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칼럼/박형준]‘올림픽’이라는 마취제 맞은 日

박형준 도쿄 특파원 입력 2021-08-03 03:00수정 2021-08-03 0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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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형준 도쿄 특파원
말 많고 탈 많던 도쿄 올림픽이지만, 막을 올리니 일본 내 분위기가 후끈 달아오른다. TV를 켜면 여러 채널에서 생중계를 하고, 메달을 딴 선수의 인생 스토리가 쉬지 않고 흘러나온다. 대회 일정의 절반을 소화한 지난달 31일 시점에 일본은 금메달 17개를 땄다. 종전 대회 최다인 16개(1964년 도쿄 올림픽, 2004년 아테네 올림픽)를 이미 넘어섰으니 일본 국민들이 열광할 만하다.

기자는 특히 2개 장면이 인상 깊었다. 먼저 지난달 29일 열린 일본과 중국의 배드민턴 여자 복식 8강전. 일본 팀은 세계 랭킹 1위인 후쿠시마 유키(福島由紀)와 히로타 사야카(廣田彩花)로 구성됐다. 히로타가 오른쪽 다리에 찬 검은색 보호대가 눈에 띄었다. 히로타는 올림픽을 한 달여 앞둔 6월 18일, 전방십자인대에 부상을 당했다. 의사 소견은 수술이 필요하다는 것이었고, 올림픽 포기였다. 그때 파트너인 후쿠시마가 말했다. “내가 더 뛰면 되잖아.” 히로타는 수술을 미루고 재활운동을 택해 올림픽 무대에 섰다.

중국 팀은 히로타에게 공격을 집중시켰다. 히로타는 네트 근처에서 수비에 주력했고, 점프해 스매싱을 날리는 경우는 드물었다. 결과는 2-1로 일본 팀의 패배. 승부가 결정된 순간 한 살 아래 히로타가 “미안”이라고 말하자 후쿠시마는 특유의 미소를 지으며 “고맙다. 정말 잘했어”라고 답했다. 중국 선수도 현장에서 짧은 찬사를 보냈다. “리스펙트(존경한다).” 선수들은 울음을 참았지만 NHK 해설자가 울었다. “경기 중 다리가 아팠을 텐데…, (두 번의 경기를 이기고) 여기까지 올라온 게 대견하고….”

또 하나의 장면은 같은 날 오후 7시 반경 실시된 유도 남자 100kg급 시상식이다. 별다를 것 없는 시상식이었는데, 그 직전에 보도된 NHK 뉴스 프로그램 ‘뉴스7’로 인해 매우 특별하게 보였다. 그날은 일본 전국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신규 확진자가 처음 1만 명을 넘었다. 뉴스7은 “지금까지 경험한 적이 없는 폭발적 감염 확대”, “의료 붕괴 직전”, “사람 이동이 줄지 않으면 감염 확대가 더 심해질 것” 등 보도를 쏟아냈다. 듣고 있으면 간담이 서늘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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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가 끝나자마자 NHK는 올림픽 생중계를 이어갔는데, 바로 유도 남자 100kg급 시상식 장면이 나왔다. 한국 대표 조구함이 은메달을 목에 거는 모습을 보니 기자의 마음이 훈훈해졌다. 일본 국적 에런 울프 선수가 금메달을 가져갔다. 일장기가 가장 높은 자리에 게양됐고, ‘기미가요’가 울려 퍼졌다. 일본인들은 분명 맥주라도 한잔 들이켜고 싶었을 것이다. 어느새 뉴스7의 섬뜩한 보도 내용은 머릿속에서 사라졌다.

요즘 저녁이 되면 도쿄 시내 공원은 캔맥주를 들고 휴대전화로 경기를 보는 이들로 북적인다. 신바시, 긴자 등지의 술집은 밤늦게까지 북적거린다. 도쿄에는 코로나19 대응 단계 중 가장 강한 ‘긴급사태’가 발령돼 음식점은 술을 팔 수 없고, 오후 8시까지만 영업해야 한다. 시민들은 외출 자제를 요청받고 있다. 하지만 올림픽 앞에 정부 요청은 무용지물이 됐고, 코로나19 감염은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

일본 정부는 “감염 확대는 델타 변이 바이러스 때문이고 올림픽과는 관계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정말 그럴까. 올림픽 개최 자체가 감염 대책과 모순된 메시지를 준 것 아닐까. 8일 올림픽 폐막과 동시에 국민들이 마취에서 깰 때 받게 될 ‘코로나19 쇼크’가 걱정된다.

박형준 도쿄 특파원 lovesong@donga.com



#올림픽#마취제#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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