석 때문이다. 어떤 시험에서도 전부가 원하는 결과를 얻지는 못한다. 점수로 환산된 현재에 사로잡혀 모든 것이 끝나고 결정된 듯 절망에 빠질 필요는 없다. 아마도 지금은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그래서 위로가 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수능은 인생의 시험들 가운데 아주 작은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 더 어렵고 더 소중하고 의미 있는 시험들이 인생의 앞길에 무수히 남아 있고, 이제 그것에 대비한 진짜 공부를 시작할 시점에 다다랐을 뿐이다. 상대를 평가할 수 없는 오직 자기만의 시험, 스스로 만들어갈 미래에 대해 불교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인생은 가장 어려운 시험이다. 많은 사람들은 모두가 다른 시험지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타인을 그저 흉내 냈기에 낙제했다.”

코로나19라는 전대미문의 역병이 창궐하는 가운데 수험생들은 어느 해보다 오랜 시간 동안 긴장과 불안을 홀로 견뎌야 했을 것이다. 다들 애썼다. 지루하고 고단했던 하루하루가 성적표의 점수로만 환산될 수는 없다. 시험 한 번에 성공과 실패를 말하지 말자. 그저 잘 견뎌준 것, 긴 터널을 건너와 지금 여기 도착한 것에 감사할 뿐이다. 맛있는 것을 먹고, 푹 자고, 친구·가족들과 시시풍덩한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깔깔 웃자. 그 또한 지나갔고, 이 또한 지나가리라!

김별아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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