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中 사이 줄타기, 유효기간이 끝나간다[동아 시론/이성현]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2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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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미국 없는 동북아 전략 구상
한국의 ‘전략적 모호성’ 임계점 달해
韓美日中 고려한 입체외교 필요하다

이성현 세종연구소 중국연구센터장
이성현 세종연구소 중국연구센터장
중국 외교부는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의 최근 방한에서 ‘풍부한 성과’를 얻었다고 평가했다. 중국의 가장 중요한 성과는 미국의 개입 없이 동북아시아 지역 협력을 중국 주도로 진전시킬 수 있는 기회를 확보한 것이다. 한국과 일본은 코로나19 공동 대응에 협력하기로 중국에 약속했다. 또한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2단계 조속 추진, 한중일 3국 FTA 진전 등 한중, 한중일 3국의 경제 협력을 심화시키기로 했다. 중국은 ‘코로나 방역’과 ‘경제’를 미국이 동맹인 한국과 일본에 대한 협력 견인의 키워드로 삼았고, 미국이 부재한 상황에서 중국의 주도로 동북아 협력틀을 디자인하고 돌아간 셈이다.

왕 부장 방한을 ‘한국과 중국’이라는 양자 간 관계 역학으로만 본 경우, 회담 후 왜 한국 정부가 강조한 사항과 중국 정부가 강조한 사항에 차이가 있는지 궁금해지기 마련이다. 한국 측은 한중 우호 양자 관계에 초점을 맞추었지만 중국은 중국이 구상하는 동북아 전략 큰 그림 속에서 ‘한중일’을 생각하고 그 안에서 다시 한중 관계를 본 것이다.

향후 한국도 ‘한중’을 하면서 ‘미중’도 보고 ‘한일’도 보고, ‘한미일’과 ‘한중일’ 역학 관계를 다 고려할 수 있는 입체적 외교를 펼쳐야 할 것이다. 또한 이번 방한의 목적에서 보면 한국의 큰 관심사인 북핵은 중국에는 주요 방한 이슈가 아니었음도 알 수 있다.

중국 측 성과에 견주어 한국은 무엇을 얻었는지에 대해서도 살펴야 한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최근까지의 한중 관계의 현안을 보자면 한국 측이 중국 측에 제기했을 만한 주요 사항들은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문제 △한한령(限韓令) △시진핑(習近平) 방한 등이다. 현재까지 볼 때 이들 중 해결된 것은 아직 없는 듯하다. 왕 부장 방한과 관련해 중국 외교부는 총 6개의 보도문을 발표했는데 그중 어디에도 ‘시진핑 방한’과 관련한 내용은 담겨 있지 않다. 지난 3년간 중국 외교부 기록을 전수 검사해 보면 중국 정부는 사실 한 번도 ‘시진핑 방한’이란 단어를 쓰지 않았다. 한국이 중시하는 사안이 중국 측 내용에 담기지 않았다는 것은 한국 외교의 고민이 필요한 부분이다.

왕 부장은 지난해 12월 방한 시 “사드는 미국이 중국을 겨냥해서 만든 것”이라고 미국을 비난했지만, 이번엔 “한국이 중한의 민감한 문제를 원만하게 처리하길 희망한다”고 한국을 직접 겨냥했다. 한국 일각에서는 사드 문제에 대해서는 당장 마땅한 해결 방법이 없기에 의제화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도 있지만 그것은 중국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것이다. 중국은 잊지 않는다. 왕 부장은 사드 문제를 우선 해결하는 것이 한중 ‘협력의 기초’라고 했다. 즉, 중국은 이미 해결한 듯 보였던 사드 문제를 한국이 미국 조 바이든 정부 출범을 앞두고 미국 측으로 선회하지 않도록 견제 도구로 사용한 것이다. 중국은 한한령 해제와 시 주석 방한도 같은 맥락에서 본다.

일각에서는 한국이 현재 미중 양쪽으로부터 ‘러브콜’을 받고 있다고 한다. 미국은 동맹 회복 차원에서 한국을 중시하고, 중국은 ‘한중일 FTA’ 진전을 통해 미국이 복귀할 것으로 예상되는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을 견제하려 하면서 한국의 몸값이 올랐다는 것이다. 착시현상이다. 한국은 미중 갈등 ‘장기전’을 준비해야 한다.

바이든 정부 출범에도 미중 경쟁구도는 지속될 것이다. 바이든 첫 1년 임기 중 미중관계에 변화가 기대되는 부분은 중국 유학생·방문학자 비자 발급 정상화 정도다. 심지어 바이든 행정부는 도널드 트럼프 정부가 중국에 부과한 관세와 행정명령 등이 중국을 다루는 데 나름의 유용함이 있다고 보고 대부분 유지할 생각이다. 미국에서도 향후 미중 갈등이 장기전이 될 것으로 보고 준비하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기존 한국 외교의 ‘명품 처방전’이라 불렸던 ‘안미경중’은 갈수록 유지하기 지난해질 수 있다. 한국은 미중 양쪽 모두와 잘 지내고 싶겠지만 미중은 이러한 한국의 사정을 이해해주는 것이 아니라 잠시 참아주고 있을 뿐이다. 강대국의 강요는 종종 정제된 외교적 수사(修辭)에 담겨 오기도 한다. 한국이 미중 사이에서 전략적 모호성인 ‘중간지대’에 머무를 수 있는 시간이 5년 정도란 예측도 해외에서 나오고 있다. 한국은 이 ‘유효기간’을 잘 살피며 중장기적 안목으로 미중 갈등을 헤쳐 나가야 할 것이다. 한국 사회 내부의 취약성도 유념해야 한다. 미중 사이의 ‘선택’의 문제를 둘러싼 한국 사회 내부 갈등은 잠재적 시한폭탄이다. 지난 70여 년간 한국 사회의 구성원들은 북한을 대하는 문제를 둘러싸고 심한 내상을 겪었다. 향후 30년은 미중 갈등을 둘러싸고 심각한 분열을 겪을 수 있다.

이성현 세종연구소 중국연구센터장


#중국#줄타기#유효기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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