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더 컨트롤’은 거짓말”… 후쿠시마, 10년 흘러도 신음

김범석 도쿄 특파원 입력 2021-03-04 03:00수정 2021-03-04 0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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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현장을 가다]
동일본대지진 10년을 맞았지만 후쿠시마 일대는 방사능 오염, 인구 감소, 오염수 해양 방류 논란 등으로 아직도 신음하고 있다. 10년 전 인구의 7%가 사망한 이와테현 리쿠젠타카타시는 사태 재발을 막기 위해 12.5m의 대형 방조제를 지었지만 주변엔 무너진 청소년수련관이 10년째 방치돼 있다. 이와테=김범석 특파원 bsism@donga.com
김범석 도쿄 특파원
《2011년 3월 11일 발생한 동일본대지진 사태가 꼭 10년을 맞았다. 이 사고로 1만5899명이 숨지고 2526명이 실종됐다. 아직도 집에 돌아가지 못하는 주민만 4만2000명. 지난달 26일 만난 후쿠시마 주민들은 “10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마음을 놓고 살 수 없다”며 정부에 강한 불신감을 드러냈다. 특히 정부가 도쿄 올림픽을 개최하기 위해 투명한 정보 공개와 제대로 된 사고 수습에 나서지 않는 바람에 문제가 더 커졌다고 비판했다.》

일본 후쿠시마 제1원전에서 불과 4.3km 떨어진 작은 마을 후타바(雙葉)를 찾았다. 천장이 무너진 상점, 셔터가 엿가락처럼 휜 소방서 등 10년 전 동일본대지진의 참상을 보여주는 흔적이 뚜렷했다. 곳곳에 바리케이드를 친 출입금지 구역도 보였다. 당국자들이 “가급적 차에서 내리지 말고 통과하라”며 일반인의 출입을 막고 있었다.

인근 국도 6호선의 약 10km 구간 역시 오염이 심해 차에서 내릴 수 없었다. 기자가 차 안에서 측정하니 시간당 방사선량이 최대 3μSv(마이크로시버트)까지 올라갔다. 정부 기준치인 0.23μSv의 13배에 달했다. 인근 오쿠마(大熊) 마을 일부 지역에서는 기준치의 30배가 넘는 6.959μSv가 측정됐다.

“日정부, 올림픽 위해 거짓말”

국도 옆 방치된 ‘오염 토양’ 방사능 오염이 심해 사람이 차에서 내릴 수 없는 후쿠시마 제1원전 옆 국도. 주변에는 오염된 흙을 모아두는 중간저장 시설이 대거 들어서 있다. 후쿠시마=김범석 특파원 bsism@donga.com
주부 스즈키 마리(鈴木眞理) 씨는 “2013년 도쿄 올림픽을 유치할 때 아베 신조(安倍晋三) 당시 총리가 사고 현장을 잘 관리하고 있으니 걱정 말라는 뜻으로 ‘언더 컨트롤(under control)’을 여러 차례 언급했지만 실상은 달랐다”며 “세계에 큰 거짓말을 해서 올림픽을 개최하려고 했다”고 비판했다. 일대의 높은 방사능 수치, 후쿠시마 생선에서 검출되는 방사능만 봐도 사고 수습이 제대로 되지 않고 있음을 알 수 있다는 뜻이다. 스즈키 씨는 지난해 10월 언론이 정부의 오염수 해양방류 잠정 결정 사실을 보도했을 때 주민들과 함께 도쿄 총리관저 앞에서 반대 시위도 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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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째 방치된 제1원전의 상태는 더 심각하다. 도쿄전력 측은 “직원들이 방호복 없이 평상복 차림으로 근무하고 있다”고 강조하지만 올해 1월 말 원자로 덮개 부분에서 약 2∼4경(京·1조의 1만 배) 베크렐(Bq·방사성물질의 세기를 나타내는 단위)의 세슘이 발견됐다는 조사 결과가 발표됐다. 사람이 1시간만 노출돼도 즉사하는 수준이다. 원전 폐로 작업도 제자리걸음이다. 엉겨 붙은 방사성물질 잔해(데브리)를 제거하는 작업은 아직 시작조차 못했다.

정부의 책임 회피 조짐도 보인다. 원전 사고 주무부서인 부흥청의 올해 제언서에서는 5년 전 포함됐던 ‘부흥·재생은 국가의 책무’라는 문구가 돌연 삭제됐다. 후쿠시마현 측에서 거세게 항의한 후 이 문구가 다시 삽입됐다.

