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김선미]‘황연대 성취상’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8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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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 예테보리시 다비드 레가 전 부시장은 팔다리 없이 태어난 장애를 이겨내고 장애인 수영 국가대표를 지냈다. 그의 도전에 큰 힘이 됐던 게 1996년 애틀랜타 패럴림픽(장애인 올림픽)에서 받은 ‘황연대 성취상’이다. “황연대 여사님, 당신이 준 상이 내 인생을 바꿔놓았습니다.” 14개의 세계 신기록을 세웠던 그는 부시장이 된 후 펴낸 자서전을 황 여사(83)에게 보내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황연대 성취상은 겨울·여름 패럴림픽의 최우수선수(MVP)상으로 통한다. 그런데 좀 특별한 상이다. ‘노 메달’이어도 장애를 넘은 성취가 빛나면 수여한다. 한국 최초의 장애인 여성 의사로 장애인 권익운동을 이끈 황 여사가 1988년 당시 200만 원을 국제패럴림픽위원회(IPC)에 쾌척하면서 만들어졌다. 세 살 때 소아마비에 걸려 일제강점기 국민학교 입학을 거부당했던 그는 “내 나라에서 열리는 장애인 축제(서울 패럴림픽)를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고 했다.

▷1988년 서울 패럴림픽은 스포츠 역사상 처음으로 장애인 올림픽이 올림픽과 같은 장소와 같은 해에 열린 대회다. 여기에서 황연대 성취상이 처음 선보였으니 뜻깊다. 2018년 평창 패럴림픽까지 남녀 각 14명씩 28명(21개국)이 황 여사의 사재를 턴 상(순금 메달)을 받고 ‘다르지만 멋지게 살아갈 용기’를 얻었다. 상의 본래 명칭은 ‘황연대 극복상’이었지만 2008년 베이징 패럴림픽부터 ‘황연대 성취상’으로 바뀌었다. 열악한 환경을 이겨내는 투쟁보다는 당당한 사회 구성원으로 성공하자는 긍정의 의지를 담았다.

▷그런데 이 상이 24일 개막하는 2020 도쿄 패럴림픽부터 사라지게 됐다. IPC가 상 폐지를 통보한 것이다. 황 여사의 아들인 황연대성취상위원회 정성훈 이사는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평창 패럴림픽에서 시상했던 어머니가 알츠하이머병 투병 중이지만 일제강점기를 겪은 만큼 도쿄에서 의미 있는 시상을 원하셨는데 실망이 크다”고 했다. 이 상 대신 도쿄 패럴림픽조직위원회가 관여하고 재정도 투입되는 ‘아임 파서블 어워드(I‘m Possible Award·나는 가능하다)’가 신설된다.

▷다가올 2024 파리 올림픽부터는 올림픽과 패럴림픽이 아예 같은 엠블럼을 쓴다. 장애와 비장애의 벽을 허무는 데 황연대 성취상의 기여가 컸다. 발달장애인이 직관적으로 경기종목을 이해할 수 있는 픽토그램을 개막식에 선보여 호평을 받았던 도쿄 올림픽이다. 뒤이어 열리는 패럴림픽에서 한국인이 만든 상을 굳이 없앤다니 유감스럽다. 우연이라기엔 석연찮은 구석도 보인다.

김선미 논설위원 kimsunmi@donga.com
#스웨덴 예테보리시 다비드 레가 전 부시장#패럴림픽#황연대 성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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