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수사 유출시 조사·내사… ‘알 권리 묵살’ 규정 강행한 법무부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8월 18일 0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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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부가 어제 검찰이 수사 중인 사건의 공개 범위에 관한 훈령인 ‘형사사건 공개금지 등에 관한 규정’을 개정했다. ‘수사정보를 의도적으로 유출한 것으로 의심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는 경우 각 검찰청 인권보호관이 진상조사를 거쳐 내사할 수 있도록 한 것이 핵심 내용이다. 공보관 외의 사람이 수사 정보를 언론에 유출한 경우, 담당 수사 검사 등이 사건의 본질적 내용을 유출한 경우 등이 조사 대상이다.

개정안 초안이 언론에 보도된 뒤 검찰 안팎에서는 권력 관련 수사를 담당하는 검사나 수사관이 언제든 잠재적 피의자로서 조사를 받을 수 있고, 이로 인해 수사의 진행이 어려워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컸다. 검찰이 원하는 정보만 선별적으로 공개하면 국민의 알 권리는 크게 제약된다. 하지만 법무부는 내사 전에 진상조사를 한다는 과정만 추가했을 뿐 독소 조항들은 그대로 놔둔 채 개정을 강행했다.

언론 자유와 알 권리는 헌법에서 보장한 기본권이다. 문재인 대통령도 어제 “언론이 시민을 위해 존재하는 한 언론 자유는 누구도 흔들 수 없다”고 강조했다. 국민의 기본권은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이 있는 경우에만 법률에 의해 일부 제약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규정에 적힌 ‘의심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어떤 것인지는 인권보호관의 판단에 달려 있고, 유출에 의도성이 있는지를 파악하기도 쉽지 않다. 인권보호관에게 폭넓은 재량을 주는 추상적 훈령을 근거로 언론 자유와 알 권리를 제한하겠다는 것은 헌법 정신에 어긋난다.

법무부는 지난달 이 규정을 고쳐야 할 필요성을 밝히면서 월성 원전 조기 폐쇄 의혹, 김학의 전 법무차관 불법 출금 의혹 등 사건이 수사 중에 보도된 것을 문제로 예시했다. 수사팀의 의지와 언론의 적극적인 보도로 권력형 사건의 실체가 드러난 것을 개선해야 할 대상으로 꼽은 것이다. 개정된 규정은 우려했던 대로 민감한 수사에 대한 보도를 제한하고 수사의 동력을 약화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악용될 소지가 많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검찰의 입을 막아도 결국 국민의 눈을 가릴 수는 없다는 것을 법무부는 알아야 한다.
#법무부#형사사건 공개금지 등에 관한 규정#알 권리 묵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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