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이한 나는 이제 끝’ 사회 이슈에 목소리 내는 日[광화문에서/박형준]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9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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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형준 도쿄 특파원
박형준 도쿄 특파원
아시아 테니스 선수로서는 지난해 처음 세계 랭킹 1위에 올랐던 일본의 오사카 나오미(大阪なおみ·23). 그는 아이티 출신 부친과 일본 홋카이도에서 태어난 모친을 뒀다. 4세 때였던 2001년 일본에서 미국으로 건너가 테니스를 시작했다. 가정 형편이 넉넉하지는 않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13년 프로로 전향했지만 그를 후원해주는 기업은 한 곳도 없었다. 당시 오사카가 한 인터뷰에서 “휴대전화를 갖고 싶다”고 밝히자 부모는 “상금을 받아서 사라”고 타일렀다고 한다.

이후 7년이 지났다. 그 사이 2016년에 세계 랭킹 50위 안에 들었고, 2018년과 올해 US오픈 여자단식에서 우승했다. 현재는 세계 랭킹 3위다. 15개 기업이 오사카를 후원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 그를 후원하는 일부 기업들이 불편해하는 기색이다. 오사카는 이번 US오픈에서 미국에서 인종 차별 문제로 억울하게 숨진 흑인 피해자 이름이 적힌 검은 마스크를 착용해 화제를 모았는데, 기업들은 이를 마뜩잖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마이니치신문 11일자).

일본인들은 정치 이슈, 사회 문제에 침묵하는 경향이 있다. 특히 스포츠 선수나 연예인이라면 더욱 그렇다. 기업의 후원이 곧 수입인데, 자신의 의견을 밝히다가 자칫 기업의 후원이 끊길 수도 있다.

하지만 오사카는 올해 5월 트위터에 “샤이(shy)한 나는 이제 끝”이라고 글을 올렸다. 미국 흑인 조지 플로이드 씨가 백인 경찰에 목을 눌려 사망했던 시점이다. 지난달 US오픈 직전에 열린 웨스턴 앤드 서던 오픈에선 미국 위스콘신주에서 경찰로부터 총격을 받은 흑인 남성 제이컵 블레이크 사건에 항의해 4강전 기권을 선언했다.

오사카의 용기는 어쩌면 미국에서 오래 살았기에 ‘문제가 있으면 목소리를 내는’ 미국식 문화에 익숙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실제 오사카는 미국과 일본 복수 국적을 유지하다가 지난해 미국 국적을 포기하고 일본 국적을 최종 취득했다.

하지만 오사카뿐 아니라 샤이한 대다수 일본인들이 차츰 달라지고 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총리가 검찰 간부의 정년을 정부가 결정하게끔 하는 검찰청법 개정안을 국회에서 통과시키려 했던 5월이었다. 일본 국민들은 ‘#검찰청법 개정안에 항의한다’는 글을 인터넷에 올리며 반발했다. 그 숫자는 수백만 건에 이르렀고, 배우 이우라 아라타(井浦新), 가수 미즈노 요시키(水野良樹) 등 연예인들까지 참여했다. 사회 문제에 연예인까지 목소리를 내는 것은 전례 드문 일이었다. 결국 아베 전 총리는 법안 강행을 멈췄다.

젊은층의 정치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선거조사회사 ‘그린십’이 올해 5월 2558명에게 ‘총선이 실시된다면 투표할 것인가’를 물었더니 투표권을 가진 10대와 20대의 83%가 ‘투표하겠다’고 답했다. 2017년 10월 총선에서 10대와 20대의 투표율이 각각 40%, 34%에 그친 것과 대비된다.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정권이 16일 들어섰다. 스가 총리는 ‘아베 정권 계승’을 분명히 밝히고 있어 부정적 유산까지 계승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최근 불기 시작한 일본인들의 용기 있는 반란이 일본을 어떻게 바꿀지 기대된다.

박형준 도쿄 특파원 lovesong@donga.com
#오사카 나오미#일본#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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