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 자서전에 헛꿈 꿀 김정은에게[오늘과 내일/신석호]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1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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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간 신뢰 구축 강조하는 바이든식 외교
중국에 업혀 핵미사일 든 북한엔 예외일 것

신석호 디지털뉴스팀장
신석호 디지털뉴스팀장
“제가 만약 무엇이든 될 수 있었다면 암을 종식시키는 대통령이 되고 싶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가능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2016년 10월 21일 미국 백악관 로즈가든에 선 조 바이든 부통령은 제45대 대통령 선거를 위한 민주당 후보 경선 불출마 선언을 하며 이렇게 말했다. 최근 한국어로 번역돼 나온 2017년 작 자서전 ‘약속해 주세요, 아버지’에 따르면 그의 출마 고민도, 불출마 결정도 모두 암으로 사망한 맏아들 보를 염두에 둔 것이었다. 2015년 5월 뇌종양으로 세상을 떠난 보는 아버지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길 바랐다. 그가 세상을 떠난 뒤 출마를 준비하던 바이든은 10월 6일자 폴리티코가 ‘바이든이 아들을 팔아 선거에서 이기려 한다’는 보도를 내보내자 출마를 포기한다. 자신보다 보의 명예가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

1988년과 2008년에도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에 나섰다가 중도 사퇴했던 그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앞서며 9회말 역전 홈런을 치는 형국이다. 그는 4일 오후 2시 반 기자회견을 열어 ‘끝까지 가겠다’고 선언한 뒤 바로 보의 묘소를 찾았다. ‘아들아 끝까지 포기하지 않을게’라고 다짐했을 것이 분명하다. 5일 오전 위스콘신에 이어 미시간까지 거머쥐면서 바이든이 드디어 아들과의 약속을 지키게 될 것이라는 기대가 커졌다.

이번 대선은 단순히 바이든과 트럼프, 민주당과 공화당의 싸움 이상이었다. 바이든의 선전은 미국이 2차 세계대전 이후 구축한 질서를 무너뜨리는 마구잡이식 ‘미국 우선주의’에 대한 경고라는 의미가 있다. 자유주의 이념을 세계에 전파한다는 미국의 ‘글로벌 리버럴리즘’, 승자 독식의 자본주의가 패자들에게도 도움이 된다는 미국식 세계화의 부활 신호다. 트럼프 식의 쫀쫀한 패권주의(stingy hegemony) 대신 큰 나라가 작은 동맹에 양보하는 후덕한 패권주의(benign hegemony)로 회귀하는 터닝 포인트가 될 수 있다.

트럼프와 연애편지나 주고받으며 시간을 끌 요량이었던 김정은도 밤잠을 설치고 5일 아침 일찍 대미정책 회의를 소집했을 것이다. 외무성 당국자가 원문을 번역해 보고했던 ‘약속해 주세요, 아버지’의 한 구절을 멋대로 해석하며 기대에 부풀 수도 있다. 바이든은 “나는 다른 국가들과 신뢰를 쌓기 위해 수없이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러면서 항상 다음과 같은 아버지의 조언을 따랐다”며 이렇게 소개했다.

“다른 사람에게 그가 얻을 수 있는 이득에 대해 말하지 말라. 열린 마음을 갖고 단도직입적으로 너 자신의 이득에 대해 말하고. 그리고 그의 입장이 되어 그가 바라는 것과 그의 한계를 이해하려고 애써라. 그리고 네가 생각하기에 그가 할 수 없는 것을 그에게 하라고 고집하지 말라. 그것이 바로 진심으로 개인적인 관계를 만들기 위해 기울이는 노력이다.”

김정은과 측근들의 눈에는 ‘북한이 비핵화를 하면 경제 대국이 될 것이라고 (트럼프처럼) 말하지 말라. 미국은 북한의 비핵화를 원한다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라. 북한이 핵을 포기하기 힘들다는 현실적인 한계를 인정하라. 확실하고 검증 가능하고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CVID)같이 북한이 할 수 없는 것을 하라고 고집하지 말라. 그것이 북한과 신뢰관계를 쌓는 노력이다’라고 읽히지 않았을까.

하지만 꿈 깨라. 그건 미국의 영향권하에 있는 중남미 국가들에 대한 외교적 수사일 뿐이다. 적대국 북한에 대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전략적 인내’가 실패하는 과정을 부통령으로 바로 곁에서 지켜본 바이든은 더 강경한 제재를 할 수도 있다. 4년이건 8년이건 바이든이 퇴임하면서 “북핵 문제를 해결하는 대통령이 되고 싶었다. 해보니 그것은 가능한 일이었다”고 회고하는 날이 올 수 있을지.

신석호 디지털뉴스팀장 kyle@donga.com
#바이든#자서전#헛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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