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 밀착 경제학[횡설수설/김광현]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0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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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된 물건의 가격을 정하는 데 경매만큼 신속 공정한 방식도 드물다. 뉴욕 크리스티 미술품 경매나 공동 어시장 경매를 보면 그 자리에서 가격과 낙찰자가 결정돼 버리고 다른 참가자들의 불평불만도 없다. 공공 공사나 정부 물품 조달은 좀 더 까다롭고 복잡하다. 1994년 32명의 목숨을 앗아간 성수대교 붕괴의 원인이 최저가 낙찰제에 따른 부실공사라는 비난이 일자 재무상태 기술능력 등을 함께 고려한 적격심사제가 도입됐다. 업계에서는 운에 따라 결정된다고 해서 ‘운찰제’라고 부른다. 이래 바꿔도 골치, 저래 손봐도 문제인 것이 공공재산의 입찰 경매제도다.

▷올해 노벨 경제학상은 ‘동시 다중 라운드 경매’를 고안한 미국 스탠퍼드대의 폴 밀그럼과 로버트 윌슨 교수에게 돌아갔다. 이들의 연구는 공공재산 경매에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주파수 경매가 대표적인 사례인데 정부가 여러 주파수 대역을 한꺼번에 경매 대상으로 내놓고 마지막 낙찰자가 나올 때까지 수많은 라운드를 반복하면서 남은 입찰자들이 계속 새로운 가격을 제시하는 방식이다. 노벨위원회는 “이 방식은 매도자와 매수자는 물론 납세자가 고루 혜택을 볼 수 있게 했다”고 선정 이유를 설명했다. 1994년 미국이 무선주파수 경매에 이 이론을 처음 적용한 이후 대부분의 국가들이 활용하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3G, LTE 주파수 경매에 이어 2018년 5G 주파수 경매에도 이 방식이 적용됐다. 주파수 대역을 얼마에 누구에게 매각하느냐는 통신회사뿐만 아니라 국민 일상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매각 대금이 너무 높게 결정되면 사업성이 떨어져 해당 산업이 엎어지는 ‘승자의 저주’가 발생할 우려가 있다. 낙찰가의 일부가 요금 형태로 소비자에게 떠넘겨질 수도 있다. 반대로 너무 낮게 결정되면 국민 세금 부담이 높아진다. 이런 문제점에 대한 해법으로 현재까지는 동시 다중 라운드 방식이 최선으로 꼽힌다.

▷최근 노벨 경제학상은 순수 경제이론보다는 현실적인 문제 해결에 직접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이론들에 주어지는 경향이 있다. 남자 소변기에 파리를 그려 넣는 것만으로 화장실 청결 효과를 높이는 넛지 이론의 2017년 수상도 그중 한 예라고 하겠다. 작년 노벨 경제학상은 현장 실험을 통해 빈곤 퇴치를 위한 실증적 해법을 제시한 연구자들에게 돌아갔다. 현재 한국에서는 초유의 경제 정책 실험들이 진행 중이다. ‘비정규직 제로’나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 같은 정책 실험들이 어떤 효과와 부작용을 낳는지를 실증적으로 연구해 이론적으로 정립한다면 훗날 한국에서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가 나오지 않을까.

김광현 논설위원 kkh@donga.com
#2020 노벨 경제학상#동시 다중 라운드 경매#미국 스탠퍼드대의 폴 밀그럼#로버트 윌슨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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