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성하 기자의 서울과 평양사이]남매 공동 통치의 결말은

주성하 기자 입력 2021-10-14 03:00수정 2021-10-14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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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4월 27일 판문점 남북정상회담 당시 김정은·김여정 남매. 지난달 김여정이 국무위원에 임명되면서 북한의 남매 공동통치 시스템은 한층 더 공고화됐다. 동아일보DB
주성하 기자
북한을 대표하는 최고 권력기관은 국무위원회다. 김정은도 대외적으로 국무위원회 위원장이라는 호칭을 사용한다. 국무위원회는 위원장 김정은과 12명의 부위원장 및 위원으로 구성된다. 국무위원회는 2016년 6월에 신설돼 지금까지 5년 남짓 지났는데 지난달 최고인민회의 전원회의에서 3기 국무위원 명단이 발표됐다.

새 국무위원 명단을 보는 순간 “북한에서 국무위원으로 살아남는 것은 요즘 화제가 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오징어게임’에서 생존하는 것만큼 힘들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5년 동안 국무위원회에서 자리를 유지한 것은 김정은과 최룡해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김영철 통전부장 등 3명뿐이었다.

3기 국무위원이 새로 임명되기 전 위의 3명을 제외하고 모두 22명이 부위원장이나 위원이 됐는데 이 중 20명이 사라졌다. 5년 생존율이 10%도 안 되는 것이다.

북한 대외선전매체 ‘메아리’가 12일 오징어게임을 빗대 “극단한 생존경쟁과 약육강식이 만연된 남조선과 자본주의 사회 현실을 그대로 파헤쳤다. 인간을 극단적 경쟁으로 내몰고 그 속에서 인간성이 말살돼 가는 야수화된 남조선 사회”라고 비난했다. 설마 그래도 북한 국무위원보다 더 살아남기 어려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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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기 국무위원회 위원으로 김여정이 공식 임명됐다. 명단을 보는 순간 “3기 국무위원은 더 생존하기 어렵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국무위원은 노동당 비서나 내각 장관이라고 다 되는 것이 아니다. 12명 안에 들어가려면 권력의 핵심 중의 핵심으로 인정받아야 한다. 그런데 김여정은 부부장이라는 직책으로 국무위원이 됐다. 이것만 봐도 북한에서 공식적 서열은 의미가 없다. 국무위원회 초대 제1부위원장이었던 황병서가 처형된 것을 보면 공식 서열 2인자도 안전하지 않다.

국무위원회의 실질적 서열을 따지려면 김정은의 숙청에서 자유로운 순서로 서열을 매기는 것이 맞다. 처형에서 제일 안전한 사람은 국무위원회에서 계급이 제일 낮은 김여정이고, 그가 사실상 북한을 움직이는 국무위원회의 실질적 2인자이다. 김정은이 올해 1월 노동당 제1비서 직책을 신설하자 그 자리에 누가 올라갈까 논란도 있었는데, 이번에 여동생을 직급에 상관없이 국무위원에 임명한 것을 보면 그 자리가 김여정의 것이라는 것에 무게가 실린다.

김여정이 국무위원회 회의장에 앉게 되면서 다른 국무위원들은 과거엔 김정은 눈치만 보면 됐는데 이제부터 김여정의 눈치까지 봐야 한다.

국무위원회 회의 장면을 상상해 보자. 예전엔 김정은의 표정을 보면서 조심스럽게 이야기하다가 “거 말이 안 되는 소리 집어치우라” 하면 바로 고양이 앞의 쥐처럼 움츠러들면서 “장군님 죄송합니다. 제 생각이 너무 짧았습니다”라고 말해야 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제부턴 옆에서 또 “이게 말이 됩니까” 하는 김여정의 목소리가 날아오면 역시 목을 움츠리며 “김여정 동지, 제 생각이 짧았습니다”라고 해야 할 것이다. 김여정의 눈 밖에 나서 “오빠, 저 인간 못쓰겠어요” 하면 바로 목숨이 위태롭기 때문이다.

이런 분위기라면 회의가 열릴 때마다 국무위원들은 김정은에게 조심스럽게 보고를 한 뒤 김여정의 표정까지 슬쩍 살펴야 한다. 눈동자가 두 배로 부지런해져야 하는 것이다. 전임 국무위원들의 생존율을 다 봤기 때문에 정말 살얼음판을 걷는 심정으로 하루하루 살 수밖에 없는 것이다.

북한 국무위원회, 나아가 북한은 이제 명실상부하게 남매가 지배하게 됐다. 역사를 거슬러 봐도 권력자가 아내나 자식을 2인자로 삼은 경우는 있었지만, 이렇게 오누이가 권력을 쥐고 통치한 사례는 매우 찾기 어렵다.

기원전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이집트에 비슷한 사례가 있었다. 미인의 상징처럼 알려진 클레오파트라는 18세 때 왕조의 피가 일반인들과 섞이면 안 된다는 당시의 법에 따라 8세 아래 남동생 프톨레마이오스 13세와 결혼했다. 둘은 남매이자 부부였고, 이집트의 공동 통치자였다.

그런데 권력은 기원전 시대에도 나눠 가질 수 없는 것이었다. 남동생이 자라면서 실질적 권력을 차지하기 위한 싸움이 벌어졌다. 1차 내전에선 남동생이 이겨 누나를 내쫓았지만 로마에서 카이사르가 침공해 클레오파트라와 손을 잡는 바람에 남동생은 전장에서 죽었다.

김정은은 비극적 결말로 끝난 이집트와 달리 여동생과 끝까지 사이좋게 북한을 통치할 수 있을까. 역사에 기록될 사례가 이제 막 시작됐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남매 공동 통치#북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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