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길진균]내년엔 ‘청와대 정부’ 오명 벗어낼 수 있을까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8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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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단골 공약 ‘청와대 비서실 축소’
집권 전리품 포기할 각오부터 해야

길진균 정치부장
길진균 정치부장
“청와대 조직을 많이 축소하고 직원들의 직급도 낮출 것이다. 국정은 내각 중심으로 하고 대통령비서실은 조정 기능으로 역할을 한정하려 한다.”

지금 뛰고 있는 야당 주자들 공약이 아니다. 13년 전인 2008년 1월 이명박 전 대통령이 당선인 신분으로 신년 기자회견을 열었을 때 다짐한 말이다. 기자회견 한 달 뒤, 2008년 2월 25일 이명박 정부가 출범했다.

당시 실세로 통했던 정두언 전 의원은 이 전 대통령을 만나 청와대 축소 방안을 보고했다.

“청와대에서 각 부처의 인사를 직접 챙기면 장관이 무력화됩니다. 장관이 바지사장이 되고 관료들이 청와대의 눈치만 보게 되면 전 관료사회의 역할이 부실해질 수 있습니다.”

정 전 의원은 이 같은 문제점을 설명하며 청와대 인사수석실 폐지를 건의했다. 그러나 이 전 대통령의 생각은 이미 달라져 있었다. 이 전 대통령은 “인사수석을 없애면 이 사회 곳곳에 침투한 좌파세력들은 어떻게 척결하느냐”는 취지로 답했다고 한다.

전(前) 정부에서 정부 및 산하 기관 곳곳에 자리 잡은 친노(친노무현) 인사들을 내보내고, 새 정부 인사들을 그 자리에 다시 배치하려면 청와대가 인사수석실을 통해 각 부처와 산하 기관 인사를 직접 챙겨야 한다는 뜻이었다. 결국 이 전 대통령은 인사수석을 없애는 대신에 인사비서관을 두었다. 직급은 낮아졌지만 내용적으로 바뀐 것은 없었다.

대선 때면 늘 들리는 공약 중 하나가 청와대 비서실 축소다. 후보들은 앞다퉈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언급하며 자신이 대통령이 되면 대통령비서실의 기능과 역할을 확 줄이고 장관들에게 실질적인 의사결정 권한과 인사권을 주겠다고 약속한다.

말뿐이다. 문재인 대통령도 4년 전 취임사에서 “지지 여부와 상관없이 삼고초려해서 유능한 인재에게 일을 맡기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는 집권 기간 내내 진영과 이념, 즉 ‘네 편’ ‘내 편’을 따지는 인사에 의존했다. ‘캠코더(대선 캠프+코드+더불어민주당)’ 인사라는 조어까지 만들어졌다.

대다수 국민은 물론이고 여러 정치권 인사들도 인사수석실이 원래부터 청와대에 있던 곳으로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인사수석은 2003년 출범한 노무현 정부 때 처음 생겼다. 그전까지 민정수석이 독점한 인사에 대한 추천·검증 기능을 분리하겠다는 명분이었다. 처음에는 장관 등 고위직만을 대상으로 했지만 지금은 정부 각 부처는 물론이고 공기업과 산하 기관 간부 인사에 이르기까지 어지간한 자리엔 거의 대부분 청와대의 뜻이 반영된다.

노무현 정부 이후 몇 번의 정권 교체와 인적 청산을 거치면서 대선 때가 되면 각 주자들 캠프로 수많은 ‘뜻있는’ 인사들이 몰려들고, 집권하면 전리품으로 자리를 나누는 풍경이 이제 대선의 기본 공식처럼 됐다. 그 첨병이 인사수석실이다.

대다수가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우려한다. 인사 기능을 청와대가 직접 맡기 시작하며 생긴 과도한 인사권 행사가 부작용을 더욱 키우고 있다. 인사수석실을 통해 각 부처와 사회 곳곳에 뿌려진 낙하산 인사들은 옳고 그름이 아닌 청와대의 뜻과 지시에 따라 행동할 수밖에 없다. 근원적으로는 개헌을 통해 권력 구조를 바꿔야겠지만 일단 청와대 비서실 시스템을 바꾸는 것이 해법이 될 수 있다. 여야 후보들이 “측근 인사는 없다”는 원칙론적인 공약 말고, ‘인사수석실 폐지’ 같은 실질적인 방법론을 함께 약속하면 어떨까. 아니면 지킬 수 없는 탕평인사라는 약속을 아예 하지 말든가.



길진균 정치부장 leon@donga.com


#청와대 정부#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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