오염수 논란 ‘세슘 우럭’ 공포

오염수 바다 방류 논란도 여전하다. 현재 도쿄전력은 ‘다핵종(多核種) 제거설비(ALPS)’란 장치로 오염수를 여과해 이 탱크에 보관하고 있다. 현재 누적 보관량이 124만 t으로 내년 가을경 한계치(137만 t)에 도달할 것으로 보인다.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정권은 ‘바다 방류’에 무게를 두고 있지만 주민 반대가 워낙 심한 데다 도쿄 올림픽을 위해 해외 여론도 의식해야 하는 입장이라 공식적으로는 입장 발표를 자제하고 있다. 도쿄전력 역시 “정부 결정에 따르겠다”는 말만 앵무새처럼 되풀이하고 있다.

하지만 지난달 22일 제1원전으로부터 북쪽으로 50km 떨어진 신치(新地) 마을 인근에서 잡힌 우럭에서는 기준치인 1kg당 100Bq의 5배인 500Bq의 세슘이 검출됐다. 후쿠시마 생선에서 방사능이 검출된 것은 2019년 이후 2년 만이다. 이로 인해 후쿠시마현 어업연합회는 우럭 출하를 중단했다.

인근 바다에서 잡히는 해산물의 방사선량을 검사하는 가미야마 교이치(神山亨一) 후쿠시마현 수산해양연구센터 방사능연구부장은 “오염수가 바다로 방류되면 소비자들이 후쿠시마 생선을 사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안전성 입증이 우선”이라고 지적했다.

최근 아사히신문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55%가 “오염수의 바다 방류를 반대한다”고 답했다. 하지만 히라사와 가쓰에이(平澤勝榮) 부흥상 겸 후쿠시마원전사고 재생총활담당상은 지난달 22일 주일 외국인 특파원단 기자회견에서 “한국 등 15개국에서 후쿠시마 수산물을 수입 규제하는 것은 대단히 유감”이라며 비과학적 소문과 오해에서 비롯된 차별적 조치를 중단하라고 주장했다.

방조제 쌓아도 인구감소 뚜렷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일본은 2011∼2019년 후쿠시마 부흥 명목으로 37조1294억 엔(약 393조 원)의 막대한 돈을 투입했다. 이 중 대부분이 인프라 재건에 쓰였다. 대표적인 예가 이와테현 리쿠젠타카타(陸前高田) 앞바다에서 건설 중인 높이 12.5m의 방조제다. 10년 전 리쿠젠타카타에서는 당시 인구(2만4200명)의 약 7%인 1757명이 숨지고 가옥 절반인 4000가구가 파괴됐다. 이런 피해를 다시 겪지 않겠다며 1657억 엔(약 1조7500억 원)을 들여 지방자치단체 측에서 ‘만리장성’에 비유하는 대형 방조제를 건설하고 있다.

문제는 하드웨어 측면의 대책에만 집중한 나머지 피난민 귀환 유도, 인구 감소 대응 등 소프트웨어 측면의 대책에 소홀했다는 데 있다. 방조제까지 쌓고 있지만 리쿠젠타카타 인구는 현재 1만8100명으로 사고 전보다 약 6000명 줄었다. 역시 큰 피해를 겪은 미야기현 오나가와(女川) 역시 10m 고지대에 주택지를 조성하고 38개 상업시설을 짓고 있지만 역시 인구가 대지진 전의 절반 수준으로 줄었다.

주민들의 불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정부는 25일 제1원전에서 직선거리로 20km 떨어진 축구 시설 J빌리지에서 도쿄 올림픽의 성화 봉송을 시작한다. 2일 마이니치신문이 후쿠시마, 미야기, 이와테현 주민 1324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응답자의 61%가 “올림픽 개최가 지역 부흥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답했다. 굴 양식을 하는 스즈키 기미요시(鈴木公義) 씨는 “올림픽 개최로 우리가 얻은 것은 없고 오염수 방류 우려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까지 겹쳐 매출이 반 이상 줄었다”고 토로했다.

―후쿠시마·미야기·이와테에서

김범석 도쿄 특파원 bsism@donga.com
#언더 컨트롤#후쿠시마#일본#거짓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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